강아지가 있었다. 목요일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12년 동안 같이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 목요일 저녁 늦게 퇴근한 동생한테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다급했다. 집에 급하게 강아지를 데리고 나간 흔적들이 있는데 엄마도 아빠도 연락이 안된다는 것. 우선 동물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동물병원으로 향하는 도중에 건 전화를 건 것이었는데, 동생 목소리에는 당혹스러움과 걱정됨이 섞여 있었다. 나는 급하게 병원 갈 만큼 큰일이 있었나보다 했지만 치료 받으면 나아질 정도의 무엇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희망했다. 택시를 잡으려 했지만 애매한 시간대에 택시가 급히 잡히지 않았다. 우선 지하철을 타고 근처로 가 내려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내 걸음이 너무 느리고 무겁게 느껴졌다. 좀처럼 병원까지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막 병원에 도착할 무렵 멀리서 보니 아빠 차가 병원 앞에 세워져 있었다. 방금 막 차에 다시 탄 듯했고 원장님이 나와서 인사를 해주고 계셨다. 나는 강아지가 뭔가 증상이 있었고, 병원에 급히 데려왔고, 긴급한 처치는 마치고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집에 돌아가나 보다 했다. 나는 멀리서 손을 흔들었지만 아빠도 엄마도 나를 보지는 못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걸어서 십분 거리였지만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엄마, 아빠, 동생 모두 거실에 나와 서있는데 들어가자마자 강아지가 갔다고 했다. 아, 강아지가 갔구나. 나는 그러나 얼른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강아지는 지병이 있었다. 세살 때 발병했는데 병명은 뇌수막염이라고 하였다. 사람의 경우와 다르게 강아지의 경우에는 예후가 좋지 않은 병이라고 했고, 기대여명이 길지 않다고 했다. 우리 강아지의 뇌수막염은 자가면역형 질환이라고 했다. 뇌에 병변이 생겼는데 이를 이물질로 인식해서 면역체계가 공격을 하고 그게 발작을 일으키게 한다고 했다. 우리는 강아지가 처음 발작을 일으켰을때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데려갔고 뇌수막염 진단을 받았다. 정확히 진단을 받은 것이 더 큰 병원에서 MRI를 받아온 후였는지 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후에도 우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코 앞의, 동물병원 원장님한테 강아지의 진료를 맡겨 왔다. 원장 선생님은 성실하고 동물에 애정이 많은 분이었고 최신 논문 찾아가며 신약 나오면 업데이트 해가며 진료를 해주셨다. 이후 조금 더 크게 개원하셔서 걸어서 십분 정도는 걸리는 약간은 더 먼 곳으로 이전하신 후에도 우리는 같은 곳에서 진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수개월에서 3년 정도 살면 오래 사는 것일거라 하셨는데, 강아지는 진단 받고 지금까지 9년 정도를 버텨주었다. 불과 한 주전에 병원에서 선생님은 중현견들은 수명이 소형견보다 짧은 편이라고 우리 강아지도 3년 정도 이상 보기 힘들 수 있다고 천천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도 강아지가 또래에 비해 동안이라고도 하셨다고 했다. 강아지는 정말로 동안이었다. 매주 약을 타러 병원에 갔고,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였기에 잔병 치레 같은 것도 없었다. 오히려 예방 접종이나 건강 체크도 다른 강아지들보다 때를 놓치지 않고 잘 할 수 있는 면도 있었다. 강아지는 요즘 들어서는 엄마와 나서는 새벽 산책을 너무 좋아했다. 식사량도 전혀 줄지 않았었다. 선생님은 3년이라고 했지만 나는 속으로 요샌 강아지들 스무살까지도 산다던데 앞으로 7년, 8년은 더 같이 할거라고 생각했고, 아무리 못해도 5년은 더 우리와 함께 할거라고 생각했다.
