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웬만해서는 오늘 연필을 들고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키보드를 두드려서 글을 쓰는 게 더 풍부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장이 내 머릿속에서 날아가기 전에 말이다. 그러나 어쩐지 오늘은 노트북을 사용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삼십 분 동안 멍하니 빈 화면을 노려봤다. 언어를 잃어버렸고, 문장은 앞을 향해 나아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연필을 꺼내어 종이에 글을 써 내려가기로 했다.
최근 나는 연필을 이용해 글을 적어 내려 가는 것을 싫어하게 됐다. 손으로 글을 쓰는 일을 싫어하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싫은 것을 꼽자면 손에 땀이 배어나는 것이다. 여섯 줄 남짓한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벌써 손바닥에는 송골송골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릴 때는 나지 않았던 땀이 마치, 연필 쥐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원인을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나는 컴퓨터가 발명된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빌 게이츠인지 스티브 잡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감사하다.
둘째로, 글씨를 일정하게 쓸 수 없다는 점이다. 처음 몇 줄, 오늘로 이야기하자면 땀이 맺히기 전인 여섯 줄까지는 글이 괜찮았다. 그러나 손바닥에 땀이 배어나는 순간을 기점으로 글씨가 점점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개성 있게 글씨를 쓰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문제는 종이 위에 쓴 한 장 정도의 분량 속에, 각각의 줄마다 개성을 가진다는 데 있다. 처음과 중반부까지는 그런대로 잘 정돈해서 글을 쓰기 때문에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글을 쓴 나 자신조차 한 번에 읽을 수 없이 글을 써버린다는 것이다. 현재 20줄 정도 쓴 것 같은데,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글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외국어를 읽듯이.
셋째로, 필요 이상의 힘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정말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연필을 받치고 있는 중지 손가락에 가벼운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연필이 닿았던 자리는 붉은색을 띠고 있다. 마치 회초리로 얻어맞은 종아리를 보는 기분이다. 30줄째, 팔 근육이 마치 전기치료를 받는 듯이 통통 튀면서 원래 내가 내려놓으려고 했던 지점보다 멀리 닿아버린다. 공백은 점점 더 넓어져가고 있고, 팔 근육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끝으로, 예의 시련을 겪으며 나의 인내심은 점점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중이다. 두장 이상의 글을 쓸 계획이었으나,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