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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phan Seo Feb 05. 2020

29살 동갑내기의 결혼 준비

그 과정에서 느낀 6가지 

지난 8월 마지막 브런치 글 이후 약 4개월 정도의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늘 '바쁘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나임에도, 경험이 쌓임에 따라 '바쁨의 역치'가 높아지고 있는 나임에도, 지난 4개월은 공사가 정말 다망하여 분 단위의 스케줄링을 한다든지, Slot 을 잘게 쪼개어 저녁 일정을 2-3개를 소화한다든지 물리적인 힘듦이 상당히 컸던 시기였다.  


이 글은 2019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맞이하기 전에 잠시 호흡을 고르고, 정신없이 달려온 올해를 돌아보는 글이며, 특히 그 중에서도 인생의 이벤트인 결혼 준비에 대하여 상세히 풀어 기록해보려 한다. 달려온 과정에서의 느낀 점들에 대한 간단한 서술과 함께,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 또한 적어보려 한다. 이는 91년생 동갑내기 커플이 함께 겪어온 결혼 준비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서, 다른 커플들의 관점과는 다소 상이한 관점일 수 있다.


발행을 2월 5일에 하게 되었으니, 글 자체를 완성하는 데에 2개월 남짓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신혼집 입주를 하게 되면서 시간이 늘어지게 되었다는 점을 구차한 변명으로 달아본다.


결혼 준비로 시간 순삭 !


2019년 1분기는 결혼을 결심하고 프로포즈를 준비하는 기간, 2분기는 프로포즈를 하고 양가 부모님들께 공유를 드린 이후 대략적인 향후 플랜들을 세운 시기로서 마음과 머리가 분주했을 뿐 물리적인 시간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3분기에 접어들면서 웨딩홀 예약과 본식 일자를 픽스하게 되고, 흔히 일컫는 '스드메 (스튜디오촬영 / 드레스샵 / 메이크업샵)'와 맞춤 예복을 준비까지 완료하고 나니 어느덧 4분기 말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리고 신혼집을 마련하고 나니 20년 1분기도 절반이 지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느낀 6 가지에 대해 지금부터 찬찬히 글로 써내려보고자 한다.


(1) 프로포즈는 결혼에 대한 결심이자, 상호간의 약속

(2) 결혼이란 서로가 가족이 되는 것 

(3) 어떠한 투두들이 필요할까? 그리고 웨딩 플래너란 누구인가 ? 

(4) 훈수 두기 좋은 주제처럼 보이지만 절대 둘 수 없는 주제인 "결혼"  

(5) 남녀의 성역할을 가장 많이 규정하는 영역 "결혼"

(6) 신혼집, 알고보니 가장 어려웠던 세 글자 


(1) 프로포즈는 결혼에 대한 결심이자, 상호간의 약속

심사숙고에 기반한 결심

연애 초기부터 '결혼을 하게 된다면 이 친구와 해야지' 라는 마음이 있었고, 습관처럼 '우리는 결혼해야지'의 언사를 일삼곤 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프로포즈'라는 이벤트를 준비하려 하니 그 결심 - 이 친구와 결혼을 해야지 라는 결심 - 을 내리는 것부터 제법 많은 시간을 갖게 되었다. 인생의 가장 큰 이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벤트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심사숙고일지 모르지만, '수많은 기혼의 커플들은 이 모든 심사숙고를 정말로 모두 거쳤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는 정말 어려운 고민이었다. 지금도 우리의 결혼과 관련하여 주변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 필자가 91년생임을 감안하면 주변의 대다수는 미혼의 남성, 여성들이다. - "어떤 부분에서 결혼에 대한 확신이 들었는가" 일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의사결정임에 틀림 없다만, 이를 결심할 때에 들였던 많은 고민의 시간 덕분에 지금은 어렵지 않게 해당 질문에 답변을 줄 수 있다. 

