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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울 Jul 01. 2023

<결혼 이야기> review

#1 이혼 이야기가 가장 좋은 결혼 이야기인 이유

내 인생을 통틀어서, 심지어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중고등학생 때조차도, 어떤 영화를 다 보자마자 그 즉시 다시 처음부터 다시 본 적은 없었다.




이 영화의 제목은 <결혼 이야기>

결혼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으레 둘 중 하나이기 마련이다.  

    

(1) 결혼에 이르는 이야기. 

동화나 민담, TV 드라마, 디즈니 영화가 보통 이러하다. 두 남녀가 어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결혼에 성공하는지를 다루며, 그 후의 일은 ‘그리고 두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일 뿐이다.     


(2) 결혼의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 

기혼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진짜 이야기는 결혼을 하는 순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들 한다. 디즈니 식 클리셰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비꼬는 영화 <슈렉>에서는 그래서, 디즈니의 ‘happily ever after’식 결말을 매우 공들여 비판한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는 신뢰를 잃거나 깊은 불화에 빠진 부부가 어찌어찌 회복하고 다시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는 식의 결말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결혼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고서는 그 전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다룬다. 바로 (3) 결혼이 끝나는 이야기이다.          


왜 그랬을까? 영화의 각본가이자 감독인 노아 바움백에게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노아 바움백은 영화 속 찰리처럼 뉴욕 브룩클린에 사는 검은 머리의 연출가이다. 그는 이혼했다. 

영화 속 니콜과 마찬가지로 LA 캘리포니아에 사는 금발의 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하고 말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그 자신도 청소년기에 부모가 이혼을 했다.

그뿐 아니라 영화 촬영 당시에는 주연 스칼렛 요한슨 역시 이혼 소송 중이었고

또 다른 주연 애덤 드라이버도 어렸을 적 부모가 이혼을 했다.

영화 속 이혼변호사인 로라 던 역시 이혼을 했다. 


감독은 이 영화가 자전적인 영화냐는 질문을 받고서는 그에 부정하지 않았고, 덧붙여 지인이나 업계 사람들 인터뷰에 기반을 뒀다고 하였다. 

"할리우드 놈들은 도대체가 하나같이 진득하니 백년해로할 줄 모르는 오랑캐들인건가?" 싶지만

사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한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겠는가? 

2021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 해 동안 10만 건이 넘는 이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이란 것을 '나한테만큼은 결코 닥치지 않을 일'로 생각하겠지만, 통계적으로 봤을 때 그 생각은 다소 조심성 없는 생각이다.


물론 ‘결혼은 곧 이혼으로 끝나기 마련이다’라는 식의 음울한 비약을 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커플들은 비록 우여곡절은 좀 있겠으나 이혼까지 가지 않고 가족관계를 이어간다. 

그렇지만 마치 사탄의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에 대한 믿음과 태도에 영향을 끼치듯이

이혼은 (비록 거기에 이를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개념의 존재만으로도 결혼생활의 본질을 일부 구성한다.

그렇기에 이혼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결혼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본적으로’ 정도가 아니다. 

파경을 맞은 시점이야말로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하여 '가장 깊이 있고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다룰 수 있다.

연애만 해봐도 알지 않는가? 

그 연애가 무엇이었는지,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꼭 이별 후에야 깨닫기 마련이다. 

우리 모두 그런걸 경험해봤다.



그래서 결론은, 이 영화가 제목은 <결혼 이야기>라고 달아놓고 이혼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결코 뻔뻔스런 양두구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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