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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머무르고 싶은 예술이라는 세계

류이치 사카모토 추모 전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by 김연정

드디어 말로만 들었던 피크닉에 와보았다. 이곳에서 전시가 열릴 때마다 몇 번이고 방문하려고 생각했었으나 미루다 이제야 오게 된 것이다. 평일 오후에 방문했음에도 피크닉은 알려진 그대로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전시를 핑계로 장소에 방문하게 되어 좋았고, 결과적으로 전시를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기에 좋은 시간이었다.


음악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하지만, 최근에는 연주곡을 많이 들었다. 특히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내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잠들 수 없는 밤, 이어폰을 꽂고 그의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이 전시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작 에세이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출간 기념 추모 전시인 만큼, 그의 유작 에세이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다.



읽고 싶었던 책이기에 바로 구매했다. 정가는 20,000원인데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책을 읽고 가시면 더 좋을 것 같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사실 그의 생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정보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지만, 그가 어떤 생각으로 음악을 했고, 예술가로서 환경과 평화 문제에 앞장서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는지, 병마와 싸우면서 어떻게 음악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읽어야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책 제목이자 전시의 타이틀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의 의미가 궁금했다. 책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마지막 황제>(1987년)에 이어 음악을 맡았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사랑>(1990년)의 후반부에 원작자 폴 볼스가 한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 몇 차례 일어날까 말 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 폴 볼스(Paul Bowles) -

영화 작업에 참여했던 무렵 류이치 사카모토는 30대 중반이었고, 볼스의 말은 인상적이었으나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2014년, 중인두암이 발견된 이후부터는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이런 생각이 바탕이 되어 2017년 발표한 앨범 <<async>>에는 <fullmoon>(보름달)이라는 곡을 실었다고 한다. 볼스가 말한 구절을 영화 속에서 따와 샘플링한 다음, 같은 문장을 중국어, 독일어, 페르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해 각 언어의 원어민 아티스트에게 낭독을 부탁했을 정도.


이어령 선생님 생전에 인터뷰를 했을 때 선생님께서도 '너 자신이 죽을 것을 기억하라'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 하셨었다. 아직 한창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분들의 부고를 종종 듣는다. 삶이란 예측할 수 없기에 매일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작은 일에도 감사해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몇 번의 보름달을 더 볼 수 있을까라는 표현은 그래서 더욱더 서글프게 들린다. 엄청나게 대단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보다 사소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멀리 느끼게 되는 순간, 내 일상에 큰 균열이 찾아왔다는 뜻이니까.


류이치 사카모토는 암 판정을 받고,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앞으로 암과 살아가게 되었노라고. 조금만 더 음악을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그리고 여러분이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노라고. 암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류이치 사카모토를 음악인으로만 알고 있었으나 그는 곡을 쓰고 투어를 하면서 그 외로 설치예술가, 사상가, 사회운동가로서 바쁜 삶을 살았다. 가족 중 한 명이 "그래도 남들의 세 배는 살았어!"라고 한 말 그대로였다.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목소리를 냈고, 몸이 아픈 와중에도 끝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해냈다.


Ars longa, vita brevis.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그의 마지막 유언이 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예술이 삶의 필수라고는 할 수 없다지만, 예술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이 많다. 좋은 글과 그림, 공연, 그리고 음악을 접할 때 삶이 충만해진다는 감각이 있다. 예술가의 생은 지극히 짧게 느껴지지만, 그들이 남긴 작품은 오래도록 남는다.


어떤 것들을 쉽게 비교해 가치를 매길 수는 없지만, 내게 예술의 가치는 언제나 위를 향한다. 없어서는 안 될 것이고, 내가 있고 싶은 세계이기도 하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빨리 찾았고, 또 잘했으며, 오래 했다. 예술가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축복받은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그도 죽음을 피할 길은 없었다.


그래서 삶이란 유한하며, 그렇기에 내가 우위에 둔 가치를 쫓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류이치 사카모토 하면 백발을 한 그의 모습을 주로 떠올렸는데, 그의 젊은 시절 사진도 만나볼 수 있다. 그가 10대 시절부터 동경했던 백남준과 만난 이야기는 책에도 나오는데 사진에서도 볼 수 있다. 책에는 백남준과 전위 작곡가인 존 케이지를 만났던 이야기가 나오는데 존 케이지의 일화를 들은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소개하고 있다. 좋지 않은 일이나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했을 때 존 케이지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싶어 적어본다.


존 케이지는 과거에 세 번, 여행을 하다 짐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세 번 모두 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때까지의 인생을 리셋하고 재출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고. "과거에 얽매일 필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버리는 용기다"


앞으로 나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는 '멋진 할머니가 되는 것' 일 테다. 젊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계절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멋있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수려한 외모로 배우를 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멋졌던 이유는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잘했으며, 꾸준히 성실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영향력을 선한 의도로 사용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고.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암 투병 중이었고, 죽음을 앞두었다고 할지라도 솔직하게 터놓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 같다. 유명한 사람일수록 세상의 잣대란 더 가혹한 것이니까.



20세기말, U2의 보노를 중심으로 펼쳐진 아프리카 최빈국의 대외 채무 탕감 운동인 '주빌리 2000'에 참여한 것을 필두로 류이치 사카모토는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예술가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예술가 등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한 세간의 거부감이 존재합니다만, 저는 그날 이후 '만약 내가 정말 유명해 팔 수 있는 이름이 있다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라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설령 위선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해도, 그로 인해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닌가 싶어서요. 환경에 관한 운동도, 지진 재해 후 활동도 이런 신념의 힘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한 번 연결되면 쉽게는 그만둘 수 없죠. "
-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중 -

삼림보전단체인 '모어 트리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시작한 '어린이 음악 재생 기금'을 발전시킨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 3년간의 모금 마련이 끝난 후, 함께 무언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생각으로 피해 지역에서 어린이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집해 정기연주회를 여는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음악감독이라는 직책을 맡고 아이들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워크숍이 열리거나 합숙을 하게 될 때면 참가하는 식으로 꾸준히 연을 맺는다.


건강 상태는 악화되어 갔지만,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꾸준히 전하며 71세 생일에 새 앨범을 발매한 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는 내가 상상하는 멋진 노년의 모습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빨리 발견했고, 심지어 잘했으며, 오래 했다. 암 투병 중에도 꾸준히 음악을 만들고, 연주를 하면서 더 좋은 사회를 위한 행동을 멈추지 않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너무나도 애석하지만, 그의 음악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나고도 음악이라는 큰 자산을 남겼다.


류이치 사카모토를 떠올리면, 언제나 두 손으로 정갈하게 머리를 정리하면서 안경을 치켜올리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리고 모든 공간을 그의 음악으로 채우는 장면도 함께. 류이치 사카모토가 연주하는 영상을 보며 마치 충만한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는 음악으로 그의 세계를 충만하게 채웠다. 나는 무엇을 나의 세계를 그토록 충만하게 채울 수 있을까?


유한한 인생의 길 위에서 빛나고 반짝이는 순간은 찰나에 그칠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예술이라는 세계에서 더 오래도록 머무르기 위해, 멋진 할머니가 되기 위해 더 성실한 하루하루로 채워보기로 한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때까지의 인생을 리셋하고 재출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고. "과거에 얽매일 필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버리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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