A. 함께 있는 것이 혼자 있는 것보다 (또는 다른 친구들과 있는 것보다) 즐겁다.
B. 가치관의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 
C.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부분들을 맞춰가거나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뒤에서 다룰 주제에서도 언급될 이야기지만, 결혼이라는 것에는 보편적인 정답이 없다. 마치 정답이 있는 것마냥 훈수를 주는 인생의 선배들이 있지만 그것은 여러 정답 중에 하나일 뿐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닐 수 있다. 이 글 또한 '결혼은 이렇게 해야 한다'의 논설문이 아니라 '나의 결혼은 이렇게 준비했다' 의 수필일 뿐이다. 

"약속"

프로포즈 또한 하나의 소통

결심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것이기에 서툴겠지만, 서툴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연애 초반에 프로포즈와 관련한 이야기 - '프로포즈'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를 주고 받은 적이 있었다. 그것이 서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제대로 의미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 -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어서 그런지 프로포즈 준비를 함에 있어서 심적 부담이 덜하였다. 


프로포즈에 대해 부담이 느껴지거나,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거나 한다면, 서로 대화를 먼저 해보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프로포즈의 기원이 어디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프로포즈의 목적은 그 형식 보다는 메세지 전달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에 대한 심사숙고에 기반한 결심, 그리고 결혼 준비를 함께 시작하기 이전에 '이제 결혼을 하자' 내지는 '결혼 준비를 하자' 라는 메세지를 또렷하게 전달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것에 대해 고민이 있다면 너무 늦기 전에, 함께 편하게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좋다. 인생의 중대사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서 그것을 명료히 하지 않고 시작한다면 뒤로 갈수록 2인 추진체의 견고함이 떨어질 수 있으니..


(2) 결혼이란 서로가 가족이 되는 것 

3월의 프로포즈 이후 바로 진행된 스텝은 양가에 이를 알리는 작업이었다. 결혼이라는 것은 결혼을 하는 행위 - 결혼식 -도 뜻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결혼 이후의 기혼의 삶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였다. 어쩌면 이 부분은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기에 프로포즈 이전부터 양가 왕래를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꾀하였던 것 같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결혼 준비를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부터 양가 부모님과 형제 자매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불필요한 마찰을 없애고 매끄럽고 조화로운 결혼 준비를 꾀하였다. 

이미 필자와 필자의 피앙세는 중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관계였고, 교제를 시작한 이후에도 양가 부모님들과 식사와 음주시간을 제법 빈번하게 가져 왔기 때문에 다른 커플들보다는 이 부분에 있어서 이미 매우 가까운 위치에 놓여있음은 분명하였다. 허나 연애와 결혼은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충분히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훨씬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 생각하였다. 프로포즈 이후 격주로 만나뵈면서 공식적으로 '결혼 허락'을 받아냄과 동시에, 결혼에 있어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부분들을 청취하고 그것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의 결혼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A. 자주 소통할 것
B. 서로가 서로의 편이 되어줄 것 
C. 예민한 주제에 대해서는 소통 단계를 나눠갈 것

여기서도 (일반 사회 생활과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소통"이었다. 결혼은 우리의 이벤트이지만,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부모님의 이벤트라고 생각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아예 부모님의 이벤트인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경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의 그림이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부모님들의 의견을 - 당신들께서 섭섭해하지 않으실 선에서 - 어느 정도 반영할 생각이었다. 보다 더 우리의 생각대로 끌고 가면서, 부모님들의 섭섭함을 줄이려면 그만큼의 기민한 소통에 기반한 결혼 준비가 요구되었다. 본가인 안양을 자주 방문하기 어려워도 최소 월 1회는 방문을 하였고, 주기적으로 전화를 하며 진행사항을 공유하였다. 그러한 짧은 공유(Sync up)만으로도 모두가 engage 하면서 행복한 결혼 준비가 될 수 있음이 제법 흥미로웠다. (더불어 재밌는 부분은 그럴 때마다 가볍게 피드백들을 주시는데 해당 피드백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다. 부모님들은 역시 우리들의 인생 선배이기도 하다.)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신경쓰면 좋을 부분은, 동일한 메세지 전달에 있어서도 서로의 편을 들어주는 표현을 통해 서로에 대한 호감을 은연 중에 쌓아주는 것이다. 가령 필자의 경우 예복을 맞추는 날에 체촌 (몸의 치수를 재는 행위)하는 사진과 함께 결과적으로 어떤 소재의 어떤 구성의 예복을 맞추기로 했는지 가족들과의 채팅방에 공유를 하였다. 이 때 그냥 공유를 하는 것이 아니라 "00가 디자이너라서 그런지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소매 안감 소재까지도 꼼꼼히 따져줬다. 완전 수제로 결제까지 00가 해줘서 편했다." 라는 식의 약간의 각색을 더해주는 것이다. 