강아지는 새하얀 스피츠였다. 새침하고 소심하고 예민한 강아지였다. 아기때부터 그랬다. 그래도 활달했다. 늦은 시간 집에 들어가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을 물고 와서 같이 거실을 돌자고 하고 터그 놀이를 하자고 했었다. 산책 나가면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다니며 자기가 앞서서 뛰어 나가고는 했다. 애교는 없었지만 사람은 좋아했다. 자기를 만지는 것은 싫어했지만 꼭 사람이 보이는 곳에 있으려고 했다. 가족들이 많이 모여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서 더 기운나 하는 것이 보였다. 뇌수막염 진단 이후에는 면역억제제, 면역조절제, 경련억제제, 간보호제, 스테로이드성 약물, 항생제 등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시간 맞추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어야 했다. 살이 찌면 약물도 늘려야 하고 몸에는 더 무리가 갈 것이므로 먹는 것도 조절해야 했다. 스테로이드성 약을 먹으면서 식사량이 많지 않아도 살이 금방 붙었다. 약을 먹으면서 어딘가 활발함도 줄어들었다. 더 이상 인형을 가지고 같이 놀자고 하지도 않았고 밖에 나가도 뛰어다니는 모습이 사라졌다. 그래도 늘 산책다니며 냄새 맡고 돌아다니느 것을 좋아했다. 약을 먹어 식탐은 더 늘어 늘 배고파했다. 그러나 간식도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사료도 기름기 없는 다이어트 사료로 바꾸어야 했다. 몇년 동안은 엄마가 양배추를 삶아서 사료와 섞어 주었었다. 사료 말고 먹이면 살이 더 붙고 살이 붙이면 약 용량을 늘려야 해서 좋지 않다고 다른 것은 주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양배추도 주지 않았었다. 강아지는 늘 허기가 져 있어서 그 맛 없는 사료도 아쉬워했다. 더 어려서는 사료 맛없다고 밥투정도 하곤 했었는데 그것마저 아쉬워서 밥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집에 사람이 오면 당연하다는 듯이 부엌으로 데려가서 사료 몇 알을 더 얻어먹고는 하였다.
강아지는 자기 장난감에 들어있는 사료를 찾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목요일 아침은 집에서 내가 제일 늦게 나왔는데 그 모습이 귀여워서 이것도 기록에 남겨놓아야지 하고 동영상을 찍었다. 나중에 강아지가 곁에 없게 되면 한순간 한순간이 그리울 테니 찍어놓을 수 있을 때 찍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이 내가 남긴 강아지의 마지막 기록이 될지는 몰랐었다. 그날도 새벽에 산책도 다녀오고 먹는 것도 너무 잘 먹고 있었으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이 십여년인데, 앞으로 3년이든 5년이든 7년이든 같이할 시간이 더 짧을 수 있으니 조금 더 많이 기록을 남기고 조금 더 같이 많이 시간을 보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 남은 시간의 짧음이 이렇게 극단적일 줄은 몰랐다. 집에 들어가면 자다가도 비적거리면서 일어나서 나와서 반쯤 뜬 눈으로 타탁타탁 발톱소리를 내며 다가와 반갑다고 인사 잠깐 하고는 자기 사료 내놓으라고 부엌으로 데려가던 그 아이의 모습을 이제는 볼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 열고 나가서 딱 눈에 띄지 않으면 이 녀석이 어디갔지 하고 찾아보고 어딘가 구석에서 자고 있으면 안심이 되던 그 마음을 더는 느낄 수가 없게 되었다. 가만히 자고 있는 강아지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숨쉴때마다 들썩이던 그 배를 다시는 만져볼 수 없게 되었다. 목요일 아침, 장난감에서 빼먹을 수 있는 사료는 다 빼먹고는 나보고 가기 전에 사료 몇알 더 내놓으라고 해서 밥그릇에 두세알의 사료를 더 던져주고 나올 때, 팔랑이던 꼬리 아래 손 닿아 만져지던 짧게 잘라서 까슬했던 그 털의 촉감과 강아지 특유의 야들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보다 살짝 더 높아서 따스하게 느껴지던 체온의 느낌이 아직 손가락 끝에서 아른거린다. 그렇지만 이제는 두번 다시 그 아이의 그 느낌을 느껴볼 수는 없게 되었다.
