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납적인 접근으로 생각보다 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벽
구독 상품(기간, 가격 등)은 어떻게 구성할지, 구독을 어느 시점에 유도할지 얼추 정해졌다면, 이제 그 구독을 유도하는 시점에 띄울 구매화면(Paywall)을 기획해야 한다. 구매화면은 말 그대로 유저가 구매 행위를 하는 곳이다. 우리는 그들이 구매화면을 방문했을 때 망설임 없이 구매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한다.
여느 기획과 마찬가지로 우리 유저들의 VoC, 유저 인터뷰, 제품 데이터에서 문제를 발굴하여 Bottom-up으로 기획하는 것이 좋을까? 또는 수많은 ‘카더라’에 기반하여 구독 전환에 좋다고 하는 요소들을 가져다가 붙이는 것이 좋을까? 둘 다 아니다.
구매화면은 제품 내 다른 화면들과 다르게 공급자 관점에서의 최적화가 중요한 화면이다. 백화점에 창문이 없고 시계가 없는 것은 소비자들이 원한 기획이 아니다. 시장 내 많은 가격표들이 10,000원이 아니라 9,900 원과 같이 표기되는 것도 소비자들이 원한 기획이 아니다. 구매화면도 마찬가지이다. 소비자가 아니라 공급자의 관점에서, 잠재 구독 유저들의 소비 심리를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획을 찾아야 한다.
'카더라'에서 시드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으나 우리 제품에 맞지 않는 방법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구독 전환에 도움이 얼마나 되는지 간단한 실험이라도 진행하여 확인해 보는 것이 옳다.
우리 제품 구독에 딱 맞는 구매화면을 어떻게 찾아가면 좋을지 살펴보도록 하자.
구매화면은 귀납적으로 최적의 변수들을 조합해 가기 참 좋은 지면이다.
1. 보통 앱을 처음 설치한 모든 유저들이 반드시 거치다 보니 실험 모수가 금방 쌓이는 지면이다.
2. 실험을 빈번히 진행해도 앱 전반 핵심 사용성에 영향을 덜 끼치는 지면이다.
3. 구매화면 내 실험들은 디자인 및 개발 공수가 굉장히 적게 드는 작업들이다.
막말로 한 스프린트는 타이틀만 검증해 보고, 다음 스프린트는 메인 이미지(일러스트/이미지/실사)만 검증해 보고, 그다음 스프린트는 소구방식(유저 리뷰, 숫자 강조 등만 검증해 보고.... 하다 보면 한 분기 내에 6개 남짓 실험을 통해 얼추 최적의 구매화면 찾을 수 있다. 3개의 위너를 발굴해서 구독 전환율을 30% ~ 50% 씩만 개선해도 2배 이상의 전환율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로스가 덜된 시점일수록 실험 타율도 높고 개당 증분도 클 것이다.) 우리 제품도 작년 한 해 동안 누적 30개 내외의 실험군을 거쳐오며 최적의 구매화면을 찾아왔다.
머리 싸매고 최적의 구매화면 기획에 한 달 공들일 시간에, 하루라도 일찍 간단한 실험을 돌리는 게 효율적인 지면인 것. 물론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각 실험이 이기든 지든 간에, 레슨이 잘 쌓일 수 있게끔 변수를 잘 통제하며 실험을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기존 그로스 증분이 유실되지 않고 착실하게 누적될 수 있으니.
위와 같이 누적으로 레슨을 쌓아가다 보면 자칫 부분 최적화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더 큰 그로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는데, 이미 접어든 골목 내에만 머물면서 그 안에서의 최적화에 그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구매화면 실험에서의 증분을 10% 도 만들어내기 어려워지는 시점이 왔다면, 이제 슬슬 아예 색다른 구매화면을 과감히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시점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돌아보니 우리 제품의 구매화면은 꾸준히 그로스 실험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변칙적인 변화도 주기적으로 있어 왔다. 변화 시도 자체는 더 빈번했을 텐데, 변칙 실험군 중 위너가 발굴되는 것이 1년 주기 정도 되는 것 같다. 가장 우측에 위치한 실험군은 정말 자신 없었던 변칙 실험군이었는데, 기존 대조군 대비 1.4 배의 전환율을 내주었던 고마운 실험군이 되었다. 이제는 당당하게 우리의 강력한 대조군으로서 자리하고 있고, 이를 기반으로 또 새로운 그로스 기획들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변칙 전략은 여러 실험군을 도출해 내기가 쉽지 않은데, 이때 그로스를 잘하고 있는 타사들의 구매화면을 참고하곤 한다. 생각지도 못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있지만, 오히려 은근히 등잔 밑이 어둡다고 '진작 테스트해봤어야 하는데!' 싶은 요소들을 발견할 때가 많다.
한편으론 리서치 과정에서 우리 제품의 구매화면을 참고한 것 같은 구매화면을 발견할 때도 많다. (알라미 구매화면의 21년도 9월 버전을 발견할 때도 있고, 23년 초 버전을 발견할 때도 있다.) 내심 뿌듯하기도 하고, 잘 실험해 본 후에 자체적으로 소화시킨 걸까라는 염려가 들기도 하고.. 모쪼록 구독 전환에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그렇게 다양한 실험군을 테스트해봤음에도, 여전히 구매화면 관련 백로그는 쌓여있다. 안타깝게도 이미 누적 그로스 증분이 상당하다 보니 후속 백로그들의 예상 임팩트가 크질 못하다. 최근 들어서는 구매화면 밖 제품 영역에서의 기획들의 임팩트가 훨씬 크기에, 해당 부분에 자연스럽게 우선 순위가 밀리고 있다.
그럼에도 구매화면은 테스트해서 손해 볼 게 없는 지면이라는 점, 작업 공수가 적게 든다는 점에서 현재 상태로 가만히 두고 있는 것 자체가 퍽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모듈화 & 자동화라도 해서 상시 테스트를 돌리고 싶은 지면이랄까... (혹시 이미 본인만의 방식으로, 효율적으로 구매화면 최적화하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배움 나눔 부탁드립니다..!)
만약 현재 제품 내 구매화면이 아무런 테스트 없이 방치되고 있다면, 간단히 타이틀만 바꿔보는 실험이라도, 또는 메인 색상을 바꿔보는 간단한 실험이라도 진행해 보면 좋겠다. 생각보다 쉽게 구독 전환율을 올릴 수 있는 시드가 가까이 있을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