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뭐라고

프롤로그

by seoul

나는 실험체다.

내 삶은 누군가의 관찰일지처럼 흘러간다.

나는 스스로를 해부하고 기록한다.

사생활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것들을 들춰낸다.

이 책은 나라는 인간의 잔혹한 리포트다.

나는 일기를 쓰지 않는다. 기록은 언제나 보고서였다.

‘오늘은 무엇을 잃었는가?’로 시작하는 자문.

사랑도, 가족도, 직장도, 모두 내 안의 실험실이었다.

내가 당한 굴욕과 모순을 숨기지 않고 기록하려 한다.

내 몸과 마음을 해부하는 보고서, 그것이 이 책이다.

뭐가 이렇게도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지, 답답하고 지루하다.

가만히 있다가도 갑자기 전화수화기 너머 말 걸어주는 이가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을까?

오후 5시 30분.

문득 미드를 보다가 드는 생각을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나에겐 어려운 일들이 저 쪽에서는 쉬울까?

확연히 표현하지 못하는 사회가 곪아가고 병들어 간다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미드 속 주인공들처럼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하고 싶어졌다.

핸드폰을 들고 생각해 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동안 쌓인 전화번호는 수두룩한데, 당장 전화해서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었다.

모든 관계가 지나가 버렸고, 현재는 유효하지 않은 유통기한 지난 전화번호뿐이었다.

지나간 인연에는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쓸 때 없는 최첨단 기술들이 쓸 때 없는 미련만 갖게 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불필요하고 너무도 불편하다.

자동 연동이라니 끔찍하기까지 하다.

벗어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

새로운 인연은 어떻게 만들까? 새롭게 누군가를 사귄다는 게 지겹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누군데요', '누구세요', '좋아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은?'

타인의 기호를 알고 맞추는 일이 귀찮았다.

식상하다 생각했다. 깊이 있는 만남을 안 해 봐서일까?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알아간다는 게 억지스러웠다.

가족 말고는 자연스러운 만남은 아무 데도 없었다.

10대 때에는 학교 친구들, 20대에는 대학 동기들, 30대 때는 부딪히는 만남, 40대가 되고 나니 어떤 만남도 없다. 여기서 말하는 만남은 이성적 만남이다.

운명은 아직 유효한 건지... 아니면 애초에 없는 건지... 비껴간 건지...

더한 노력이 필요한 건지...

뭐 나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내 세상만 조금 다른 것 같다.

요즘 들어 사는 게 이토록 힘든 일인가 생각해 봤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라면, 굳이 왜? 힘든 쪽으로 선택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요즘이다.

'너 힘든 만큼, 그 상대도 그만큼 힘들걸?'

'설마...'

'여배우라도 된 것처럼, 대사도 잘 읊조리고 이미 준비된 멘트던데???'

선한 쪽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효율적으로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하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그 고민 끝에는 권력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 힘에는 자비대신 끈처럼 팽팽하게 쥐어졌고, 나는 그 끈의 끝에 매달린 권력의 동아줄 같았다.

개인이 행할 수 있는 힘, 타인을 옥죄는 도구로 쓰는 비열한 권력, 그리고 지금 나는 그 권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나는 희생자로 남을 생각이 없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시나리오에 순순히 응해줄 생각이 없다. 이제부터 모 아니면 도 도아니면 모,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튕겨낼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답을 들려주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럴 셈이다.

본래는 선한데 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회 시스템 때문에 작용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본인의 신념이나 의지로 행동할 수는 없었을까? 란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본래는 선했을지도 모르는 그 사람, 사회 시스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악을 저지르게 된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헤아려 주고 싶지 않다.

밖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분명히 선한 아이 악한 아이가 구분된다.

태도나 말버릇에서... 대체적으로 예쁜 아이는 그의 부모도 예뻤다.

영향을 많이 받는 쪽으로 미운짓을 골라하거나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아이들을 살펴보면 그의 부모도 유사한 언행과 태도를 보였다. 민망하고 안타깝게도 일치하는 점을 느꼈다.

선도 길러지고, 악도 길러진다.

종일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켜 주는 하필이면 자주 보는 사람 중에 껴있는 그녀,

말도 꺼내고 싶지 않은 그녀의 아이를 마주쳤다. 모든 행동과 패턴에 짜인 각본이 있는 그녀의 시나리오에

엮이고 말았다. 엮이고 싶지 않았으나, 공교롭게도 내 눈앞에 이벤트.

분명히 그것은 엄마를 위한 이벤트였을 텐데, 알고 있었으면서도 맨 마지막자리를 차지한 그녀 때문에 아이도 빼앗긴 이벤트가 되었다.

서프라이즈는 내가 먼저 목격해 버렸다. 퇴근길에 자동문이 열리면서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내가 나서는 바람에 작은 아이의 서프라이즈는 내 차지가 되었다. 반갑지 않았다. 예쁘지도 않았다.

'어... 앞에 애가 있어요?'

놀랍지만 놀랍지 않은 그런 상황을 맞이하고 내 자리를 찾아갔다.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족 상봉을 한다. 남의 가족 상봉에 끼고 싶지 않아 인사만 하고 빠르게 차를 몰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집에 와서 다른 생각은 떨쳐내 버리고 싶었지만,

주말 내내 머릿속에 그녀가 한자리 차지하고 온통이 되어버렸다.

나의 주말을 온통 먹물을 뿜어내듯이 검게 물들여 버렸다.


나의 주말을 온통 차지한 그녀, 너무나 지겹다.


그녀는 일전에 그만둔 직원이 한 말이 억울하단 듯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분이 나가시면서 저 때문에 나간다고 했데요.'

그 말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충분히 그럴 만도 했을 거라 생각했다.

본인의 행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이었다.


그녀 때문에 내 생활이 엉망이 되었다.


내 삶을 갉아먹는 건 거대한 사회가 아니라, 바로 곁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소한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