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만 했을까 성장도 했을까
올해도 벌써 1/5 이 지났다. 유난히 이번 분기는 더 정신없이 지나갔다. 왜 그런고 하니 내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시나브로 양적으로 많아지고 질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추가된 것들도 많고, 기존의 것 중 달라진 것도 많다.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캘린더가 빼곡해졌다. 하루 일과를 아침 7시에 시작하는 게 디폴트가 되었고, 꽤 빈번하게 밤 23시에 줌 콜을 진행하기도 했다. 새해 결심으로 개인 약속을 대폭 줄였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개인 일정들이 들어찼다.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큼직한 단위로 정리를 해본다.
01. Head 가 되다. [Good]
a. 단기적인 역할 : 모든 스쿼드의 성공적인 스프린트 운영
b. 중장기적인 역할 : 전체 목적 달성을 위한 채용 및 조직 개편
02. 실무적인 성취가 아쉽다. [To Improve]
03. PO로서 경험치 확장에 나서다. [Good]
a. 지난 나의 경험을 톺아보며 다른 PO들과 이야기하기
b. 제로투원을 글로벌리 달리는 사람들의 찐 커뮤니티 만들기
c. 이른 아침 시간 활용해서 제품 공부 하기
가장 큰 변화는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가장 많은 몰입을 하고 있는 회사(딜라이트룸)에서의 역할 변화이다. 기존 PO 역할에 Head of Squads (이하 HOS)라는 역할이 더해졌다. PO의 역할이 목적 조직의 목적을 팀으로서 달성하는 것이라면, HOS의 역할은 여러 목적 조직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운영'적인 어려움이 없도록 함에 있다. 그럼 나는 이번 분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들이 더해졌던 걸까?
PO가 목적 조직의 목적을 팀으로서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세부 역할들이 요구된다. 탄탄한 비전/전략 하에 임팩트 높은 기획을 뽑는 것이 그 시작이고 작업 배포 이후 분석을 하는 것을 끝이라고 한다면, 운영 역량을 그 중간 허리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더 세부적으로는 각 기획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유연한 우선순위로 인입하고, 높은 예측 가능성과 심리적 안정감으로 타 팀과 협업하며 적시에 배포하는 것을 운영 역할이라 할 수 있다. 나는 HOS 로서 다른 PO들의 허리를 보조하는 역할을 한 셈이다. 모든 스쿼드의 스프린트 플래닝과 회고를 도맡아 진행했고, 스프린트 진행 간 우선순위 조율도 범스쿼드로 빈번하게 진행했다.
뜻밖의 큰 변화 중 하나는 제품 전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각 스쿼드들이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 겪는 스트레스들을 고스란히 함께 느끼기 시작했다. 원래도 제품 전반을 생각하며 의사결정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Head 로서의 관점은 아예 질적으로 다른 관점이었다. 기존에는 내가 의사결정 해야 하는 사안에 한하여 전체를 고려하며 결정했던 것이고, 이제는 의사결정 해야 하는 사안 자체가 전체로 늘어난 것이다.
제품 모든 영역에서 책임감을 느끼다 보니, 중장기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까지 생각이 뻗쳤는데 그 종착지에는 채용과 조직 개편이 있었다. 특히 모든 스쿼드의 플래닝과 회고를 함께 진행하다 보니 현재 팀 구성 측면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더 잘 보이게 되었다. 채용으로 풀어야 할 부분과, 팀 개편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을 나눠서 차근차근 진행하였다. 트랙션 북 스터디를 통해 팀 운영 측면에서 활용해 보면 좋을 다양한 프레임 워크들 (GWC, 책임조직도, 펄스 등)을 참고해보기도 했고, 주 1회 이상 외부 교류를 통해 팀 운영 측면의 노하우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분기 도중에 디자인 그룹과의 협업 방식에 큰 변화를 주었고 (디자이너의 탈 스쿼드화), QA 인턴이라는 방식을 도입해 보았으며 1-2명의 PO 채용 프로세스도 진행되기 시작했다. 또한 스쿼드 멤버 구성에 한차례 변화를 주어 전체적인 퍼포먼스 상향을 도모해 보기로 하기도 했다.
