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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Jan 23. 2022

책방 영업을 종료합니다

      

지난 1월 14일, 책방 영업 종료 소식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렸다. 사실 일주일 전부터 썼다가 지우며 만지작거렸던 글이었다. 감정이 몰아쳐 썼던 문장은 대부분 지웠다. 나름 정제된 마음과 문장으로 완성했다. 금요일 오후에 소식을 알리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렸고, 손과 발엔 땀나기 시작했다. 으악 어떡해! 호들갑을 떨고, 긴장돼 핸드폰을 멀리 두었다.      


인스타그램에 알리기 전, 책방을 자주 방문하는 분들에게 슬금슬금 알렸다. 다음 달에 책방을 닫으려고요, 조심스레 말을 건네면 왜 닫느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냐고, 혹은 다른 계획이 있는 것이냐는 질문이 연이어 돌아왔는데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똑 부러지게 하지 못하고 말을 아예 못 하거나, 말이 자꾸 길어졌다. 무슨 일도, 특별하고 분명한 계획도 없어서 결국 솔직하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책방에 관한 마음과 열의가 예전 같지 않아요. 책방에 있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마음, 어떻게 하면 더 잘 운영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일했는데, 이제는 그렇지가 않아요. 5년을 운영했는데 5년 후에도 이 모습이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어요. 책방이 풍경처럼 그대로이기를, 종종 손님들이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알려주는 소식통이기를 바랐는데, 정말 그런 날들을 자주 만나니 제 마음이 예전 같지 않더라는 걸 알았어요. 풍경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변하고 싶더라고요.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게 가장 커다란 이유였고, 책방 주인장이 아닌, 그냥 ‘나’이고 싶었어요.’     


이 정도로 내 마음이 선명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예전 같지 않은 나를 보며 탓하기도 하고, 잠시 지나가는 마음이겠거니 외면하기도 했다. 책방을 그만두는 나의 모습은 상상하지 않았기에, 그 후엔 어떻게 먹고 살아갈 것인가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더 멈칫했다. 무엇보다 책방을 아껴주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매주 만나는 사람들, 종종 찾아와 주는 사람들, 다음에 오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보낸 순간들이 떠올랐다.      


수줍음으로 시작한 책방. 화려하지는 않지만요, 이 공간이 저의 모습인걸요, 고백하는 마음으로 이어온 날들. 더 멋진 책과 멋진 공간으로 꾸미지 못하고,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 느껴 늘 부끄럼을 한주먹쯤 가지고 책방을 지키던 나날들. 그럼에도 이런 모습 그대로 좋아하고, 응원하고, 찾아온 사람들. 잘 지내시죠, 안부를 묻고, 선물을 이따금 주고,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한 사람들.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날들도, 한가로이 혼자 책방을 지킨 나날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몇몇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켜주었다. 손님이 없을 때도, 많을 때도 모두 좋았던 것은 책방이었기에. 손님이 없으면 책을 읽었고, 손님이 많을 때도 책을 읽었다. 먼저 다가가기보다 조용히 책 뒤에 숨는 날이 많았다.      




공간을 내어주고, 지키며 쑥쑥 자랐다. 돈을 받고, 사랑을 받고, 환대를 받고, 여러 경험의 기회를 받으며 자랐다. 죄책감 없이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으며 자랐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협하고, 작았던 마음을 넓히며 자라났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받으며 나도 따뜻한 쪽으로 기울며 자랐다. 때로는 실수도 하며 속상해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며 이 공간에서 자라났다.      


그러니까 이런 공간을 어떻게 저버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다했다는 것을. 좋았던 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 때, 그만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여러 날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그만두기로. 그리고 지금의 선택이 아깝지 않도록 앞으로의 삶을 잘살아 보자고.      


그동안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되,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며 살았다. 어릴 땐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지 않아 할 수 있는 것을 골랐다. 책방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정말 이 일을 하고 싶기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시작한 것에 더 가까웠다. 커피를 만들 수 있고, 책을 좋아하니 작은 책방은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책방을 열고, 날이 지날수록 내 일이 점점 좋아지는 축복을 누렸다.     


내 삶의 지도는 분명한 마음보다 어정쩡하고 흐릿한 마음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그만둘 때도, 대학을 휴학할 때도,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도,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을 때도, 나는 무얼 하나 분명하고, 똑 부러지는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다만, 내 마음의 한계는 확실히 알았고, 존중해준 것 같다. 다른 길로 한 번 가보고자 하는 마음을. 동시에 나 자신의 한계를 느낄 때마다 스스로 실망했다. 겨우 이 정도에서 멈추는 내 모습을 마냥 사랑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믿기로 한다. 흐릿하고 불분명한 안개에서 나는 늘 나에게 가장 좋은 곳으로 이끌고 멋진 순간들을 선물했으니까.      




짝꿍은 인스타에 올리고 불안해 웅크리고 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수고했다고, 잘했다고, 그리고 맛있는 걸 먹자고. 내가 좋아하는 회를 주문했고, 나는 살짝 울다, 웃었다. 반려견 달래도 옆에 와서 혀로 핥아주었다.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이 한층 완화되자 마음을 남겨준 댓글들이 보였다. 내가 더 행복해지는 길을 응원하고, 서툰책방에서의 추억을 말해주는 고마운 마음들. 그 마음들 앞에 또 맥없이 풀어지고 말았다. 나는 그 마음을 오롯이 받고, 답글을 천천히 남겼다.      


소식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얼굴을 몇 번 보았던 분들께는 책 뒤에 숨기보다 한마디라도 더 말을 붙인다. 특별히 더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기에. 약 한 달 정도 남은 책방의 나날들. 아마 나는 책방에서의 5년의 기억을 앞으로 평생 두고두고 돌아보면서 사랑과 용기를 잃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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