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랙 같은 업무 커뮤니케이션 툴을 쓰다 보면 회의를 요청할 때 미리 관련 채널에 요청글을 남긴다. 보통은 육하원칙 중에서 '언제', '누구와', '무엇을' 정도까지는 필수로 글에 남기는 것 같다. 적어도 회의 시간과 누가 참여하고 어떤 주제로 회의하는지 정도는 남겨야 하니까. 예시를 들자면, "다음 주 월요일 오후 2시에 서비스 홈화면 리뉴얼 건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하는데, @PM과 @CX매니저 두 분 참여 가능하신가요?"
PM과 CX매니저는 아마도 "넵! 가능합니다" 정도의 답변을 남기고 월요일 오후 2시를 기다릴 것이다. 단순히 '서비스 홈화면 리뉴얼'이란 단어를 보고 홈화면을 좀 바꿔보려고 하는구나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말이다. 참석 가능한 시간인지만 확인하고 답변을 남긴 이후에 다시 까맣게 잊어버리고 본인들 업무에 다시 몰두한다.
월요일 2시가 찾아왔다. 회의를 요청했던 대표는 PM과 CX매니저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희 홈화면 대시보드 UX 개선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요. 우리 서비스 하위 기능들은 참 좋은데 그걸 압축한 홈화면이 직관적이지 않다 보니까 고객들에게 어필이 안 되는 느낌? 홈화면에 대한 고객들의 CS 반응은 어떤지 궁금해 CX매니저님을 불렀고, 향후 개선을 위해 PM님을 불러 이 자리를 마련했어요"
대표의 말에 CX매니저는 이제야 회의의 목적을 이해하고 부랴부랴 머리를 굴려 답변을 짜낸다. "VOC는 다시 정리해서 봐야겠지만 안 그래도 홈화면이 보기 복잡하다는 의견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참석한 PM도 한 마디 거든다. "홈화면 체류시간을 데이터로 살펴보면 다른 화면들과의 차이점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생각으로는 홈화면이 조금 복잡해 보이긴 하는데 음.. "
이 이후부터는 즉석에서 나오는 온갖 의견의 향연이다. 뇌피셜도 조금 섞이고 있다. 이런 방향이 요즘 트렌드라던가, 다른 서비스는 이렇게 표현한 걸 본 적이 있다던가. 이렇게 개선하면 더 효과적이지 않겠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들.. 그렇게 20분 정도 얘기를 나누다 대표는 회의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럼 아까 말한 VOC 라든가 체류시간 등과 같은 데이터를 좀 더 살펴보고 다시 얘기해 볼까요. 다른 서비스 레퍼런스는 쓰레드에 남겨서 살펴보고 다음 회의 때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위의 사례는 그냥 지어낸 예시이지만, 왠지 이런 식의 첫 회의가 낯설지 않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회의 두 번 할 것을 충분히 한 번으로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의에 참석을 요청하는 팀원들에게 참석하기 전에 회의의 목적을 이해시키고 최소한의 자신의 의견을 근거를 가지고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나는 이것을 '어젠다 공유'라고 퉁쳐서 부른다.
어젠다 공유의 핵심은 참석하는 사람에게 회의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 가능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회의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생각을 시작하게 만들지 말자는 얘기다. 홈화면 리뉴얼 필요 여부에 대해 CX 매니저와 PM를 부른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먼저 설명한다. 그리고 담당 업무와 관련된 정량적인 지표들을 훑어보고 근거화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면 이 두 명은 최소한 회의가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이 된다. 회의가 얼추 예상된다면 각자 회의에 필요한 말만 압축적으로 정리해 올 수 있다. 바쁜데 다른 말할 여력도 시간도 없다.
이렇게 되면 첫 회의에서 다시 지표들을 가져오라고 돌려보내지 않고 최소한 홈화면 리뉴얼 여부에 대해서는 1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그러면 다음 회의는 액션 플랜과 일정, R&R 에 대한 얘기가 시작될 것이다. 프로젝트는 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효율성은 강화된다. 회의 요청자가 처음 요청글을 남길 때 몇 줄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말이다. 물론 문제정의나 배경설명 같은 것들을 보다 자세히 설명해 주면 좋겠지만 바쁜 스타트업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액션은 요정도이다.
물론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문제가 발생해서 급하게 팀원들을 소집해 회의를 한다면 '~에 대해 조금 있다가 바로 얘기해 봅시다!'가 합리적이다. 당장의 인사이트나 의견이 필요한 경우니까. 그런데 일반적인 회의는 보통 며칠 뒤나 다음 주 정도에 일정을 정해서 달력에 적어놓고 진행한다. 설사 다른 회의들이 즐비할지라도 해당 회의에 대해 최소한의 본인 의견 정리할 시간은 충분하다.
이런 류의 구체적인 어젠다 공유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여겨 일상처럼 해오신 분들도 계실 것이다. 사소한 규칙이 스타트업의 효율성을 꽤나 개선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공감하는 팀원들과 업무 문화를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 스타트업의 매력인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