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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채 May 19. 2023

사업도 이상형이 있을까요.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할 거야'


라는 말은 아주 오래전부터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다. 부자가 될 거라는 말과도 혼용해 왔었다. 그러나 어느샌가부터 그 말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 부자의 삶은 뒤따라오는 것이라고 답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보다 선행되는 것은 내 사업을 통해 내 삶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지금은 스타트업에 소속되어 사업 전략 포지션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전이던 지금이던 회사에 '저는 언젠간 제 사업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선포했었다. 회사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말보다 내 사업을 하고 싶어 한다는 마인드가 회사의 이익을 보다 가져올 수 있는 플레이어라고 여겨주시는 분들과 함께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요즘의 대표님들처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사업에 도전하지 않는가? 내 사업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신중하게 보고 있다. 그동안 스타트업이 굴러가는 것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내린 결론은 사업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하고, 대표라는 직책은 예상했던 것보다 책임감이 막중한 위치였다. 본인의 삶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팀원들의 삶에도 직, 간접적으로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



B2C를 진하게 경험했고, 지금은 B2B에서 PMF를 만들어 가고 있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과정에서의 팀원들과의 소통, IR에 참여하면서 투자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진짜 사업의 의미, 그리고 무엇보다 서비스를 실제로 이용하거나 이용하려 하는 고객들의 날 선 피드백을 몇 년간 겪으면서 나의 사업에 대한 가치관도 정립이 되어갔다.



어떤 사업 아이템이 구체적으로 떠오르거나 끌리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사업의 특성이 생겼다. 이러한 특성들은 나중에 사업을 시작하고 피벗을 하지 않는 이상 쉽게 바뀔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서 더더욱 중요한데, 아래 몇 가지 나열해 본다. 마치 내가 원하는 사업의 이상형이다.




1.  서비스(프로덕트)를 다수가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사업

SaaS의 매력에 빠진 이유이다. 전자계약, HR 솔루션, 뉴스레터 제작툴 등 공간과 시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다수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 경쟁사와의 점유율 다툼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프로덕트를 운영하는 비용에 비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구독형 BM을 가진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구독 비즈니스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유는 사업자와 소비자가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적합한 구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업자에게는 만든 프로덕트를 10명이 쓰던 100명이 쓰던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 1명에게 막대한 비용을 청구할 필요가 없고, 소비자 또한 월에 합리적인 금액으로 삶의 질이나 근무 환경을 대폭 개선할 수 있다.



2.  양방향 플랫폼이 아닌 일률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

공급자와 수요자를 모두 잡아야 되는 사업 모델을 선호하지 않는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는 변수 통제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것이고, 둘째로는 공급자와 소비자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나중에 팀을 꾸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양방향 플랫폼보다는 하나의 일률화된 서비스를 다 같이 만드는 것이 내가 지향하는 일하는 방식과 팀 문화에 훨씬 적합할 것 같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어떤 일률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서비스에 효용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런 질문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효용성이 없는 서비스를 세상에 필요하다고 외치는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나중에 팀을 꾸렸을 때 우리가 만든 서비스는 효용성이 있는가, 새로 추가한 기능 또한 효용성이 있는가 라는 주제로 정말 오랫동안 깊게 논의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 과정을 제대로 거친 서비스와 프로덕트가 세상에 턱 하고 나왔을 때 사람들이 그리 못마땅하게 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3.  안 사도 그만, 그러나 사면 확실히 편한 제품을 파는 사업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 있다. '우리 사업은 비타민인가? 아니면 아스피린인가?' 비타민은 몸엔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아스피린은 극심한 고통을 줄여주는 꼭 필요한 제품이다. 결국에는 아스피린과 같은 제품을 파는 사업을 권장하는 질문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비타민 같은 사업이 좋다. 월 구독료로 친다면 만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삶의 재미나 편의성을 확실히 준다면 그 가치를 상당히 높게 산다. 예전부터 카카오톡에서 판매하는 이모티콘 구독 서비스를 애용하고 있다. 월 3천 원 대였던 것 같은데, 친구들과 톡 하면서 발생하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적재적소에 알맞은 이모티콘을 투척하는 재미는 상당히 쏠쏠하다. 게다가 매일매일 다른 디자인의 이모티콘을 고를 수도 있다니! 만약 이만큼의 효용성을 위해 이모티콘을 일일이 구매했다면 나의 재미를 압도하는 지출만 생겨 불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모티콘 구독 서비스는 내 삶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서비스는 분명 아니다.



한 번은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데 욕심이 나 이런저런 효과를 부리고 싶었다. 유튜브에 검색하면 효과 넣는 법 정도는 쉽게 익히면서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너무나도 귀찮다는 것이다. 근데 내가 원하는 효과를 진열장에 늘어놓듯 판매하고 있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효과를 구매해서 내 영상에 입히면 끝이다. 효과마다 만원 정도의 금액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만든 영상으로 사람들에게 재미과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합리적인 금액이라 흔쾌히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 사회적인 가치를 물씬 일으킬 수 있는 사업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스타트업에 보다 어울리는 사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업은 부침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사업하는데 힘이 너무 들어간다고 할까. 사업성과 가치 그 중간에서 부딪히는 지점도 종종 보이는 것 같다. 나는 사업을 힘 빼고 하고 싶다. 대충 한다는 뜻은 아니다. 고객이 지불한 금액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효용성을 나의 서비스는 제공하고 있는지. 고객들이 좋아하는 킬링 포인트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위트 있게 내 서비스를 표현할 수 있는지 등에 보다 집중하고 싶다.





이외에도 몇 가지 더 하고 싶은 나만의 사업 특징들이 있다. 나중에 사업을 구체화했을 때 이런 특징들을 나열하는 체크리스트를 만들까 한다.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을 때 체크리스트에서 부합하는지 하나씩 하나씩 체크한다. 80%~90% 정도 부합이 된다면 이 사업은 내가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사업이라는 확신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거도 충분히 갖추면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스스로의 동기부여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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