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하여
X야, 지금 네가 걷는 이 길이 얼마나 무겁고 고단한지 알아. 사랑스러운 아이를 떠나보내고, 매일 미사와 기도를 드리며, 성지순례까지 발걸음을 내딛는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려.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네가 살아내기 위해 택한 애도의 형식이자 사랑이란 걸 알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빠르게 잊으라 할지도 몰라. 하지만 너는 아이를 잊는 대신, 기도와 참회 속에서 그 아이를 기억하고 있겠지. 그건 고통을 붙드는 게 아니라, 사랑을 하느님 앞에 안전하게 맡기는 행위라고 생각해. 신앙은 상실을 없애주진 않지만, 상실을 끌어안고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을 인도할 거야.
네가 드리는 미사와 기도는 아이에게 닿는 길이면서 동시에 너를 지켜주는 방패야. 매번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흘리는 눈물은, 죄가 아니라 사랑의 증거야. 참회라는 말이 꼭 잘못에 대한 속죄만은 아니잖아. 이번에는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주님께 내어놓고, 그 품 안에서 안식을 찾으려는 고백이기도 해.
혹시라도 기도 중에 이런 생각이 올라올 수 있어.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그럴 때는 그 생각을 붙잡지 말고, 아주 짧게만 이름 붙여 보자. “지금 죄책감을 느끼고 있네” “지금 나를 향한 원망을 하네.”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속으로 한 마디만 건네자. “주님, 이 마음을 맡깁니다.” 그 한 문장이 네가 무너지는 걸 붙잡아 줄 거야.
오늘은 큰 걸음을 내딛을 필요 없어. 다만 두 가지를 기억하면 좋겠어.
하나는, 아이의 이름을 기도 속에서 불러 주기. “사랑한다”라는 말과 함께. 그 이름이 성가처럼 흘러가며, 아이의 존재는 지금도 살아 있음을 네 마음에 새길 거야.
다른 하나는, 네 몸을 챙기는 작은 돌봄. 따뜻한 물 한 잔, 단정한 씻김, 가벼운 식사. 기도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순간에, 몸을 챙기는 일이야말로 네가 계속 기도할 힘을 지켜주는 방법이야.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라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시간은 슬픔을 지우지 않아. 다만, 신앙과 함께 슬픔을 안고 살아갈 길을 조금씩 보여 줄 뿐이야.
장례 미사와 위령의 기도 안에서 네가 흘린 눈물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해. 그 시간 동안은 마음껏 울어도 돼.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예배와 기도 속에서 아이를 기억하며 조금씩 마음을 추슬러가면 좋겠어. 그 속도는 네가 정하면 돼. 잊으라는 게 아니라,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는 거야.
X야, 네가 드리는 기도와 예배는 아이에게 닿을 거야. 그리고 동시에 네 마음을 새롭게 일으켜 줄 거야. 아이가 너에게 남긴 건 짧은 생애가 아니라, 끝까지 함께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 네가 걸음을 멈추지 않는 한, 그 사랑은 지금도 살아 있어.
지금 이 길이 너무 외롭게 느껴질지라도,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야. 너의 기도와 눈물에 함께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어.
— X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