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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규 Dec 14. 2016

국정원 댓글을 추적하다 (2)

"댓글 삭제되고 있는데 잠이 와요?"

청문회 장소인 국회 제3회의실에서 미리 동영상을 틀어서 확인하면 좋으련만 비교섭단체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었다. 내 차례가 오고, 경찰청장에게 먼저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동영상을 틀었는데 웬일인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거 뭐야. 가장 중요한 게 음성인데. 영상사고인가?'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내심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막만으로는 현장감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속이 타기 시작하는데 다행히 신기남 특위 위원장이 질의시간을 중지시켜놓고 제대로 틀어보라고 지시를 내려준다.



오전 질의는 공중파 생중계를 하기 때문에 의원들에게 질의시간을 5분만 준다. 5분 안에 사안의 본질을 명쾌하고 극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의원실에서는 5시간, 아니 50시간 이상 공을 들여야 한다. 1분 1초가 피 같은 시간이니 속이 탈 수밖에! 그러던 중 "띠딩"하는 동영상 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아! 이제 됐구나.'

다시 처음부터 영상이 돌아가고 경찰 분석관들의 모습과 함께 회의장 가득 동영상 음성이 울려 퍼졌다.

"지금 댓글이 삭제되어가고 있는 판에 잠이 와요? 지금.
삭제 확인했어요. 삭제 확인했다니까."


경찰 분석실 영상 공개 다음날 한겨레 1면에 기사가 실렸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셔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 분석관들은 게시글, 댓글뿐만 아니라 인터넷 접속기록 자체가 삭제되었다는 사실을 분석 초기에 찾아냈고, 수십 번 삭제 관련 대화가 나온다. 그리고 무슨 글을 썼는지, 즉 선거개입이나 정치관여 내용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면 글을 올린 인터넷 사이트 서버를 수사해야 한다는 것도 환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분석 막바지로 가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180도 바뀐다. "댓글 없다." "발설하면 안 된다."로. 심각한 왜곡, 의도적인 조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백보를 양보해도 '댓글 없다'가 아니라 '댓글 삭제되었다'로 발표했어야 했다. '댓글 삭제흔적 발견'으로 발표해야 한다는 분석관들의 의견은 완전히 묵살되고 말았다. '댓글 없다'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했다면 서울경찰청은 국정원을 도와 불법선거의 공범 노릇을 한 것이고, 모르고 했다면 수사의 기본이 안되어 있다는 것이 이 동영상으로 만천하에 밝혀졌다.

당장 파문이 엄청났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파장을 막기 위해 경찰청장이 오후에 한 답변이었다. 

"당시 직원들이 농담으로 한 말이랍니다."


이 중대하고도 민감한 대통령 선거 수사업무를 농담으로 한다고 고백을 한 셈이다. 경찰청을 피감기관으로 하는 안전행정위 국회의원으로서 일선에서 고생하는 경찰관들을 위해 예산도 챙기고, 업무조언도 했지만 이때만큼 경찰에 실망한 적이 없다. 

청문회 기간에 남재준 국정원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증인 대기실, 휴게실 등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주변에 사람들도 거의 없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라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선거개입 맞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답변은 완벽히 같았다.

"북한의 대남 침투가 이제는 군사부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는 물론 경제 사회 문화, 방송이라든가 인터넷에 연결된 모두 분야에서 대남 침투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국정원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 대북 방첩활동을 해야 한다. 정치영역도 예외가 아니고 특히 사이버상에서 안보를 튼튼히 해야 한다. 정치개입이 아니라 국가안보 업무이다."


남재준 원장은 군인 출신답게 좀 딱딱한 어투, 원세훈 원장은 행정관료 출신이라 부드러운 어투를 쓰는 것만 달랐지 그들의 안보의식은 투철했다. 어떻게 보면 국정원장 자격을 갖췄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들과의 개인적 대화를 하고 나서야 국정원의 분위기와 사고방식을 조금이나마 가늠하게 되었다.
그들은 선거개입, 정치개입이라는 범죄의식이 전혀 없었다. 현행법상 금지되어 있는 정보기관의 정치개입, 선거개입은 그들의 머리에는 아예 없었다. 오히려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로 여기고 있으니 더 열심히, 더 제대로 정치개입을 할 판이었다.


그런데 이를 갖고 야당이 난리치고 여론이 떠들썩하니 얼마나 가당치 않게 생각했을까? 이들 세계에서는 레드컴플렉스를 활용하고, 북한이 침략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치와 권력을 유지하려는 행태가 체질화되어 있었다. 한국사회의 어두운 이면, 권력기관의 불법행태 한복판을 확인하며 진보당 국회의원, 국정원 청문위원으로서 '분단체제 극복과 정보기관 개혁'이란 과제가 명료하게 다가왔다.

관권선거, 불법선거가 명확한 상황에서 청문회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촛불문화제이든, 집회든, 청와대 농성이든 어디든 달려갔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분들은 어려운 고비마다 불이익을 아랑곳 않고 행동에 나섰던 시민들이었다. 정확한 사실과 진실을 찾는 기자들, SNS에서 맹활약하는 네티즌, 위험을 무릅쓴 제보자들, 집회가 공지되면 어김없이 참석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모두 하나가 되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으며 여유를 보였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15년 2월 항소심에서 정치개입 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실형 3년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되었다.


