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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찔레꽃 Oct 01. 2024

산소 유감

                                                               부모님 산소




“폐하도 돌아가시고 소하도 죽은 뒤에는 누구를 승상으로 앉히면 좋겠습니까?”

“조참이 가하다.” 

“조참 다음에는 누가 적당한지요?”

“왕릉이 가하다. 그러나 혼자는 어렵다. 진평이 함께 해야 한다.”

“주발은 투박하나 유 씨를 부지할 이는 주발이다. 태위로 임명하라.”

“이들 후에는 누가….”

“이후는 내 알 바 아니다.” 


한 고조[유방]가 위독할 때 부인 여후가 고조와 문답한 내용이다. 마지막 부분은 “네 알 바 아니다”로 풀이하기도 한다(그때 되면 너[여후]도 죽을 텐데 뭐 거기까지 걱정하냐는 의미로 보는 것). 아침에 '통감절요'를 읽다 만난 대목인데, 시사하는 바가 있어 한참 이 대목을 곱씹었다.


어제 부모님 산소에 잔디 씨를 뿌리고 왔다. 봉분 잔디가 많이 상해 새로 입힐까 하다 시험 삼아 씨를 뿌려본 것이다. 산사태 예방을 위해 잔디 씨를 뿌리기도 하니, 산소에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아 시도해 본 것이다(부디 발아가 잘 되기를!).


추석 전 종중 산소를 벌초하면서, 벌초하는 이들이 대부분 60줄을 넘은 이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종중 산소 관리 이야기가 나왔다. 두 가지로 의견이 모아졌는데, 납골당을 만들어 일괄 관리하자는 의견과 그냥 지금처럼 관리하자는 의견이었다(다른 집안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내 의견은 미정이었다.


그런데 오늘 '통감절요'의 이 대목을 읽고 내 의견도 정하게 되었다. 그냥 지금처럼 관리하는 것으로(종중에서 납골당 설치로 의견이 모아지더라도 우리 부모님 산소 만은 예외로 해 달라고 조심스레 의견을 낼 생각이다). 내 사후까지 부모님 산소나 종중 산소를 고민하는 것은 내 역량을 벗어나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내 당대 잘 관리하고 이후의 문제에 대해선 손 놓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은 것이다. 내 사후에는 자식(후손)이 알아서 하겠지, 뭐 그 애들 일까지 미리 간섭할 필요가 있나 싶다. 


오늘 마침맞게 비가 왔다. 잔디 씨가 왠지 잘 발아될 것 같은 예감. 내년 봄에 부모님 산소를 찾았을 때 푸른 잔디가 소복한 봉분을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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