강아지는 장례를 위한 종이 박스에 넣어진채 잠들어 있었다. 검은색 튼튼한 종이박스였다. 장례식장 까지 가는데 담아 두기 위한 상자였다. 그 안에 웅크리고 들어앉은 강아지는 잠잘 때와 같은 자세였다. 너무 평온하고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강아지는 경련할 때마다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아마 자기는 경련의 순간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할 수는 있겠지만 그 때마다 몸에 무리가 간다고 했다. 경련은 가벼울 때도 있었고 너무 오래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오분 정도를 넘기는 경우는 없었다. 이번에는 40분 넘게 경련을 했다 말았다 했다고 하였다. 그래도 경련 후에는 증상의 일부로 마구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진정되고는 하였는데, 이번에도 그랬다고 했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경련을 하면서 배변을 하더니 다가와서 안긴채 그대로 힘이 풀러 가버렸다고 했다. 놀란 아빠가 동물병원에서 전화를 하고 CPR을 하면서 데려갔지만,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선생님은 살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처치들을 했지만, 사실 도착했을 때 이미 죽어있었다고 하셨다고 한다. 내가 들어도 이미 집에서 죽어서 갔던 것일 것 같았다. 그래도 강아지가 혼자서가 아닌 엄마 아빠가 있는 가운데 안긴채 간 것이 조금은 덜 서운할 일일까 생각했다.
강아지가 열살 즈음일 때 부터 아마, 나는 우리 사이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까 말했던 것처럼 남은 시간이 그렇게나 짧을 줄은 몰랐다. 강아지는 한밤중에 모두가 잠든 중에 내 방문을 긁으며 자기 배고프다고 때를 쓸 때가 있었다. 조용히 나가보면 나를 베란다 쪽으로 이끌고는 했다. 베란다에서 창문을 열고 자기를 안아들어올려 바깥을 보여달라고. 조용한 저녁의 창밖으로 전해오는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했다. 이따금 지나가는 차와 사람을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불이 다 꺼진 집, 어둠이 가득한 베란다에서 그렇게 강아지를 안고 함께 밖을 내다보며 서 있으면 그냥 이유 없는 행복감이 들었다. 이 순간이 언젠가는 못견디게 그리워질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10키로가 넘는 강아지를 들고 서 있는 건 힘들었다. 나는 길게 서있어도 4,5분 이상을 그렇게 서있지 못했다. 강아지를 내려주면 바깥 구경 했으니 사료를 내놓으라고 했다. 나는 강아지가 밖에를 보고 싶어하면 몇번이고 반복해서라도 맞춰주기도 했으나, 이따끔은 내가 힘들고 귀찮아서 모른 척 할 때가 있었다. 그 모든 순간들이 후회가 되고 미안하다. 주말에 집에 있을 때면 나는 일찍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강아지는 내가 깰 시간이 되면 방에 와서 문을 긁었는데 나는 도저히 일어나지지가 않아서 못 들은척 하고는 했다. 강아지가 더 어릴 때는 내가 깰 때까지 문을 박박 긁어 댔었다. 나는 결국 못이기고 일어나서 사료를 조금 챙겨주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반응이 없으면 두어번 긁고 멈춰버렸다. 강아지가 기운이 줄어든건지 포기를 배운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나는 두어번 들리다 마는 그 소리에 서운한 마음이 들면서도 더 잘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나는 앞으로는 주말에 무기력해질 정도로 피곤하게는 살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주말이면 새벽에 일어나서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짐한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나 나는 행동이 바뀐게 아무것도 없었다.
