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부모 밑에서 자라온 외동딸이 행복한 거라 믿고 싶다.
남들에게 아무리 인기가 있더라도 드라마의 본방송을 따라 달려가는 건 취미가 아니었다. 드라마를 영화보단 덜 좋아하지만, 그래도 미드나 일드나 영드보다도 K-드라마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요 근래 일명 용두사미 드라마들에게 여러 번 실망하게 되어 드라마 본방송을 챙겨보지 않게 되었다. 지상파나 종편, 케이블 드라마들은 마지막 회까지 방영된 후 결말까지 완벽하다는 평을 듣고 나서야 정주행을 도전하게 되고,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등의 OTT 플랫폼 드라마들도 시리즈 오픈 이후에 사람들의 평가를 찾아보고 나서야 시청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나중에 봐야지- 해놓고는 잊어버리게 되거나 이미 한차례 뜨거운 감자로 이슈몰이가 지나간 종영 드라마를 뒤늦게 보게 되면 같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 흥미가 식게 되더라.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역시 그랬다. 주변에서 매체에서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시청률이 고공행진 중이라고 해도 결말을 보고 시작하겠다는 마음이 굳건했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도 '우영우를 안 본다고? 좋아할 것 같은데? 안 좋아할 수가 없는 드라마이니까 한 번 봐봐!'라고 추천에 추천이 줄을 이어 가벼운 마음으로 이미 9화 이상이 방영된 시점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최초 자폐인 변호사, 천재이지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의 가족/연애/친구/사회생활 이야기. 말 그래도 성장드라마이면서 콘텐츠 트렌드가 조금 더 자극적이고 센 것을 원하는 시점에서 순수한 힐링 물이면서 주연 박은빈의 엄청난 연기력이 더해져 인기를 끌 수밖에. 특히, 사건 케이스 별로 에피소드를 1~2회를 넘기지 않는 구성도 인기에 한몫을 한다. 드라마에 대한 칭찬과 설명은 이쯤 해두고, 2회 시청 중 원고의 딸과 우영우 변호사가 나누는 대화가 또 한 번 나에게 경종을 울렸다.
"이 쉬운 걸 내가 그동안 왜 못했지?"
"김화영 씨가 아버지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라서요."
"권민우 변호사 눈에는 저도 그렇게 보일 것 같습니다, 김화영 씨는 스스로 밥상을 차려본 적이 있습니까?"
스스로 밥상을 차려 본 적이 있습니까? 스스로의 밥상은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서 차려보게 되었다.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를 하거나 하다못해 밀키트를 사서 해 먹던, 배달을 시켜 먹던 혼자만의 온전한 밥상을 갖게 된 거다. 자취를 하면서 타지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겪어봤을 법하게도 나 역시 엄마가 해다준 반찬으로 보다 풍족한 밥상을 차려보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 엄마는 너무나 자주 나를 찾아온다는 거지.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식으로 내가 특별한 약속이 없다면 주말 이틀 중 하루는 꼬박 부모님이 찾아오셨고, 그때마다 온갖 반찬과 과일과 식재료를 바리바리 싸서 들고 오신다. 이 반찬들이 매번 감사하지만 매번 반가운 건 아니다. 고작 1인 가구인 내가 이 많은 반찬들을 다 소화해낼 수가 없고, 심지어 그 양도 너무 많아서 그다음 주에 새로운 반찬이 왔을 때 냉장고를 비우려면 일주일 내내 지금 받은 이 반찬을 다 먹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는 아침도 안 챙겨 먹고 나가고, 저녁에 야근도 잦아서 집에서 식사를 할 일이 적었기에 그렇게 그다음 주말에 부모님이 오셔서 냉장고를 열어보고 반찬이 그대로 있으면 잔소리가 쏟아진다. 패스트푸드나 배달음식 먹지 말고 이 반찬을 먹어라. 엄마, 어떻게 사람이 일주일 내내 같은 반찬만 먹어요? 그리고 저는 집에 잘 안 붙어 있는다고요.
매주 똑같거나 비슷한 주제의 언쟁을 벌이다 보면 사람이 지쳐버린다. 하지만 결국 또 부모 자식 간의 싸움이기에 그 결말은 똑같다. 앞으로 가져오지 말라고 이야기하면 그걸 듣는 엄마의 실망하는 모습. 이게 자식을 사랑하는 하나의 커다란 방식인데 그걸 막아서 버리는 불효자식. 자취를 한지 햇수로 6년 째지만 엄마가 챙겨 오는 반찬의 양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양이 줄어들었네-싶은 때에는 가짓수는 두 배로 늘어서 온다.
우영우 2회 에피소드를 보며 나 또한 내 밥상을 지켜내는 것이 스스로 자립하는 방법이 될 수 있구나 깨달았다. 엄마의 사랑과 애정, 타지에서 혼자 밥을 차려먹는 자식에 대한 안쓰러움과 당신들이 맛있는 반찬을 해 먹을 때 내 생각이 나서 애써 챙겨 오는 그 마음을 온전히 알지만. 그래도 그 사랑의 표현이 너무 과하거나 자주 이뤄지면 그건 그대로 쌓여 자식에게 부담이 된다. 스스로 밥상을 차려먹을 줄 아는 자식으로 존중해주고 정신적인 독립을 이뤄낸 상태로 두게 되었을 때 이 둘의 관계는 좀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번 주말에도 큰 일정이 없다면 부모님을 만나게 될 거고, 그러면 나는 이번 주에는 제발 반찬을 싸오지 말라고 엄마에게 이야기할 거다. 과연 나는 다음 주에 나 스스로 밥상을 차려낼 수 있을까? 나의 밥상을 지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