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리드 역할을 무척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전 두 회사에서 감사하게도 팀의 규모는 달랐으나 모두 리드 경험이 있습니다. 이전의 글은 저 개인에게 초점을 맞춰 직무 등을 반추하고 고민했다면 이번에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소통이 중요한 리드라는 직책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팀원보다는 한 단계 성장한 직책이기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리드가 해야 하는 역할과 제 성향이 좀 잘 맞아 보입니다.
리드를 선호하는 첫 번째 이유는 어젠다 설정을 좋아하고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어젠다라는 것은 사전적 의미로 '서로 논의해야 할 주제'입니다. 스타트업에서 어젠다 설정을 잘한다는 것은 일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안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팀 회의나 혹은 슬랙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툴에서 3~4가지의 어젠다 설정을 통해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하고 일해야 하는 대주제를 정하는 일입니다. 보통 C레벨이 리드에게 전달하는 요구사항은 대주제보단 조금 더 큰 맥락의 숲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드는 숲에서 쓸만한 나무를 살피고 지정해서 대주제로 구체화하여 논의사항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일을 좋아합니다. 어렵게 느끼기보다는 저로 인해 일이 구체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습니다. 게다가 어젠다 설정을 잘못한다면 일을 비효율적으로 한다거나, 꼼꼼히 챙겨야 할 것을 놓친다거나, 혹은 일을 굉장히 돌아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부담감은 당연히 존재하나, 저한테는 그러한 부담감보다는 매 순간 깨어있게 일을 한다는 사실이 흥미를 보다 가져다줍니다.
리드를 선호하는 두 번째 이유는 팀원과 C레벨의 가교 역할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에 오래 다니시는 분들은 이제 수직적인 업무 전달이 어색하실 겁니다. 그만큼 수평적인 관계가 보편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수평적인 관계에서도 업무를 전달받고 컨펌받아야 하는 질서는 존재합니다. 그런데 수직적인 문화라면 '하라면 해야지'가 지배한다면 수평적인 문화에서는 '왜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지배합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심은 하기 싫은 짜증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일의 목적을 알고 난 후에 일을 하고 싶은 니즈입니다. C레벨과 팀원사이에 관계가 악화되는 시점은 도대체 뭘 위해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분위기가 만연히 형성되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잡플래닛과 같은 평점사이트에도 경영진이 뭘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종종 보이곤 합니다. 이런 경우가 악화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리드는 팀원에게 충분히 설명해줘야 합니다. 물론 그전에 리드조차도 먼저 경영진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며 해당 일의 중요성을 온전히 이해해야 합니다.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 일은 팀원에게 전달될 때 표정이나 말 표현에서 이미 의심이 잔뜩 묻어있습니다. 당연히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 겁니다. 제가 이 역할을 선호하는 이유는 팀원에게 제대로 일의 목적을 이해시키는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학원 알바 등을 통해 학생들을 오래 가르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누군가를 이해시키는 일이 성향에 배어있습니다. 제 성향과 맞으면서도 몸담고 있는 스타트업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제가 안 좋아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 번째로는 좋아하는 이유라기보다는 제가 성장하고 싶은 포인트가 리드의 역할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일할 때 팀원들 간의 솔직한 업무 피드백을 주고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리드로 있는 팀의 팀원이 주는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대략 기억해 보면 '어떤 이슈가 생겼을 때 팀 리드가 먼저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팀원은 멘붕이 온다.'라는 느낌의 피드백이었습니다. 그것은 제 명백한 단점이었고 개선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노력을 합니다. 리드 역할을 선호한다면 제 마음에서 몰아치는 기분을 절제하며 냉정해져야 한다는 것을 그때 많이 느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소소하긴 하지만 대학교 팀플과 같은 북적대는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스타트업에서 솔로 플레이를 하는 것보다 세분화된 팀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B2C 사업이라면 외부 CS 등을 통해 마음 상할 일도 많은데, 그럴 때 팀이 같이 으쌰으쌰 해주는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서로 고마운 일이 생기면 소소하게 감사함을 표현하고, 서운한 일이 생기면 조심스럽게 감정을 건네는 팀을 좋아합니다. 팀으로서 성과를 이뤘을 때는 우리가 얼마나 잘했고 멋있게 해냈는가에 대해 자화자찬을 하며 밥 한 끼 먹는 것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누군가에게 만들어달라고 바라기보다는 제가 리드가 되어 만들어가는 것을 선호합니다.
리드는 한, 두 번 해봤기에 더 잘하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자신감도 있습니다. 곧 다가오길 바라는 미래의 이직하는 팀에서도 이러한 경험을 꼭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