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된 나를 벗어나며
좀 더 연장하고 싶었던 근무일은, 더 이상 연장선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혼란스럽던 마음이 정리되었다.
내 자리는 비워질 예정이다.
자리 정리를 해두고 나왔다.
여전히 날선 사람들 사이에서 더는 숨 쉴 수 없었다.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일,
그건 서로에게 독이었다.
복지라는 이름 아래 사람을 매도하고 군림하는 구조.
달콤하지만 공짜는 없었다. 복지의 조건은 내앞에서 늘 바뀌었다.
누군가에게는 혜택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눈치였다.
복지는 늘 공평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서열을 가르는 또 다른 도구였다.
그 달콤한 이름 아래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평가했고, 누군가는 그걸 권력처럼 휘둘렀다.
그 복지는 결국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거였다.
일을 하며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아이를 위해 살지 못하는 일이었다.
잠깐이라도 아이는 혼자가 되어야 했고,
다른 보호자의 보호 아래 머물러야 했다.
아직 혼자가 무서운 아이.
잠깐 겹친 저녁시간,
뻔뻔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있었다.
독한 말로 정을 떼어놓고는 아이를 위해 만들어 둔
샌드위치를 자기가 먹겠다고 했다.
머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속으로는 ‘너 줄 건 없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더 만들 거야?”라는 말에
“재료가 없어”라고 잘라버렸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단절이었다.
아니, 마지막 예의였다.
나는 이제, 나의 기록을 위해 산다.
더 이상 타인의 연장선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
며칠 전 꿈에서 빗이 반으로 쪼개졌다.
고양이 모양의 아크릴 빗이었다.
아침에 가방을 열어 확인했지만, 빗은 멀쩡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는 걸.
오늘, 교수 채용 불합격 문자를 받았다.
정중하고 예의 바른 문장이었지만, 말끝이 공기처럼 텅 비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전해드립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그게 바로 그 ‘빗’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다듬어왔다.
면접용 미소, 교수용 말투, 그리고 경력으로 빗질된 나의 이력서.
그 모든 게 마치 광택제처럼 나를 감싸고 있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건 내 본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세워진 ‘정제된 나’였다.
꿈속의 빗은 반으로 쪼개졌지만, 완전히 부서지진 않았다.
그건 아마도 신호였을 것이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너를 단장하라.”
이제는 머리를 다듬을 빗 대신, 생각을 다듬어야 할 때다.
이제는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의 방식으로 ‘교수’라는 이름을 새롭게 정의할 때다.
정제된 나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질감이 있는 나로 살아야 한다.
균열 속에서 다시 나를 세우고,
반으로 쪼개진 그 빗처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나를 만들 것이다.
다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