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시간 동영상 CD 72장의 녹취록을 하루 만에 작성하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 공교롭게도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5.16과 똑같은 지지율을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과연 공정한 경기였을까?
대선 투표일 직전에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를 분석한 서울경찰청은 '댓글 없다'라고 긴급 보도문을 날렸지만, 선거 이후 연이어 국정원의 대선개입 증거가 폭로되자 경찰 수사는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채동욱 검찰은 이례적으로 국정원을 압수 수색하며 광범위한 증거를 찾아냈고 선거개입, 정치개입 혐의로 기소했다.
국정원 청문회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2013년 국정원 국정조사특위에 단 한 명의 비교섭단체 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지역주민, 진보당원, 개혁적 인사, 촛불시민 등 만나는 분들마다 국정원 청문회에 대한 기대가 상상 이상이었다.
말씀은 고맙고, 기대도 이해는 되나 나에게는 무거운 짐일 수밖에 없었다. 2012년 당사태를 겪고 정권과 언론이 우리를 종북으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에서 진보당 의원실에는 제보도 안 들어오고, 뭔가 특종을 잡아낼 거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정권의 정통성 문제가 걸려있어 방어를 넘어서서 국정원을 두둔하고 오히려 정치공세를 펼칠 태세여서 도대체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기관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이 의원님, 국정조사 방향을 어떻게 잡았습니까?"
순간 머리 속 스쳐 지나가는 생각,
'햐 이건 뭐지? 국정원이 쓰리쿠션으로 떠보다니, 애가 타는 모양이네.'
비교섭단체 의원에게 사전 정보를 알아내야 할 정도로 국정원은 예민했고, 긴장 상태였다.
국정원 국정조사특위가 구성될 무렵에는 최소한 대선개입 지휘선 징계나 사법조치, 예산 또는 조직 축소 등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국정원이 애가 탈 무언가가 분명 있는데, 그게 안개처럼 잡힐 듯 말 듯 윤곽이 보이지 않은 채 특위는 시작되었다.
김무성, 권영세 핵심 증인 신청에서부터 여야가 부딪혀 파행을 겪다가 겨우 증인과 일정에 대한 합의가 일단락되고 피감기관인 경찰, 검찰, 국정원으로부터 자료가 속속 들어왔다. 기관 제출 자료, 언론 기사, 시민단체나 다른 의원실에서 밝힌 내용을 분석하면서 전체 가닥을 잡는 게 1차 작업이다.
자료의 양은 방대했지만 역시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특종은 못해도 기본은 해야 하는데 고민이 커졌다. 결국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127시간 분량의 동영상 CD 72장을 모두 들여다보기로 했다.
경찰 사이버수사대가 2개의 분석실에서 국정원 여직원이 제출한 컴퓨터 하드를 분석하는 3일 밤낮을 고스란히 담은 기록으로, 이미 검찰이 압수 수색해서 일부 내용을 국정원 범죄사실로 발표한 바 있다.
분량도 많고 검찰이 이미 손을 댄, 소위 단물 빠진 자료라서 어떤 의원실도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는 동영상 CD에 큰 건은 바라지 않았다. 그저 '댓글 없다'는 경찰 수사 발표의 문제점이라도 밝힐 게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자료를 다 검토하지 않고 이 중요한 청문회를 한다는 것도 영 내키지 않았다. 국정원 대선개입의 진실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을 '행동하는 시민들'에게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마음은 먹었는데 문제는 시간이었다. 경찰청 청문회는 이틀 앞으로 다가왔고, 이틀 만에 127시간 동영상 녹취를 뜨려고 하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의지를 관철시키는 추진력, 진보당의 팀플레이가 바로 이 대목에서 빛을 발했다.
진보당은 주요 현안을 의원실 개별에게 맡기지 않고, 당 체계를 중심으로 팀을 구성하여 응집된 집단력을 발휘해왔다. 국정원 특위를 할 때도 원내에 대응팀을 구성하고 여기에 모든 의원실 정책보좌관과 당 정책, 기획 담당자까지 망라했다.
대응팀에서 CD 72장을 진보당 6개 의원실 보좌진들과 중앙당 당직자들에게 1장씩 배당, 녹취를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하루 만에 127시간 38분 분량의 동영상 녹취록을 한글파일로 취합하는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냈다. 상임위나 특위에서 같은 당 의원들이라도 최고 정보는 공유하지 않는 여의도 정치 법칙을 우리는 정면으로 깨고 나갔다.
나중에 "댓글 삭제되고 있는데 잠이 와요" 대화를 누가 녹취했는지 알아보니 김재연 의원실 보좌진이었다. 찾아가서 "고맙다, 큰 일 했다."라고 하니 좀 민망해하길래 왜 그런지 물었다. 정작 자신은 어떤 내용을 녹취했는지, 그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른 채 그저 분석관들의 음성을 듣는 대로 투닥투닥 쳤다며 씩 웃는다.
일을 맡기면 무엇이든 해내면서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이런 동지들이 진보당의 가장 큰 재산이다.
그렇게 취합한 녹취록에서 대응팀은 10개의 장면을 추려냈고, 최종 결정은 경찰청 청문회 전날 밤 내가 했다. 대응팀은 밤샘 작업으로 필요한 동영상에 자막 넣기까지 마쳐서 아침에야 작업을 완료했다.
청문회를 잘할 수 있을까?
동영상 효과가 있을까?
일말의 긴장감에 새벽에 국회로 출근, 동영상을 꼼꼼히 살펴보고 질의서도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완에 보완을 거듭했다.
2013년 7월 25일 오전 10시, 대망의 결전 시간은 그렇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