제한된 리소스 내에서 HOS 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다 보니 기존 PO로서의 실무에서 구멍이 발생할 거라는 예상은 했었다만, 생각보다 더 실망스러운 분기였다. 요약하자면 타 스쿼드들의 운영적 어려움을 해소해 나가면서 반대로 내가 담당하는 스쿼드의 운영적인 어려움들이 야기되었던 분기였다. 백로그가 제 때 완비되지 않거나, 우선순위가 급하게 조정되는 때가 빈번해 예측 가능성 및 심리적 안정감이 줄곧 높지 못했다. 그나마 오랜 기간 합을 맞춰온 멤버들의 배려와 양보 덕분에 무탈히 한 분기를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운영적 어려움뿐 아니라 양질의 기획 도출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리소스가 빠듯하다 보니 뚜렷한 방향성 또는 전략에 기반하지 못한 채 다소 산발적으로 기획서가 작성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우리 스쿼드의 담당 이니셔티브는 점점 늘어갔고 그 사이의 우선순위 판단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여 팀 내 혼란이 가중되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는 유의미한 그로스들이 얇고 넓게 퍼졌던 분기였다. HOS 로서의 Good의 크기가 훨씬 컸다는 점도 감안하면 어째 저째 잘 선방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만, 그 과정에서 겪은 멤버들의 멀미를 생각하면 다음 분기 필히 해당 부분 개선들이 필요하다. 채용 및 조직 개편 과정에서의 여러 역할 위임이 그 방법 중 하나일 것 같고, 또 HOS 로서의 역할 중에 한 두 가지를 개별 PO 들에게 위임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
지난 커리어까지 포함하면 사실 나는 '수익화'에 과하게 포커스 된 PO로서 살아왔다. 중간중간 수면 기능을 출시하기도 했고, 친구 초대 기능, 출석 체크 기능을 출시하기도 했지만 빼어난 전략에 기반하여 순차적으로 그로스 해나간 경험은 아니었다. HOS 가 되면서 제품 성장의 앞단 단계에서의 그로스 경험치까지도 섭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ctivation, Retention, Referral과 관련하여 나의 지난 경험들은 당시에 다른 수익화 그로스에 밀려 스리슬쩍 잊힌 감이 있었다. 이를 톺아봤을 때 분명 양질의 인사이트들을 뽑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데이터리안이라는 플랫폼에서 '퍼널 최적화' 관련한 강연 섭외 요청이 들어왔고, 다른 PO 실무자들은 어떻게 퍼널 그로스를 만들어내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선뜻 참여하기로 했다.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의 접근 방식들을 도식화하여 정돈해볼 수 있었고, 여러 Q&A 에 대비하며 미처 보지 못했던 데이터들도 재차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실제 강연 진행 간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는데 '아 다른 PO들은 이런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런 부분에서의 인사이트들을 필요로 하고 있구나.'라는 점들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대부분 '유저 단위'의 분석들을 필수적으로 가져가고 있었고, 과정에서 데이터 인프라적인 어려움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간 유저 단위의 분석은 일절 진행하지 않고 있었던 나였기에, 추후 로그인이 어느 정도 필수화 되고 나면 더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겠다 싶었다. 강연 반응이 괜찮았던 것을 보면, 그간 나의 퍼널 최적화 방식이 나름 괜찮았던 방식이었구나 싶기도 했다.
지난 1월 혜원이의 요청으로 모멘텀메이커와 함께 진행했던 강연(Go To Global)이 한 차례 있었는데, 그날의 강연은 좋은 의미로 챌린징 했다. 대부분의 수강생들이 스타트업 대표님들 이시다 보니 고민의 폭과 깊이가 남달랐고, 그곳에서 발로 하는 질문의 깊이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이런 고민들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커뮤니티를 구성하면, 서로에게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불필요한 시행착오 없이 쌓아갈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슈퍼 학습 기제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그 생각을 혜원이는 행동으로 바로 옮겨 GBC (Global Business Connector)라는 커뮤니티를 창설했다;
딱 한 번의 킥오프 만남으로 추진된 프로젝트는, 재밌게도 그 자체로 또 다른 제로투원 경험이기도 했다. 아직 2주일 밖에 진행되지 않았지만 모호했던 디테일한 영역들이 멤버들의 참여를 통해 구체화되고, 이미 양질의 인사이트들이 서로 공유되기 시작했다. 한 차례 내부 서베이도 진행되었는데, 피와 살이 되는 피드백을 자양분 삼아 더 나은 커뮤니티로 성장하면 좋겠다. 나는 이 커뮤니티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나를 현실에 안주하지 않게 하는 좋은 성장 기제로 동작하고도 있다.
HOS 로서 여러 목적 조직을 챙기면서, PO로서의 실무를 병행하다 보면 타사 제품에 대한 공부를 깊게 하기가 어렵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가장 간단하면서도 일차원적인 접근으로 아침에 2시간 더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기로 했다. 매주 화, 목 아침 스터디를 꾸려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각자 원하는 공부를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 또한 러프한 운영 방식으로 진행 중인데, 벌써 제법 구체화되어 서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디벨롭되고 있다. 매번 스터디 때 각자 공부한 내용들을 기록하여 스터디 말미에 공유하고, 월에 한 번은 가장 좋았던 인사이트들을 모두에게 발표하기로 했다. 과연 얼마나 큰 성장 경험치를 내게 줄 수 있을 것인가..?!
이 외에도 1분기에는 여러 가족 행사 모임 (어머님 아버님 아버지 생신, 와이프 생일, 설 명절, 고모 칠순, 조카 100일)이 있었고, 적절한 바람 쏘임 (용산 호캉스, 속초 나들이, 횡성 글램핑)도 챙겼다. 태어나 처음으로 PT 를 받기 시작해 현재 26회 째 이어가고 있으며, 농구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아 그리고 1년간 길렀던 머리를 짧게 쳤다.
유난히 이번 분기는 더 정신없이 지나갔다. 왜 그런고 하니 내 인생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시나브로 양적으로 많아지고 질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바쁘다보니 개인 회고를 제 때 못했는데.. 늦게 나마 몰아서 돌아보니 정말 다채로운 요소들로 가득찼던 한 분기였다.
뭐든 익숙해지면 효율화되고 또 디벨롭 되리라는 확신이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바빠진 요즘의 정신없음도 곧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여느 때와 같이 좋은 방향으로 더 세공될 것이다.
더 큰 기대를 안고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다음 분기로 나아가 본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