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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Aug 28. 2020

국제 교류 입문은 일본에서-5편

한미독일 4개국 합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경험은 곧 자산, 풍부한 경험을 한 이들과 일한 것은 행운 

보통 출장으로 해외를 가는 경우에는 그 나라의 특색을 제대로 느낄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다. SCOT는 스즈키 연출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해외 투어를 했지만, 극단의 배우들은 정작 관광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말하곤 했다. "현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라고.


나 역시도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한가롭게 관광을 하거나 여유를 즐겼던 기억은 거의 없다. 다만 공연이 시즈오카와 도쿄에서 있었으므로 운이 좋았다. 비록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이동하면서 보았던 도시의 경관과 맛보았던 음식이 기억에 남는다. 시즈오카에서는 함께 회식도 했고, 도쿄에 가서는 배우들이 찾아온 정보에 따라 맛집에 가기도 했다.


워낙 빡빡한 스케줄이었기에 맛집을 간 것이 정말 최고 행복이긴 했다. 그 경험 덕분인지 나도 그 이후에는 해외 아티스트가 한국에 오면, 아무리 바빠도 맛집 한두 군데 정도는 반드시 데리고 가게 되었다.



함께 하면서 느끼는 결속감 


어떠한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있어 팀 워크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개개인의 역량이 뛰어나야 하지만, 그것이 조화롭게 같이 빛나지 않는다면 의미를 잃고 만다. 전혀 다른 국가, 그리고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지만, 큰 갈등이 있었던 기억은 없다. 되돌아보면, 이미 그곳에 있었던 배우들이나 스태프가 이러한 국제 교류 프로젝트를 많이 경험해보았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습을 할 때도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가며 합을 맞췄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불편할 수 있는 부분도 서로 배려하면서 줄일 수 있었다. 공연을 앞두고 토가를 떠나기 전에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함께 모여서 짐을 싸고, 숙소와 극장을 같이 청소한 것도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누구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크고 작은 일을 함께 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밤낮으로 땀과 눈물을 흘리고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야말로 끈끈한 결속력을 만들어준 결정적 이유가 아닌가 싶다. 개개인의 기호와 취향으로 갈리는 친분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모두를 하나로 만드는 마법이 거기에 있었다.



관객을 맞이하는 자세


스즈키 선생님께 배운 또 한 가지의 가르침이 있다면, 바로 극장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자세다.


SCOT는 많은 관극회원을 보유하기 있기로도 유명한데, 그만큼 SCOT의 공연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극장 앞에서 단체가 타고 온 대형 버스가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도 선생님, 그리고 사모님과 함께 극장 로비에 있었는데 그때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오시는 손님분들에게 반갑게 인사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선생님은 그런 것 하나하나도 모두 주의 깊게 보라고 말씀하셨다.


공연은 관객이 없이는 성립할 수가 없는 예술 장르다. 관객이 없는 공연장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그만큼 관객은 소중한 존재다. 그런 마음가짐을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분명하게 전하는 것. 그 모습을 지켜본 것이 지금까지 공연 기획을 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호평과 악평을 가르는 기준점은 '공연의 질'이겠지만, 공연장 안에서만 배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그때 자명해졌다.


그 뒤로 나는 내가 기획이나 홍보를 맡은 공연이 공연될 때, 로비에서 관객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매표소에서 대기하며 공연을 많이 보러 오신 관객분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워 관객분이 직접 성함을 말씀하기도 전에 티켓을 드리기도 했고, 돌아가실 때 감사 인사를 따로 전하기도 했다. 관객 한 분 한 분을 더없이 감사하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 것이 내가 그곳에서 얻은 멋진 교훈이었다.



SCOT, 서울에서의 재회(2013년)

2013년 SCOT의 리어왕이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SCOT의 사람들, 그리고 스즈키 선생님께 짧게나마 인사를 드릴 기회가 있었다. 거의 3년도 더 넘은 시간이고, 수많은 사람들과 작업하고 만나는 삶을 사시는 선생님인 만큼 혹여나 나를 잊으신 것이 아닐까 우려가 되었다. 그런데 가서 인사를 드리자마자 "코슈(光州: 광주 일본어 발음)에서 처음 알게 되어서 말이야."라고 옆 스태프에게 이야기를 하셔서 놀랐다. 그리고 일본어가 예전에 비해 많이 능숙해졌다고 말씀해 주신 기억도 난다.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많았던 그때 이런 대형 프로젝트에서 참가하게 된 것은 정말로 큰 행운이었다. 그때 일하면서 배운 교훈들은 지금까지도 국제 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좋은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일본에서 온 프로듀서나 연출가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정말로 깜짝 놀라곤 한다. "에? 어떻게 그런 기회를 얻게 되었죠?"라고. 스즈키 선생님은 일본 예술가들에게도 굉장히 엄격하고 진중한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는 깊이가 있지만, 말씀보다는 직접 행동과 실천을 통해 더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조명 하나라도 잘못되면, 뛰어가서 직접 바로잡던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한다. 부분과 전체. 세밀한 것들을 캐치해내면서도 전체를 아우르는 것을 잊지 않았던 선생님의 눈빛. 내가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오래도록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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