강아지를 혼자 두기도 힘들었고 멀리 데리고 가기도 걱정이 앞섰기에 명절 때면 동생과 나는 당번을 정해 한명 씩 돌아가며 집에 남았다. 나머지 가족들은 시골로 내려갔다. 그럴때면 며칠씩 강아지와 단둘이 집에 있을 수 있었다. 집에 강아지와 혼자 있으면 내 모든 생활이 강아지에 맞추어졌다. 새벽이면 강아지는 배가 고팠다. 내 밥을 먹기 전에 먼저 강아지 밥그릇을 씻고, 사료를 챙겨주어야 했다. 강아지는 오래 따라놓은 물도 마시지 않았으므로 새로 물도 내려주어야 했다. 자연스레 강아지와 단 둘이 있을 때는 나도 아침형 인간이 되었다. 간혹 내가 못 일어나고 자버리면 강아지도 따라서 계속 잤다. 그러다 내가 일어나면 그때야 같이 일어나서 따라나왔다. 컴퓨터도 티비도 라디오도 할 수 없는 강아지는 늘 심심했다. 아기 때처럼 인형을 물고 놀자고는 안했지만 사람이 놀아주지 않으면 혼자인 강아지는 집에서 할 게 없었다. 식구들이 다 있을 때는 놀아줄 사람들이 많았지만 둘이만 있을 때는 강아지가 상대할 사람이 나 뿐이었다. 산책을 시켜줄 사람도 밥을 줄 사람도. 그렇게 둘이만 있을 때면 하루에 산책도 2,3번을 나가야 했다. 귀찮다고도 생각했지만 행복하다고도 생각했다. 더 어려서는 산책이 숙제처럼 느껴지고 나가서 강아지는 냄새 맡고 돌아다니고 나는 전화기를 쳐다보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이의 시간이 이제 한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부터는 강아지와의 산책 중에는 더 이상 폰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주중에는 너무 바쁘고, 주말에는 너무 피곤했던 나는 강아지 산책을 내가 시키는 경우가 점점 더 줄어들었다. 핑계가 많던 나는 항상 앞으로는 조금 더 잘해줘야지 다짐만 했을 뿐이었다. 약을 먹느라 둔해진 강아지는 재미있게 할 수 있는게 산책과 먹는 것 뿐이었는데, 그것조차 양껏 함께해주지 못했다. 다음에 해주어야지 하는 마음이 나중에 나를 괴롭힐 것이란 걸 알았다. 이제 내 생각한 그대로가 되었다.
강아지와 멀리 떠난 적이 드물었다. 그래도 마음 먹고 한 번은 동해안 바닷가에 갔었다. 강아지는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사장을 싫어했다. 바닷물도 질색을 했다. 내 기억에도 그 때 강아지는 별로 바닷가 여행을 즐거워하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동생이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때 사진을 보니 가족 모두와 있는 강아지의 표정이 너무 밝고 행복해 보인다고 했다. 아마 정말 그랬을 것이다. 강아지는 무리가 온전히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다. 바닷가는 그에게 행복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가족이 모두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은 그에게는 행복이었을 것이다. 한 번은 할머지 집에를 갔었다. 다 같이 한방에서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는데 이불이 무거웠다. 고개를 들어보니 강아지가 다리 사이에 와서 둥글게 말아서 잠들어 있었다. 강아지가 다리 사이에 와서 자는 건 신뢰를 한다는 뜻이라던데 나는 그게 몹시 뿌듯하고 설레였다. 그 뒤로 두번 다시 그런 적은 없지만 나는 그 기억이 참 좋았다.
강아지와 사람 사이의 관계는 거의 온전하게 애정으로만 맺어진다. 서로 너무 가까운 사람들이나 가족 조차도 시간이 흐르면 서로 놓지 못하는 원망 섞인 애증의 관계로 진화하는데, 강아지와 보호자 간의 관계는 오직 애정으로만 이루어진다. 강아지에게는 이 관계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 아마 그 근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강아지에게는 오로지 미안한 마음만이 들게 되는 것이겠지. 자기가 선택한 것이 없는 삶이기에 강아지에게 발생한 부족함은 전적으로 사람의 탓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돌이켜보면 미안한 마음이 전부이다. 안 돼, 하지마, 그만. 아마 강아지가 나한테서 제일 많이 들었을 말이다. 뭐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할 것이 많았을까.
