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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규 Jan 28. 2016

글을 마치며

국회의원이 되고나서 당사태 당해산 검찰출두 등 지난 4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병이 나도 아파 쓰러진 적은 없다. 강한 긴장은 힘든 노동일도 버티게 해주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지키고 조준호보고서의 왜곡을 밝히는 일로 시작하여 당에 쏟아지는 무수한 정치탄압, 검찰수사, 언론포화를 어떻게든 막아보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진보당 의원으로서 의정활동, 지역활동도 최선을 다했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국정원 청문회, 세월호 특위, 씽크홀 대형화재 사고현장 방문조사, 밀양-강정-노동조합 등 투쟁현장 방문, 도림천 빗물저류조, 경로당 예산, 10년 묵은 각종 민원 해결, 매달 주민상담의 날 운영...


꿈처럼 쏜살처럼 4년이 지났다.


의정활동을 하면서 나 자신도 변했다.


머리가 더 하얗게 셌다. 사람에 대한 판단기준도 바뀌었다. 전에는 노선과 지향을 봤는데, 이제는 인성도 보게된다. 보수라도 따뜻한 사람이 있고, 진보인데도 약자를 밟는 자가 있었다. 어렵고 힘들 때는 돕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꼴도 보기 싫게 되었다.


자연스레 정치관도 정립되었다. 정치의 기본은 무릇 어렵고 억울한 사람을 도와 스스로 일어서도록 하는 것. 주민들을 만날 때, 지역의 각종 민원을 추진할 때, 사건사고 현장을 갈 때마다 이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국회의원이라고 목에 힘주는 자들이 가끔 있다. 가련한 네 인생이다.

2012년 당사태 때, 많은 사람들이 이석기-김재연 의원만 사퇴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 왜 이렇게 버티냐고 압력도, 비난도 대단했다. 밤 12시가 다 되었는데 이미 신림동에 와있다며 어떻게든 취재를 하려는 기자를 다음날 국수집에서 만나 계급장 떼고 이야기했다. 기자가 물었다.


"대기업도 한달을 두드려 맞으면 두손 두발 다 듭니다. 이렇게 버티는 힘이 어디서 나오죠? 정말 배후에 뭔가 있는거 아닙니까?"


대답했다.


"무슨 대선주자도 아니고, 중진급 의원도 아닌 두 사람을 표적으로 온 나라가 난리치는 이유가 뭐죠? 어떻게 버티냐고요? 우리는 꿇릴게 없어요. 우리가 당원수가 가장 많은데 왜 부정을 하겠어요. 당신들 마녀사냥으로 진보당 당권파를 대한민국 최대 정치계파로 키워주고 있는거예요. 보세요, 앞으로 정권과 맞붙는 세력은 우리가 될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의도 정치 안합니다. 두 의원이 잘못도 없지만, 설혹 잘못이 있다해도 우리는 꼬리자르기 정치는 안합니다. 여의도 정치에 편승하여 편하게 정치할 생각이라면 왜 진보당합니까? 여의도에 거센 바람이 불겁니다."


여의도 정치에 맞서다 결국 우리는 해산당했다. 반성할 대목은 있지만 후회도 없고, 다른 길을 갈 생각도 없다.


'서서 죽을지언정 무릎 꿇지 않는다'


진보당은 왜 해산당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한마디로 하자면 힘 대 힘으로 부딪쳐 우리가 깨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처절한 반성과 혁신이 요구된다. 우리는 더 깊고 넓어져야 한다. 더 변화무쌍하고 더 다양한 요소를 묶어낼 수 있어야 한다. 깨지지 않는 당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많은 시간과 지혜가 필요하리라 본다.

진보당은 왜 박해를 받았을까?


한국에서 유일하게 615공동선언에 기반한 상호존중-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흡수통일은 필연코 무력충돌을 불러일으키기에 위험하다. 근원에는 한반도 평화냐 전쟁이냐가 강하게 부딪치고 있다. 평화통일을 주장한 조봉암 선생과 진보당이 북진통일을 강요한 이승만 정권에게 살해당했듯 한국 정치지형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 지점에 목을 매고있다. 동포를 사랑하지 않는 자, 평화를 걷어차는 세력은 결국은 매국노가 되더라.


국정원 청문회 때 국정원의 댓글공작, 경찰의 댓글은폐,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을 차례로 찾아내면서 들었던 생각은 '피흘리지 않고 집권은 불가능하구나'는 각오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한나라당 의원의 보좌진 범행으로 밝혀진 선관위 디도스 공격과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은 신종 부정선거가 공작차원으로 이미 작동되고 있다는 증거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음모와 위기도 거세지만 이에 맞선 국민적 저항 또한 불타오를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

조직된 민중의 힘을 믿느냐 그렇지 않느냐?

곧 대중에 대한 믿음, 노동에 대한 존중 여부가 사이비진보를 걸러내는 체이다.


세월호 참사의 비애를 잊을 수 없다.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갈 듯하다. 국정원 연관성까지는 밝혔는데 그 연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까지 더 밝히지 못해 천추의 한이다. 댓글공작-세월호를 추적하다보니 정부 각 조직, 정권기관, 국정원이 독립기관이 아니라 하나로 얽혀있는 일그러진 구조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기자 신분의 국정원, 경찰모자를 쓴 국정원, 비서관으로 일하는 국정원 등 전에없이 헛것이 보이기도 했다.


의원이 되기 직전에도, 의원직 박탈된 직후에도 배관공으로 일을 해서 너무 행복하다. 쇳가루, 돌가루, 세멘트가루 때로는 똥물을 뒤집어쓰며 일해야 하니 좋은 작업복을 입을 수 없다. 그냥 보면 상거지 차림이다. 그렇게 입고 장정 몇사람도 힘겨워하는 바이패스 같은 중량물을 올리고, 몇십미터 고소작업, 몇천도 화기작업을 하려면 서로 호흡을 맞추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동료애가 싹트기 마련이다. 육체노동이니 당연히 몸은 힘들지만 심간은 편하다. 현장은 몸과 마음을 강하게, 정결하게 해주는 고향같다.


민주노동당 노동위원장을 했던 고 이해삼 선배가 늘 하던 말이 있다.


'민중의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서민을 섬기는 정치, 노동자가 주인되는 정치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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