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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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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https://kgy420.tistory.com/801>



結廬古城下 옛 성 아래 집 짓고

時登古城上 때때로 옛 성에 오른다

古城非疇昔 옛 성이 옛 모습 아니매

今人自來往 사람들 자유로이 오가다


배적(裵寂)의 「맹성요(孟城坳)」이다. 한 때 웅장하고 엄중하여 쉽사리 넘나들 수 없었으나 이제는 누구나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을 만큼 퇴락해 버린 성을 보며 세월 혹은 삶의 무상함을 느끼고 있다. 무상함을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성쇠(盛衰)의 대비 표현을 통해 그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무상함은 찬연했던 과거를 초라한 현재와 대비시킬 때 한결 짙어진다. ‘옛 성’이란 시어를 1, 2, 3구에서 반복해 사용한 것은 찬연했던 과거를 도드라지게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이에 반해 초라한 현재를 나타내는 시어인 ‘자유로이[自]’는 마지막 4구에서 그것도 단 한번만 사용됐다. 찬연했던 과거는 성(盛)하게 초라한 현재는 쇠(衰)하게 표현하여, 세월 혹은 삶의 무상함을 짙게 드러낸 것이다. 외견상 평담하게 보이는 시이지만 내부 구조는 정말한 시이다.


역사의 틀을 짜고 권력의 못을 박았던 사람이 아니래도 누구나 한 때 자신이 생각하기에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믿는 이들에겐 현재 그렇지 못할 때 그 무상함은 한결 더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세상은 불공평한 것 같아도 공평한 면이 있다. 무슨 말? 그런 화려함이 없었던 이들은 무상함을 덜 혹은 아니 느낄 것이니, 그렇게 느끼는 이들에 비해 남은 삶을 한결 더 건강하게 살지 않겠는가 싶어서 하는 말이다. 아닐라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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