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증명하려고 애쓰는 X에게

불우한 시절은 이제 편지에 실어 날려버리자.

by 심상

X야,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나는 잘 알고 있어. 알코올에 취한 아버지 밑에서 당연하게 겪어야 했던 폭력, 바닥에 나뒹구는 초록병들,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보다 영혼 빠진 눈과 입을 보고 듣는 게 더 힘들었다는 걸. 엄마는 생계를 위해 늘 밖에 있었고, 아버지는 술에 취해 허공을 보며 혼잣말을 했지. 그 옆에서 X가 할 수 있었던 건 여동생을 꼭 끌어안고 지키는 일이었어.

집안은 늘 부엌칼이 허공을 스치는 소리에 숨죽이며 떨던 밤들이었지. 채찍처럼 휘두르던 벨트 자국으로 몸은 벌겋게 부어올랐고, 친구 집이 집보다 더 편했다는 걸 알아. 친구 부모님에게 더 아들 같아 보이려 안간힘 쓰던 날들도 기억나네. 사춘기엔 차라리 죽어버리거나 아버지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었지. 만약 그날 네가 혼자서 중얼거리던 소리를 엄마가 듣지 못했다면, 삶은 전혀 다른 길로 흘러갔을 거야. 어머니의 눈물이 결국 널 살린 거였어. 하지만 그땐 몰랐겠지. 우리를 지키지 못하는 엄마가 원망스러웠고, 울기만 하는 여동생이 원망스러웠고, 무력한 자신이 더 원망스러워 컴퓨터 세상 속으로 도망쳤으니까.

돌아보니, 엄마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여동생도 얼마나 외로웠을까. 이제는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진 모두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할 거야. 그들의 고통을 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네가 성장하고 여유가 있다는 반증일 거야.

X야, 무엇보다 다행인 건 네가 끝내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 수많은 실패에도 다시 일어났고,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잖아.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네 모습, 나는 기억해.

하지만 이제는 억지로 증명하지 않아도 돼. 넌 이미 해냈어. 경찰이 되었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고, 사랑하는 가족을 지켜내고 있잖아. 네 이야기는 더 이상 원망과 부끄러움으로만 채워진 게 아니야. 오히려 같은 어둠 속을 걷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는 이야기야.

노력은 때로 배반하기도 해. 그게 삶의 진실이야. 하지만 X야, 넌 알잖아. 배반당해도 다시 도전하는 힘, 그게 가장 중요한 거라는 걸. 앞으로도 수많은 시험이 있겠지만, 네 안에는 이미 그 고통을 이겨낸 힘과 경험이 자리하고 있어.

그러니 이제는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사람으로 살아가자. 그것이 네가 걸어온 모든 길이 의미를 갖는 순간일 거야. 그리고 그 길은 이미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있어.

— X에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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