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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Sep 05. 2020

내가 거리예술을 좋아하는 이유

일상을 변화시키는 거리예술의 힘 


'거리예술'의 사전적 정의는 '거리에서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예술'이라고 되어 있다. 예술에는 여러 장르가 있지만, 이렇게 공간적인 함의가 들어가는 장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만큼 거리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가 독특하고, 각별하다고 생각한다.




무대는 이래야 해!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 공간 = 거리


공연은 라이브로 진행되기 때문에 변수가 굉장히 많이 발생한다. 모두 사람 손을 거치는 일들이다 보니 누군가가 실수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으며, 다칠 위험도 있다. 거기에 기술 장비가 고장 난다거나, 극장이 침수된다거나 등등의 외부 요인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내에서 하는 공연은 그나마 기후와 자연재해 같은 위험요소로부터 안전한 편에 속한다.



지붕도 무대도 객석도 따로 없는 거리에서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 <내 땅의 땀으로부터> 공연이 펼쳐진 공터

이와 달리 거리예술은 비와 눈을 가려줄 지붕도 없고, 무대와 객석도 따로 없는 공터에서 펼쳐진다. 이 점에서 거리예술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일기예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도 이제는 거리예술축제가 많이 생겨났는데 '우천으로 인해 오늘 공연은 취소되었습니다'와 같은 안내문을 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거리예술은 그만큼 위험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공연장이나 무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 거리는 서로 다른 길이와 폭, 특징과 색깔을 갖고 있어 정형화된 패턴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거리에서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는 그곳에 가서 수치를 재고, 거리의 특징, 주변 분위기들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우리가 늘 걷던 길이 공연장으로 변하는 마법 
거리 곳곳에서 공연이 펼쳐지는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

나는 거리예술의 강점이 여기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공연장은 이래야 하지. 무대는 이래야 하고!'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트려주기 때문이다. 평소 우리가 걸어 다니던 길, 차가 다니는 도로, 공원 등이 갑자기 공연장으로 변모할 때, 우리는 일상에서 마주하던 공간이 예술을 입음으로써 얼마나 드라마틱한 변화를 하는지 바로 깨닫게 된다.


2013년 프랑스의 유명 거리극 축제인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Festival Chalon dans la ru)'에 갔을 때도 그랬다. 이렇게 조용하기 짝이 없는 도시가 축제의 장이 된다니! 페스티벌 사무국에서 받은 리플릿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거리 곳곳에 수많은 공연장이 무수히 많은 점으로 찍혀있는 것을 보고서야 내가 '축제의 도시'에 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극장은 낯선 공간
대학로 만남의 장소, '아르코예술극장'

나는 공연기획자로 일하면서 여러 편의 공연 기획을 했고, 또 지인들의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극장에 대해 친근감을 갖게 되었다. 다른 어떤 문화시설보다도 공연장에 있을 때,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극장은 넘기 힘든 문턱이고, 불편한 공간이 될 수도 있다. 그건 내가 오락실이나 PC방, 볼링장, 당구장 등등의 공간에 가는 것을 낯설게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리라. 자주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묘한 이질감 같은 것 말이다.


그렇지만 거리예술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나다니는 길이나 공원 등과 같은 공간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공연은 유료로 진행될 때도 있으나, 대부분의 공연이 무료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금전적인 부담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거리예술의 매력에 빠지다


나는 2010년에 '광주국제공연예술제'에서 해외 팀 담당 코디네이터로 일하면서 이 거리예술이라는 장르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되었다. 물론 그전에도 야외에서 진행하는 공연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 장르를 내가 기획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관객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다
관객과 가까이에서 호흡하는 거리예술