특히 민감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예측 하지 못한 때에 직접적으로 양가 사이에 대화 주제로 떠오르기 이전에 미리 소통의 단계를 구분하여 원만하게 의사 결정이 되게끔 프로세스를 잘 잡아주면 좋다. 소통 단계의 구분이란, [i] 특정 사안에 대해 각자가 각자의 부모님의 의견을 청취해 오고 [ii] 이를 기반으로 둘이서 의사 결정을 한 차례 한 다음에, [iii] 해당 의사결정으로의 타결을 위해 각자가 각자의 부모님을 어느 정도 설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물론 [i] 에서의 부모님들의 의견의 강도(strength)와 상호 간의 의견 갭의 크기(distance)에 따라 [ii] 의 의사결정 단계에서의 전략 수립이 매우 까다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록 이러한 소통 단계의 구분은 중요해지며 이를 통해 각종 의사결정들이 원만히 해결되면 - 그 과정에서 쌓이는 상호 간의 신뢰 내지는 동질감 ('생각보다 양가 사이에 의견이 잘 맞네'하는 공감대 형성) 으로 이후의 의사결정들은 보다 수월하게 진행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 어떠한 투두들이 필요할까? 그리고 웨딩 플래너란 누구인가 ? 

자, 이제 본격적으로 결혼을 위한 실무적인 스텝을 내딛어야 한다. 

"수능을 치르기 위해서는 언어/수리/외국어/사탐or과탐/제2외국어 과목을 준비해야 하고, 이 때 사회 탐구는 한국지리, 한국사, 윤리와 사상 ...  이고 주요 학습 교재는 .... 인터넷 강의와 ....가 있다" 

그렇다면 결혼에는 어떠한 투두들이 존재하고, 이를 준비하는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사람들마다 삶의 양식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정규 커리큘럼 마냥 정해진 규격은 없지만 '보편적인' 설명을 하자면 이러하다. 

진하게 표기한 것 중 스튜디오 / 드레스샵 / 메이크업샵을 흔히 '스드메'라고 칭한다.
4 가지 뿐이지만, 가장 중요한 4가지 

위 내용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결혼'의 그림에 따라 조금씩 빠지거나 더해진다고 보면 된다. 필자의 경우 위 내용을 주변 지인들을 통해 많이 습득하기도 하였으나, 한번에 단권화 하는 데에 큰 도움을 받은 것은 웨딩 박람회에 참여하여 '웨딩 플래너'의 상담을 1시간 가량 받은 경험 덕이었다. 


여기서 웨딩 플래너란, 위의 수많은 투두들 중 'A. 결혼식 관련 투두들'의 진행을 용이하게 해주는 일종의 대행 서비스 제공자이자 컨설턴트이다. 상담을 통해 예비 신랑 신부의 취향 (추구하는 그림)을 파악하고, 이에 걸맞게 각 항목들의 후보 업체들을 리스팅 하여 공유해준다. 결혼 준비 초기의 흔한 의사 결정 주제는 '웨딩 플래너를 쓸거냐 말거냐' 인데, 사실 이는 각자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 플래너 활용의 장점과 단점을 하기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가변하는 것이고, 사람에 따라 가변하는 것이다. 스몰 웨딩 (소수의 인원만 초대하여 간단하계 혼례를 치르는 웨딩)도 점차 흔해지고, 아예 결혼식을 생략하는 경우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우리 부모님 세대 때는 뷔페식 결혼식이 드물었다고 한다. 결혼식장과 식당은 분리되어 있는게 보편적이었고, 여기서 말하는 식당은 결혼식 소유의 식당이 아니라 바로 근처에 있는 갈비탕 집, 한식 집 등을 대관하여 식사를 제공했다고 한다. 30년 사이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요즘은 호텔식 웨딩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 않은가. 주례도 없는 예식이 더 보편화 되고..


