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간 책을 읽지 않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버스 기사로 재직하면서 책을 읽는다는 건 한편으론 사치인것만 같았고,
책 한 권이 주는 부담감이 몸을 더 고단하게 하기도 했다.
뭔가 활자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고 종이신문 구독을 시작한 것도 있지만,
여전히 책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목으로 넘기지 못하고 소화시키지 못하는
음식물 같았다.
그런데 어느날, 밀리의 서재 한달 무료 가입 이벤트를 봤고, 가입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이런!
책을 읽어준다. 들려주는 것이다.
물론 읽어주지 않는 콘텐츠들도 많지만,
운행 중에 한쪽 귀에 골전도 이어폰을 껴고 듣는 책이라니!
이런 세상이라니! 나만 몰랐네.
20일만에 5권을 읽어버렸다. 그래 '버리는 부분'이 많아 읽어 버렸다란 표현이 맞다.
운행 중에 온갖 소음에 놓치는 부분이 많아 그렇다.
그래도 전혀 읽지 않는 것 보다 좋다.
때때로 좋은 부분은 메모해 놓을 수도 있다.
'성우'가 읽어주는 것이 훨씬 좋지만, AI가 읽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다.
아! 복잡한 출퇴근 때에는 못듣는다.
손님없는 한적한 시간대에 읽는(듣는) 맛은 꽤 쏠쏠하다.
하루 3시간은 읽는 듯 하다. 매일 3시간 독서라니.
고구마 먹고 사이다 한 컵 들이킨 기분이랄까.
가볍게 데미안을 시작으로, 역행자, 마지막 수업, 50세 읽는 주역, 탈무드, 불편한 편의점, 사피엔스까지.
몇 해 전부터 위시리스트에 있는 책들을 여럿 검색했는데,
듣기 가능한 책도 있고, 아닌 책도 있더라.
우선 읽기 가능한 것들부터 터치.
처음에는 호기심에 이 책 저책 클릭질만 했는데, 한 번 듣기 시작하니 놓질 못하겠다.
읽어주기에, 아니 누군가가 들려주기에 더 좋은 책들이 있는 듯 하다. 들어서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책, 즉 '지식 전달'이 목적인 책들은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소설류의 책들이 꽤 인상 깊다. 소설은 옛날 이야기 듣는 기분이다. 술술 읽힌다. 아니 들린다.
지금 읽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도 좋다. 베르베르의 <죽음>과 함께 구입해 놓고 몇 년 간 읽지도 못했던 그 책을 이제서야 읽다니(듣다니)!
상상력 자극은 읽는 것이나 듣는 것이나 비슷하다.
과거 라디오 드라마 청취율이 TV 연속극 시청률보다 높았던 때가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인지, 이런 인기에 힘입어 유명 배우들이 '오디오드라마'도 만들고,
실제 녹음도 했다. 상상력을 엄청 자극하는 것이다.
영상에 익숙한 세대에겐 다소 답답할 수도 있으나, 난 이것이 나쁘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단점도 있다.
소리가 지나면 끝이다. 종이책처럼 앞장을 다시 펼쳐보기 힘들기 때문에 되돌리기 힘들다.(물론 리와인드 됨)
그래도 책과 멀어지는 인생이려니 했거늘, 이런 기술 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밀리의 서재.
몇 해 전 작은 집으로 이사하면서 아이 장난감에 밀려 그간 모아놨던 200권의 책을 헌책방에 넘기면서 25,000원 받았던 그 날이 떠올랐다. 울컥했던 그 날.
이 곳에 다 있네.
내 책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