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시간은 고정시키거나 분절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순간을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해석해 볼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그 순간에 정리됐어.
-내가 그동안 믿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졌어.
여기서의 순간은 마치 일직선으로 흐르고 있던 시간선상에서 튀어 오르는 어떠한 점과도 같다. 두드러지는 시간의 점. 바로 ‘사건’ 아닐까. 어떠한 잠재력을 가진 시간이 특정한 지점을 통과하면서 질적으로 전혀 다른 시공간이 되는 것. 그 전환점이 사건이 된다.
순간을 사건이라 한다면 순간의 쾌를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겠다. 쾌라는 감정 또한 우리의 세계관을 넓히거나 변화시키는 하나의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순간을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는 걸까?
하나의 사건으로 기존의 세계관이 확장될 수 있지만 그것에 이름 붙이기엔 아직 이르다. 일정한 방향 속에서 일어나는 다회적인 사건의 집합인 일상성이 일회적인 사건에는 없다. 일상 속에서 무수한 사건들의 차이와 반복을 통해 우리는 고유한 형태와 특정한 양식을 자아내고, 삶은 자신의 방향을 만들어낸다. 좋아하는 감정이 튀어 오른 강렬한 하나의 점과도 같다면 사랑은 어떠한 방향을 따라 무수한 점들이 조금씩 다른 비슷한 발자취를 남기며 연결된 선과도 같다.
반복은 미세한 차이와 함께 고정된 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상은 한 생명을 이해함과 동시에 가두어버리기도 한다. 대상을 이해하는 데 상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지만 포착됨과 동시에 부수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시간을 분절하여 바라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 착각을 일으킨다.
다시 돌아와서 ‘이 사람을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은, ‘이 사람의 반복(일상) 속에서 차이(새로움)를 발견하고 있는가?’, ‘이 사람의 반복이 자아내는 커다란 흐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 사람을 어떠한 상에 가두어 바라보고 있진 않은가?’로 바꾸어볼 수 있겠다.
사랑은 모호하고, 신비롭다. 손에 잡히는 것 같다가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곤 한다. 잠깐 맛본 사랑의 그림자가 발목을 붙잡기도, 한줄기 빛이 되어 유한한 인생을 찬란하게 비춰주기도 한다. 사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삶의 장과 관계가 펼쳐졌을 때 사랑은 구체적인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모습은 때로는 정말이지 하찮고 별 것 없어서 구차하기까지 하다. 지루하고 싫증 나고 보기 싫어 몸서리 쳐지는 그때 - 그 순간 사랑의 알맹이가 반짝인다.
사랑은 다시 묻는다.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지, 이미 온전함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말이다. 이 질문 앞에 설 때, 사랑은 먼 우주를 돌고 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내가 있는 그대로 살아갈 때. 이미 온전함을 알 때. 받을 사랑을 다 받고 태어난 존재라는 걸 깨달을 때. 사랑은 늘 시작점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