강아지가 있는 동안 집은 언제든지 행복이 있는 공간이었다. 마음이 힘들고 이유 없이 지칠 때면 강아지를 찾아가 귀찮게했다. 그 따뜻한 덩어리를 품에 안고 보드라운 털에 볼을 부비고 있으면 내 마음도 자연스레 부들부들해졌다.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 따스한 생명체가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졌다. 나는 강아지가 있는 사람이었고, 그 사실 자체가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위안이었다. 혼자 집 보는 당번이 되어 강아지를 옆에 두고 재울 때면 잠자리에서 입들 다시는 소리나 뒤척이는 소리, 강아지 숨소리가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슬픈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강아지가 가버린 목요일 밤 동물병원에서는 장례식장을 소개 받았다. 동물 장례식장이라는 것이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우리는 강아지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마지막으로 하룻밤을 같이 지내고, 새벽에 일어나 서울 밖 경기도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이동했다. 강아지가 좋아했지만 거의 주지 못했던 간식들과 늘 곁에 두던 장난감들을 함께 챙겨서. 강아지는 검은 박스 안에 잠든 것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얼굴은 여전히 예쁘기만 하였다. 하염 없이 예쁘게만 생긴 강아지였다. 금요일 아침은 햇살이 가득한 아름다운 날씨였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은 눈이 부셨다. 장례식장은 크지 않지만 단정하고 깔끔한 건물이었다. 마치 사람 장례를 지내듯 염을 하고, 수의를 입혔다. 곱게 수의로 갈아입고, 포를 싸고 꽃을 뿌린 채 입관한 강아지의 모습은 여전히 너무 사랑스러웠다. 강아지가 정말로 영원히 잠든 것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장례식장에는 가족을 위한 추모 공간도 예쁘게 마련되어 있었다. 사람 장례식은 점점 더 간소화되고 있다는데 강아지 장례식은 점점 더 격식을 차리고 있다고 하니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추모의 시간을 가지고 강아지는 입관한채 화장을 위해 이동했고, 고운 모습으로 누인 관을 닫고는 화로로 들어갔다. 이제 이 세상에서 그 귀여운 모습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한시간 가량을 기다려 발골 된 강아지의 유골을 보았다. 살아 있을 때 보다 너무 작게 남겨진 뼈들을 보고도 나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분골된 고운 가루가 되어서는 더 작아져있었다. 유골함에 담긴 강아지는 그렇게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나에게 짜증내며 짖지도, 자기 두고 나간다고 투정하지도, 왜 나만 맛있는 거 먹냐고 와서 다리를 긁지도, 지금 몇시인데 안 일어냐나고 방문을 긁지도 못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강아지를 둘 자리를 찾아야 하지만 그렇게 강아지는 일단 집으로 왔다.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비로소 사람의 장례식을 왜 3일씩이나 하는지 장례가 왜 그렇게나 중요한 일인지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도 몰랐는데 가까운 이를 시간을 들여 보내주는 의식을 거치지 않는다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리가 되지 않고 힘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기쁜 일은 몰라도 슬픈 일은 놓치지 말고 위로를 전하라는 말의 뜻을 이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랄까.
강아지 장례가 끝나고 온 집에서 우리는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고 나는 일을 미룰 수 없어 출근을 했다. 출근 전 식탁에서 한켠에 있던 강아지 사료통에 들어있던 사료를 꺼내 먹어보았다. 그 동안 지겹도록 매일 먹었던 그 사료의 맛이 궁금했다. 다이어트 사료라 걱정했는데 퍽퍽하긴 했지만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정도는 아니었다. 배고프고 어쩔 수 없어서였겠지만 강아지가 왜 그렇게 사료를 달라고 보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의 맛이었다. 강아지 생전에는 차마 먹을 생각을 못해보았지만 보내고 보니 그 간 어떻게 버티고 살아왔는지가 너무 궁금해졌었다. 