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익은 잡생각.
중국의 과거 역사책을 읽다 보면 그 시대가 그 시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란 그저 정권이 바뀌는 것뿐. 헤겔이 중국의 역사를 '정체'라고 말한 것도 일리 있는 말인 것처럼 느껴진다. 정반합의 발전적/직선적 사관을 가졌던 그에겐 어쩌면 당연한 인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중국 역사(나아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역사)는 '정체'됐었던 걸까? 그것은 혹 역사 기술의 방법(흔히 말하는 기전체나 편년체 기술법과 같은)에서 비롯된 그릇된 인식은 아닐까? 나아가 역사를 꼭 발전적/직선적으로만 보는 게 옳은 관점일까? 역사를 '현상'과 '당위'의 순환적 관점으로 볼 수는 없을까?
역사를 '현상'과 '당위'의 순환적 관점으로 보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은 영/정/순조 때 관각문인의 대표 격인 남공철의 '여김극기문론서'를 번역하다 든 생각이다. 남공철 당시는 정조가 '문체반정'을 명할 정도로 정통 고문의 아성이 흔들리던 시기였다(그 중심에 우리가 잘 아는 연암 박지원이 있다. 남공철은 박지원과 대척점에 있었다). 정통 고문의 아성이 흔들리는 것은 '현상'이다. 여기에 고문 창작을 강제하는 '문체반정'같은 것은 '당위'에 해당한다. 둘은 길항 관계이고, 이는 순환된다. '당위'에서 '현상'이 나오고, 그 '현상'은 다시 '당위'가 되기 때문. 이를 다른 분야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위와 같은 생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