즐거운 웨딩 프로젝트 진행

필자의 경우 결혼 본식까지의 기간이 넉넉하고, 직접 모든 것을 준비해보고 싶은 니즈가 강했기 때문에 별도의 웨딩 플래너 없이 모든 것을 직접 진행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웨딩 업계에 대해 학습한 것들이 제법 재밌고 유익했다.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된 것 같으면서도 불투명하고 비대칭적인 기이한 구조 (=아무것도 모르고 접근했다가는 눈 뜨고 호갱당하기 쉬운 시장), 일상적인 소비 지출 규모와는 차원이 다른 가격 체제(= 사전 현금 유동성 확보의 필요), 소비를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창구들을 활짝 열어두고 추가 지출을 웃으며 요구하는 자본주의 극단의 면면, (= 확실한 주관을 바탕에 둔 플래닝과 소비 필요) 끝으로 업계 내 모든 것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매우 디테일하게 규격화/체계화 되어 있다는 점, 그래서 학습하기가 용이했다는 점 (= 웨딩홀  00와 00, 00 등을 기준으로 구별되며, 과금 방식은 ~하다.)이 흥미로웠다. 

여자친구와 둘이서 함께 진행해본 "웨딩 프로젝트"

직접 진행하는 경우에는 위에 나열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크게 구분하여도 그 가짓수가 많고, 각각의 대분류 안에서도 살펴보고 의사결정 해야 할 중분류/소분류가 정말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엑셀/스프레드시트를 활용하여 정돈해간다. (노트나 다이어리 등 수기로 정돈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그 결과로서 모두가 만족할 의사결정이 도출되는 것도 좋지만 그 정돈의 과정이 제공하는 소소한 재미도 이제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4) 훈수 두기 좋은 주제처럼 보이지만 절대 둘 수 없는 주제인 "결혼"  

결혼 준비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인데, 누구를 만나든 "결혼"이 이야기 메인 주제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의 인생에서 제법 큰 이벤트라는 점에서 메인 토픽으로서의 자격요건은 충분함직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친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상대방 또한 쉽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고 이후 제법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토픽이라는 점에서 더 쉽게 접근되는 토픽이라 생각이 들었다. 

흔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공유를 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공통 관심사가 없는 경우에는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대화의 부족은 곧 관계의 소원함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에 결국 관심사가 겹치지 않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가깝지 않은 사이에서 '날씨' 얘기가 항상 메인 토픽인 것과, 서로가 어디에 거주하는지를 물으며 해당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결혼'이라는 것은 흥미롭게도 다른 주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많은 사람들의 공통 관심사 (또는 공통 경험) 이기 때문에 해당 주제에 대해 거의 모든 사람들과 30분 이상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단골 주제인 것이다.


결혼에는 정답이 없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필자의 대화 상대가 미혼자의 경우는 나의 결혼 이야기를 통해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하고, 기혼자인 경우는 본인의 결혼 이야기를 통해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하는 구도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마치 멘토와 멘티의 관계가 자연히 형성되는 셈이다. 물론 경험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정보값의 제공은 매우 유용할 것이다만, 대체로 대화의 양상은 정보값의 제공에 그치지 않고,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 주입으로 이어진다. 가령 결혼을 할 때 예단은 꼭 이것을 해야하고, 웨딩 플래너는 꼭 써야 한다 등 .. - 당장 필자의 경우는 애초에 예단은 할 생각이 없었고 웨딩 플래너는 쓸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해본걸까 ?