강아지가 사료만 먹은 것은 물론 아니었다. 조금은 맛이 나는 영양제도 뿌려주고, 가끔은 아주 가끔은 비비빅 아이스크림도 얻어먹고, 더 어려서 아프기 전에는 고기나 뼈다귀도 얻어먹고 아빠한테서 고구마 말랭이 같은 것도 얻어먹고는 했다. 올 여름에는 잘게 자른 수박도 여름 간식으로 얻어먹고는 했다. 닭고기 간식도 종종 주고는 했다. 항상 자기 양에 부족하게 먹었겠지만. 강아지 간식이나 용품은 주로 동생이 주문해서 날랐고, 나는 예뻐해주기만 했다. 나는 강아지에게 해준 것이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주보호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랬을테다. 아마 강아지도 나를 같이 얹혀 사는 녀석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강아지는 사람한테 안겨 있는 것을 답답해했다. 그렇지만 보호자가 안아주는 것이므로 참아주고는 했다. 가끔은 내 무릎에 앉아 머리도 한쪽으로 기대고는 잠이 들기도 했다. 그러면 그 따스함이 좋아 나도 가만히 움직임 없이 있고는 했다. 거실 소파 한켠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치만 내가 그 옆에 앉아 쓰다듬 거리면 귀찮아 했다. 특히 발만지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특히 따스함이 전해지는 그 까슬한 발의 느낌이 좋아 귀찮아하는 줄 알면서도 발을 만지작 거렸다. 강아지는 그 손길을 참아주다가 너무 귀찮아지면 슬며시 일어나서 다른데로 가버렸다. 강아지답지 않게 애교 없는 그 모습이 나는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지개를 한번 피고는 앞에 와서 배를 뒤집고 누웠다. 그렇다고 막 애교기가 섞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배와 가슴털을 긁어주면 가만히 있었다. 내 손과 손목이 힘들어서 그만 하려고 하면 얼굴을 돌려 왜 하다 마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면 나는 강아지가 몸을 돌려 일어나기 까지 배를 긁어주었다. 표정은 여전히 심드렁해보였지만 긁어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래서 알았다.
강아지한테서는 특유의 꿉꿉한 냄새가 났다. 여름에는 더 났고 발에서는 일년 내내 났다. 그 냄새가 나는 좋았다. 흔히들 꼬순내라고 하는 그 냄새가 좋았다. 털 아래로 느껴지던 따스함과 털의 뻣뻣한 것 같으면서도 보드랍던 느낌, 내 손 아래 생명이 느껴지던 심장의 두근거림과 숨쉬는 배의 움직임, 강아지가 움직일 때의 야들함과 촉촉한 코의 감각. 산책 중이면 뒤에서 와서 내 다리를 들이박던 코의 축축한 느낌. 내 손을 잡아 눌러놓고 짠맛에 할짝거리는 혀의 느낌과 자기가 기분 좋을 때면 얼굴을 핥아주던 때의 눅눅함과 따뜻함. 거실에서 돌아다니면 나를 따라다니던 눈망울. 사진과 영상은 남지만 냄새와 촉감과 그 모든 것들이 자아내던 분위기는 남지 않는다. 그것은 내 머리 속에서만 점점 옅어지는 기억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옅어질 것이므로 나는 또 살아가겠지만 그것이 점점 옅어질 것이므로 나는 마음이 슬프다.
강아지는 내가 입대하고 훈련을 마치고 임관을 한 직후에 우리 집에 왔다. 나는 집에 내가 비운 공간을 강아지가 채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강아지는 내 방을 제 방처럼, 내 침대를 제 침대처럼 생각하고 썼다. 나는 그게 오히려 기꺼웠다. 강아지는 내가 없을 때면 내 침대에 앉아서 창밖 맞은 편의 아파트를 구경하곤 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사람 기척이라도 보이면 왈왈 짖기도 했다고 한다. 강아지가 채웠던 자리는 다시 내가 있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강아지는 갔고, 나는 강아지를 보내야 한다. 하루에 한 걸음씩, 강아지와의 추억을 내어 놓으면서 조금씩. 너를 추억하고, 잊지 않되 슬픔보다는 네가 준 행복이 마음에 남을 수 있도록.
강아지야. 고마웠고 고마웠고 고마웠다. 안 돼, 하지마, 그만이 없는 세상에서 먹고 싶은 것 부족함 없이 먹고, 가고 싶은 걸음 어디든 돌아다니고, 놀고 싶은 만큼 놀고 사랑 받고 싶은 만큼 다 사랑 받는 삶을 누리렴. 한없이 미안한 마음 뿐이고, 네 앞에서 속삭일 수 있었던 건 ‘형이 미안해’가 전부였지만 사랑했으니까 미안하다는 말은 속으로만 삼킬게.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행복을 전해주어서 고맙고 사랑한다. 너에게도 우리가 조금은 행복이었기를 바라면서 믿음도 없는 나이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라 기도할게. 강아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