국정원 국정조사 당시 국정원 직원 김하영에게 일침을 가했던 영상


붙임자료 : 2013.7.25 경찰청 기관조사 국회 회의록


◯이상규 위원  서민의 정이 묻어나는 서울 관악을 통합진보당 이상규입니다. 청장님, 4월 달에 상임위에서 인사말 한 것 기억나십니까?

◯경찰청장 이성한  예, 기억납니다.

◯이상규 위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경찰 수사의 전문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한편 공정하고 합리적 법집행으로 원칙 중심의 신뢰 치안을 정착시켜 나가겠다’, 맞지요?

◯경찰청장 이성한  그렇습니다.

◯이상규 위원  이렇게 하셨습니까?

◯경찰청장 이성한  ……

◯이상규 위원  답변하세요.

◯경찰청장 이성한  예.

◯이상규 위원  (자료를 들어 보이며) 작년 12월 16일 서울청이 주도해서 수서서로 하여금 발표하게 한 중간수사 발표입니다. 이 수사 발표의 핵심은 문재인․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비방 댓글이 없다라고 하는 겁니다. 댓글 없었습니까?

◯경찰청장 이성한  당시 네 가지 분석 키워드에 의한 것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규 위원  왜 그러십니까, 왜?

‘국정원 직원 대선 글 안 썼다더니 야당 후보 비판 글 91개 글 올렸다’, 1월 달에 확인이 됐습니다. 저희는 이게 오유, 뽐뿌 압수수색한 이후에 확인된 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검찰 수사에 의하면 이미 당시에 확인이 됐습니다.

인케이스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삭제된 문서파일 TXT 파일을 하나 복구합니다. 거기에 오늘의 유머 사이트 게시물 운영․관리 방식, 30여개의 아이디, 닉네임, 패스워드 그리고 민간인 조력자로 밝혀진 이 모 씨의 인적사항, 주민등록번호, 그 명의로 개설된 아이디와 닉네임 전부 다 들어가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찬양하는 내용의 동영상 주소까지 다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 내용에는 ‘저는 이번에 박근혜를 찍었습니다’, ‘최고의 복지’와 같은 다수의 정치적 이슈에 관한 글이 파일 조각 형태로 노트북 내에 남아 있었습니다.

거짓말하실 것입니까? 이 자리에서도 거짓말할 것입니까?

◯경찰청장 이성한  제가 알기로는 그 글은 국정원 직원이 작성한 게 아니고 열람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규 위원  노트북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두 가지 중에 하나입니다. 고의로 은폐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경찰이 무능하거나. 

동영상 준비해 주십시오. 

좀 전에 정청래 위원도 동영상을 확인하면서 당시에 ‘닉네임을 찾았다’, 박수 치고 ‘고기 사 달라’ 이런 이야기를 분석관끼리 한 이야기가 나올 뿐만 아니라 증거가 인멸되는 것까지 당시 사이버수사팀에서는 확인을 했었습니다. 

자, 가겠습니다. 

(동영상 상영)

소리를 좀 더 키워 주세요. 

시간 제외하고 다시 틀어 주십시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주시고 시간 다시 주십시오. 

◯위원장 신기남  처음부터 해 보세요. 그리고 1분 더 드리겠습니다. 

◯김재원 위원  지금 시간이 중단되어 있어요. 

◯이상규 위원  중단은 지금 된 거고요. 아까 1분 57초부터…… 

증거가 인멸되는 과정을 포착하면서도 그냥 넘어갔습니다. 저런 내용이 하나도 수사결과로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분석관실의 상황입니다.  청장님, 저 내용 전부 다 확인했습니까? 

◯경찰청장 이성한  앞뒤 내용까지는 제가 확인은 못 했습니다마는 저 부분이 위원님께서 주장하는 그런 부분과 일치한다면 아마 재판 과정에서 그에 따른 조치가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상규 위원  청장님, 저 내용을 확인해 보셨냐고요.

◯경찰청장 이성한  그 백칠십 몇 시간을 다 보지는 못 했습니다. 

◯이상규 위원  그러면 저 내용 안 봤습니까? 

◯경찰청장 이성한  저 부분은 제가 못 본 부분입니다.

◯이상규 위원  이 중차대한 사건에 관련된 아주 중요한 증거물을 검토도 안 하십니까? 도대체 뭐하는 겁니까? 

김용판 씨가 국정원 출신이라고 하는 것 알고 계셨습니까? 

◯경찰청장 이성한  예.

◯이상규 위원  권영세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당시의 상황실장이 검사로서 국정원에 파견된 사실 혹시 알고 있습니까? 

◯경찰청장 이성한  언론을 통해서 본 바 있습니다. 

◯이상규 위원  김용판 씨에게 전화를 걸었던 박원동 씨가 국정원으로서 검찰에 또 파견을 나갔습니다. 그 사실 알고 있습니까? 

◯경찰청장 이성한  그 내용도 본 것 같습니다. 

◯이상규 위원  여기 이와 같이 경찰의 김용판, 국정원의 박원동, 박근혜 캠프의 권영세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한복판에 경찰이 있다고 하는 점 제대로 밝혀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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