이것은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해 정답을 지정해 놓는 꼴로 제법 가볍고 위험한 행태일 수 있다. 자칫 조급한 마음에 이러한 멘토들의 가이드를 줏대없이 따르다보면 본인들의 색채가 누락된, 공허한 결혼의 삶을 맞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멘토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경험을 공유해주되 열린 답변을 제공함으로써 멘티로 하여금 균형잡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큰 도움을 준 것이니.


(5) 남녀의 성역할을 가장 많이 규정하는 영역 "결혼"

홀로 살던 때와 달리 이제는 둘이서 함께 모든 것을 의사결정 해야 하고, 특정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도 역할 분담이 필요해진다. (또는 '돌아가면서 수행하는 것'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든지 -!) 사실 결혼 이전에, 연인 시절에서부터 간단한 역할 분담들은 정해왔을 수도 있다. 특히 장시간 여행이라도 함께 가본 사이라면 더욱이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 커플 또한 성역할과 관련한 소통을 꾸준히 해왔고, 결혼 준비를 시작하는 때에도 이와 관련한 갈등은 없으리라 자부했다. 그러나 뜻밖의 갈등요소들이 이곳 저곳에 놓여있었고, 이것이 제법 흥미로웠다.


무의식에 자리잡힌 성역할 규정에 대한 재질문 필요 

역할 규정은 흔히들 "남자가 ~을 해야 한다. 여자가 ~을 해야 한다." 등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프레임으로 인해 설령 서로가 원하는 역할로 규정되었다 할지라도 선택의 자유가 박탈된 것 자체가 불평등이며, 대게는 상호 모두 만족스럽지 않은 역할 규정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서는 이러한 프레임을 던져버리고 서로의 자율적인 소통 하에 역할들을 분담하곤 한다. 

하지만 함께 살기 시작하는 '결혼'을 앞에 두고는 해당 프레임을 보다 정교히하여 과연 현재 우리가 해당 프레임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재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남자가 ~을 해야 한다. 여자가 ~ 을 해야 한다." 라는 프레임에서, "남자가 ~을 하지 않는 것이 좀 어색하다. 여자가 ~을 하지 않는 것이 제법 이색적이다." 라는 프레임으로 바꾸었을 때 여전히 특정 행동들에 대해서는 과거의 성역할 프레임에 갇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저 집은 남편은 운전을 못하고, 아내가 운전을 해." "저 집은 아내가 운전을 못하고, 남편이 운전을 해." 앞 두 문장 중 어느 하나가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되지 않고 '둘다 그럴 수 있지'로 느껴져야 성 역할 프레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혹여 성별에 따라 특정 행동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면 - 해당 부분에 대해 한번쯤은 서로 편하게 소통해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 커플 또한 서로가 원하는 가정을 그리기 위해 서로 노력을 하는 것이지, 역할 기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업계와 부모님 세대는 아직도 8-90년대의 성역할 가치관

이러한 재질문이 사전에 필요한 이유는 결혼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소통하게 될 웨딩 업계와, 우리 부모님 세대의 경우 우리보다 더 공고히 구축된 성역할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프레임으로부터의 명확한 현위치 파악이 없이 소통을 하다보면 어느새, 본인들이 원하지 않는 성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에 갈등이 야기될 수 있다. 반대로 여러 재질문을 통해 서로가 어디쯤에 놓여있고, 앞으로 어떻게 역할들을 가져나갈지 한 차례 소통이 된 이후라면 - 이에 대해 의문을 같은 업계 사람들, 부모님들을 설득 내지는 유연하게 대처해나갈 흔들리지 않는 동력이 생길 수 있다.