당시 축제에서는 몇몇 거리 공연팀이 있었는데 나는 이들과 함께 일하면서 거리예술이 경계로 정해져 있는 문턱을 없애준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공중이나 고층 건물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는 논외로 하고, 대부분의 거리 예술가들은 무대가 아닌, 관객들과 같은 공간에서 머물면서 관객의 가까이에서 공연을 펼친다. 때문에 거리 예술가들은 다가가기 어려운 느낌보다는 친근한 예술가의 이미지를 풍긴다. 공연이 종료된 이후에 '공연을 잘 봤다'라고 관객이 다가오기도 하고, 기념사진 촬영도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 생각한다.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
주변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아름다운 샬롱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은 야외극 축제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나는 한국-프랑스 합작 프로젝트인 오스모시스(Osmosis Cie)팀의 작품 <철의 대성당>이 축제에 공식 초청되어 가게 됐었다. 거리극의 역사가 긴 곳인 만큼, 국내 거리예술축제에 비해 더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골라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은 만큼, 관객들은 어떤 것을 보아야 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하는 것이다. 나도 공연이 없는 날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공연을 보면서 보냈다. 워낙 넓은 곳에서 공연이 펼쳐지다 보니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가 공연을 놓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공연을 보러 이동하는 동안 보았던 강가, 공원, 길의 정경들도 모두 아름다워서 공연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여러 위험 요소와 싸우면서도 거리예술을 하는 이유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 <철의 대성당> 공연 당시

거리예술은 실내 공연에 비해서는 열악함에 틀림없다. 무대가 따로 없으니 뙤약볕 아래에서 리허설을 하기도 하고, 근처에 화장실이 없어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도 있었다. 특히 샬롱에서 공연을 할 때는 숙소와 공연장의 거리가 꽤나 멀었는데, 걸어서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동 시에 쓰려고 차량을 렌트해오긴 했으나, 차량을 이용하기보다는 걸어 다닌 날들이 더 많았다.


대기실에는 차가운 물도 없었고, 전기포트 하나만 달랑 있었다. 그때 내가 가져간 맥심 커피를 타서 마시고, 같이 일하던 스태프들에 주곤 했는데 너무 더운 날씨였던지라 컵을 쥔 손이 열로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작열하던 태양이 사라진 밤에는 센 바람 때문에 미리 셋업 해 둔 나무 빔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마음을 졸였고, 행여 비가 오지는 않을까 일기예보를 분 단위로 체크하곤 했었다.


샬롱 거리극 페스티벌 <철의 대성당> 공연 당시

결국 공연 첫날에는 공연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오게 되면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우리는 크레인을 사용하고, 이 크레인에 매달리는 댄서는 아무런 안전장비를 착용하지 않고 맨손으로 오른다. 비가 오게 되면 댄서가 미끄러져 추락할 확률이 높고, 비로 인해 시야가 가려지면 댄서들이 실수할 확률도 올라간다. 우리 팀은 또 나무 빔을 사용했기 때문에 바람이 많이 불면 나무 빔이 흔들리다 떨어져 댄서들의 몸에 무리를 줄 수 있는 위험요소도 있었다. 오히려 댄서들은 의연했으나, 나는 항상 이들의 안전을 걱정하면서 마음을 졸이곤 했다.


울산프롬나드페스티벌, 태풍으로 인한 장비 철수 장면

작년에 울산프롬나드페스티벌에 <철의 대성당>이 초청받았을 때도 첫날은 무사히 공연을 했으나, 둘째 날은 태풍이 오는 바람에 공연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안타까웠으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대기하며 혹시라도 일기예보가 바뀌지는 않을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를 축제팀과 논의했었다.


이처럼 거리예술은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준비를 해야 하지만, 내가 이 장르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 불리한 요건과 싸우면서도 관객들의 가까이에서 소통하고자 아는 예술가들의 의지. 그리고 어떠한 장벽 없이 관객들을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으로 확 끌어당길 수 있는 장르적 매력이 있어서다.




거리예술, 영원하라!


울산프롬나드페스티벌 <철의 대성당> 리허설 중

한국은 비록 유럽에 비해 거리극 페스티벌의 역사가 길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 성장세는 굉장히 빠르다고 생각한다. 지역별로 거리극 축제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고, 거리공연팀도 더 많이 생기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해외 거리극 페스티벌에 비교하면, 장르적인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은 거리예술이 크게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볼거리가 화려한 대형팀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앞으로는 보다 프로그램의 다양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목격하고, 목도하는 일상의 공간을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킬 때 대중들은 자유를 만끽하고, 비로소 주인공으로 뛰놀 수 있다. 반복되는 하루에 지치고, 무미건조하게 행하는 행위들이 의미 없게 부유하는 나날들 속에서 축제는 한순간에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내가 거리예술을 사랑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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