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온(金守溫, 1409~1481)의 「술악부사(述樂府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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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 켜켜이 쌓인 얼음 위에
차가운 댓잎 자리 깔고 누워
차라리 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날만 새지 않기를
十月層氷上 십월층빙상
寒凝竹葉棲 한응죽엽서
與君寧凍死 여군녕동사
遮莫五更鷄 차막오경계
<김수온(金守溫, 1409~1481), 「술악부사(述樂府辭, 민간의 노래를 적다)」
번역은 반역이란 말이 있다. 번역의 한계와 어려움을 나타낸 것이다. 위 시는 고려가요 「만전춘(滿殿春)」의 일절을 번역한 것이다. 제대로 옮겼을까, 그렇지 않을까?
어름 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 주글 만뎡
情둔 오날 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
「만전춘」의 포인트는 님과 함께 있고 싶다는 소망이다. 하여 부디 날이 새지 않기를 반복해 말하고 있다. 날이 새면 님이 떠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술악부사」는 이런 간절함을 제대로 옮기지 못했다. 같은 시구를 반복해 쓸 수 없는 한시 작법의 한계 때문이다. 김수온도 이런 한계에서 오는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 시를 원작[만전춘]의 감흥을 살려 읽으려면 마지막 구를 원작처럼 반복해 읽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역시 한계가 있다. “情둔 오날 밤 더듸 새오시라 더듸 새오시라”의 감흥을 “遮莫五更鷄”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직역하면 “닭아 새벽 울음 울지 말아라” 혹은 “닭이야 새벽 울음 울건 말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반복해 읽은들 원작이 감흥이 살아나겠는가.
여담. 한시는 우리에게 암호와 같은 시가 돼버렸다. 번역을 통해 감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번역도 자칫 반역이 될 수 있기에 감상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