웨딩 박람회부터, 스튜디오, 웨딩홀, 심지어 일반 은행까지 - '신혼 부부' 타이틀을 달고 고객으로서 소통을 하게 되면 정해진 성역할에 기반한 안내가 아직도 만연하다. 항상 일단 '가장'은 남자라고 간주되고, 집안의 모든 책임과 권한을 지는 역할을 안내받는다. 대출 상담이든, 적금 상담이든 - "명의는 '신랑 분'으로 해야겠죠 ?"가 먼저 나오기 일수다. 가전 가구 상품 설명서에는 여전히 "우리 남편을 위한 맥주 공간, 아이들을 위한 간식 공간, 여성들을 위한 조미료 공간" 등 역할 규정이 강하게 내포된 설명 문구 위주이고, 웨딩 스튜디오나 웨딩홀의 경우도 "신랑님은 들러리고, 모든 촬영과 예식은 신부님을 위한 행사죠" 등의 말을 서슴지 않는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결혼식 내 구성에 대해서도 - 서로가 원치 않으면 자율적으로 구성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회를 신부 친구가 진행해도 되며, 부케를 신랑 친구가 받든, 신부의 남사친이 받든 식을 진행하는 우리 둘의 자유다. 물론 기존 형식 그대로 (또는 플래너의 안내대로)진행하는 것도 방법이겠으며, 어떠한 방식이든 훗날 후회없는 선택을 둘이서 자율적으로 내렸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어느 냉장고의 상품 문구

또한 이제 부모님과 함께 어울리는 자리가 (특히 결혼 준비 기간과, 신혼 초기에는) 빈번해지니 그 안에서의 역할 기대와 부딪치게 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둘이 있을 때와 달리 특정 상황이 되면 뭔가 눈치가 보이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우리 둘 사이에 명확하게 합의된 역할 구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부모님들을 이해시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만, 만약 서로간의 특정 역할에 대한 합의가 부재했다면 처한 상황에 따라 머릿 속이 복잡해지고 옳고 그름에 대한 혼란이 야기되어 불필요한 (그리고 심각한) 갈등까지 이어졌을 수도 있다. 


(6) 신혼집, 알고보니 가장 어려웠던 세 글자

결혼 준비를 하면서 모든 것들을 즐기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었으나, 단 하나 그럴 수 없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신혼집이다. 다분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인 '신혼집'은 29살의 우리가 직면하기에는 정말 큰 이슈였다. '부동산'이라는 자산에 우리 둘 다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사안이었을 수 있다. 

거주지로서의 의미보다는 자산으로서의 의미가 더 커버린 대한민국의 집

억 소리나는 부동산 시세

결혼 준비에 필요한 다른 것들(ex. 예식장, 스튜디오 촬영 등) 은 신혼 부부들 기호에 따라 생략도 가능하거니와, 비용의 크기도 다양하기 때문에 예산에 따라 취사 선택의 폭이 넓다. 이와 달리 신혼집은 결혼의 필수 요소이면서 동시에, '서울'에 거주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예산의 폭이 그리 넓지 못하다. 또한 신혼집 이외의 투두들의 경우 대체로 '계약금'을 10% 정도 선납하고 잔금을 예식 이후에 치르는 것들이 많다. 이는 결혼 축의금이 들어온 이후의 지급이다보니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현금 흐름 상의 큰 어려움을 일으키진 않았다. 하지만 신혼집의 경우 그렇지 않다. 결혼을 하기 전에, 그 어느 투두들의 합보다도 더 큰 규모의 금액을 준비하여 지급하여야 한다. 

이 때 조금 우습지만 나의 커리어를 되돌아 보게 되었다. 눈 앞에 닥친 비정한 현실을 마주하며 내가 그간 '돈'이라는 가치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가. 이 서울 바닥에 몸 하나 누일 곳 없는 현실인데, 너무 자아 실현만을 좇았던 것은 아닌가 !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에서 5단계는 커녕 아직 2단계에 놓여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등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갑작스런 현실 인지에 잠깐 고장났던 머리는 다행히도 금세 돌아왔다. 이제 우리가 살고 싶은 후보 지역의 시세들을 면밀히 조사해보고 자금 조달을 위한 해결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저축으로는 답이 없는 한국의 부동산, 추가 트랙의 필요성에 대한 뒤늦은 인지

