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의 핸들은 제가 쥐고 싶었어요 (6)

헬리콥터 부모 밑에서 자라온 외동딸이 행복한 거라 믿고 싶다.

by 숨니

해가 바뀌어 31년을 살아오면서 정말 손을 쓸 수 없이 무기력하다고 느꼈던 적이 언제였을까. 대충 가까이 기억나는 일화로는 내 인생에서 가장 무능력하고 성격도 더러운 개차반 같은 팀장을 만났던 사원 2년 차 때가 생각난다. 정말 아무것도 해주질 않고 내 능력과 연차 이상의 업무를 미친 듯이 내리며 입으로만 업무사항을 지시했었다. 내가 대체 이걸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전년도 폴더를 뒤져서 똑같이 만들면 된다고 했고,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내가 꾸역꾸역 만든 제안서를 대충 훑어보고는 광고주에게 제출하곤 했다. 그럼 당연히 개빡친 클라이언트가 클레임을 걸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전화기를 붙잡고는 '우리 애가 많이 부족해요, 제가 잘 가르칠게요.'라면서 대답했었다. 아니,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고 알아서 하라고 한 건 당신 아니었나.


그렇게 3달을 반복하다가 그날도 내가 다 만들어낸 제안서를 몰래 열어보더니 퇴근하려던 나를 붙잡고는 PPT 수치가 잘못되었다고 시비를 걸었다. 때마침 그날은 이사님도 상무님도 아직 퇴근을 안 하셨었고 사무실에는 높은 연차의 상사들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그들 앞에서 나를 조지기로 결심을 한 듯했다. 그때 그냥 나는 아.. 정말 손을 쓸 수 없구나. 맘대로 떠들어라- 생각하면서 썩은 표정으로 옆에 서있었고 그녀는 사무실에서 길길이 날뛰었었다. 그래서 결국 그다음 날 나는 퇴사를 선언했고, 다행히 나를 측은히 여기던 옆팀에서 타 클라이언트를 맡아보자며 설득해 줘서 이후로 팀을 옮겨 몇 년 더 다녔다지. 그때 회사를 뛰쳐나왔다면 아마 광고일을 안 하고 다른 적성을 찾았을까? 결과적으로는 그 사건 이후로 대형 광고주를 맡아 이후의 이직까지 수월했으니 잘된 일이었겠지. 하지만 타 팀으로 옮겨서도 전 팀장의 아주 치졸하고 자잘한 복수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뒷목이 뻐근하다.


이렇게 회사일 외에도 나는 엄마 아빠와의 하루하루에서 무기력함을 느낀다. 나의 기분과 상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미친 듯이 쏟아붓는 비난을 맞고 있으면 손하나 까딱할 수 없다. 애초에 대화와 화해가 이뤄질 수 없다. 왜냐면 설사 내가 기분이 나빴고 부모님의 잘못이 조금 더 크다고 객관적으로 판단되더라도 딸인 내가 참아야 했으니까. 부모님과의 연락문제는 성인이 된 이후부터 그리고 자취를 시작한 이레로는 점점 더 도를 지나쳐 심해지고 있다. 내가 조금이라도 전화를 늦게 받거나 아니면 몇 통 받지 않으면 안달이 난다. 혹시나 내가 쓰러졌을까 봐,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라며 정당화하지만 이건 하루이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다. 휴대폰이 진동으로 되어있어 내가 머리를 감고 머리를 말리고 하는 한 30분 사이에 부재중 전화가 쌓여있고 카톡으로는 대체 왜 전화 안 받냐, 속 터진다, 무슨 일이냐 라는 대화가 쌓여있는 걸 보면 정말 분노가 끓어오른다. 백수 생활을 하는 동안 웹툰이나 웹소설을 읽으며 뜨겁게 서로에게 집착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하,, 한 번 태어난 인생 저런 사랑해 봐야지,,'라고 생각했던 나를 세게 때려주고 싶다. 뭐든 적당히가 중요하다, 제발 뭐든 적당히.


부모님과 연락문제로 다투는 건 늘 패턴이 똑같다. 내가 연락이 바로 안 되고, 엄마아빠는 걱정을 핑계로 미친 듯이 전화와 카톡을 남기고, 그 내역을 보고 이미 분노한 내가 화를 내며 콜백을 하고, 그럼 그런 나에게 어쩜 이렇게 걱정하는 엄마아빠는 생각도 안 하고 싸가지 없이 화를 내냐며 나를 비난하고. 해결 방법은 두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아예 연락을 끊고 완전히 독립해서 생사만 주고받는다. 그럼 아마 나는 엄마한테 머리털이 다 뽑히고도 남겠지. 결국엔 그 싸움에 지쳐 내가 사과하고 이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결말이 이미 눈에 보인다. 둘째, 저렇게 집착하는 엄마아빠를 바꿀 수 없으니 그에 맞춰 놀아나주기. 아무리 열받는 카톡과 말투로 나를 비난해도 내가 그들이 말하듯 '딸'이니까 참아주기. 자식이니까 참아주기. 그럼 결국 나는 이 상태로 계속되는 스트레스에 곪아 죽겠지. 대체 방법은 뭘까? 남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걸까? 이렇게 걱정해 주는 부모님이 있으니 행복한 줄 알아야 할까 엄마가 늘 내게 말하는 것처럼?


작가의 이전글제 인생의 핸들은 제가 쥐고 싶었어요(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