누구나 이제는 상식으로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다. 저축 금리는 낮고, 물가 상승 속도를 고려하면 사실상 금리는 없다고 보면 된다. 부동산 시세는 천정부지이다. 근로 소득으로는 젊은 나이에 집을 구하는 것은 어림없다. 그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피부로 제대로 느끼게 된 것은 결혼 준비를 하면서부터였다. (이는 연봉이 1억 원을 상회하는 전문직들의 삶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또한 집안 사정에 따라 많이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이 때부터 좀더 본격적으로 추가 트랙을 모색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갖고 있는 무형의 자산을 fully 활용하여 자본 창출을 극대화 해야겠다는 다짐) 그것은 축적된 업계 지식을 활용한 강연 서비스일 수도 있고, 스타트업 경력을 살려 만들어낼 별도의 앱서비스일 수도 있다. 이제서야 왜 주변 사람들이 주식을 하고, 투자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물론 주식 투자는 필자가 걸어갈 트랙이 아니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리하여 2020년 새해부터 나 자신의 가치를 보다 끌어올릴 여러 스터디들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결혼 준비의 막바지가 급 경력개발로 이어지게 될 줄이야 ..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 - 신혼부부대출? 신혼부부희망타운 ? 

TV 뉴스나 인터넷 뉴스를 통해 자주 접했던 "신혼부부를 위한" 여러 정책 내지는 금융 상품들은 제법 그들의 앞날을 promising 하게 그려주지만, 막상 이에 대해 깊게 알아보니 흔히들 말하는 차상위 계층은 논외의 정책/상품들이었다. 개별 정책/상품마다 정확한 가이드라인은 다르겠지만 우리가 느낀 바는 그러했다. '외벌이', '부양 가족 1-2명 보유'가 아니고서는 애초에 '선택의 대상'에 꼽히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제서야 이러한 정책/상품이 대상으로 삼고 있는 '신혼 부부'의 기준이 '혼인 예정'에서부터 '혼인 후 5~6년' 까지 넓게 잡혀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이해작용과 동시에 '현타'가 심각하게 찾아왔다. 열심히 근로소득을 모아 애매한 수준의 자산으로 4-50대 후반에서야 자가를 갖추는 것이 현명한가, 아니면 열심히 소득 수준을 낮추어 (가령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전환한다든지) 신혼 초기 5년 사이에 신혼부부희망타운 선정을 노려보는 것이 현명한가 - 멍청하고 한심한 생각임을 바로 직시하고 열심히 근로소득을 모으고 있지만, 이러한 생각을 한번쯤은 해보게끔 만드는 것이 바로 한국의 부동산 시장이자, 각종 신혼부부를 위한 정책 및 상품들이다. 



이 외에도 크게 느끼고 깊게 생각한 주제들이 다양하지만..!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들 6개 정도로 글을 줄여본다. 서른 살을 맞이하며, 다가오는 기혼의 삶에서 겪게 될 다양한 변화와 그 속에서의 성장들이 기대된다. 당장 지금 이 순간에도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심리적인 묵직함, 더 많아진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의 복잡다난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 등 차근차근 그 스텝을 밟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혼집에서 겪는 삶의 변화에 대해서는 후속으로 이어 써봐야겠다. 29살의 결혼 준비 과정 끝 ! 이젠 신혼이다 !

같이 준비하느라 고생많았다 친구야 !  앞으로도 잘 부탁해~

29살 동갑내기의 결혼 준비

그 과정에서 느낀 6가지 


(1) 프로포즈는 결혼에 대한 결심이자, 상호간의 약속

(2) 결혼이란 서로가 가족이 되는 것 

(3) 어떠한 투두들이 필요할까? 그리고 웨딩 플래너란 누구인가 ? 

(4) 훈수 두기 좋은 주제처럼 보이지만 절대 둘 수 없는 주제인 "결혼"  

(5) 남녀의 성역할을 가장 많이 규정하는 영역 "결혼"

(6) 신혼집, 알고보니 가장 어려웠던 세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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