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은 갈수록 증폭했다.
승무원은 정확히 구조하면서도 승객 구조에는 왜 우왕좌왕, 무기력하기까지 했을까? 왜 선장을 체포하지 않고 아파트로 데려갔을까? 정부가 발표한 항적도는 몇 번씩 바뀌면서 오히려 타는 불에 기름 붓는 격이 되었다.
선박 전문가들은 급선회와 침몰 과정도 대체로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제주 운항은 먼 바다 깊은 뱃길이 안전한데, 섬 사이 얕은 뱃길로 위험을 자초한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했다.
도대체 세월호는 왜 모험을 했고, 해경은 왜 초동대처를 제대로 못했을까?
의혹의 첫 단서는 민주당 김현 의원이 찾아냈다. 안행부가 김현 의원실에 제출한 사고경위서에, 국정원이 보고를 받았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상한 건 그 다음 의원부터는 제출서류에 국정원 보고 사실만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언론에서는 경향신문이 사고 매뉴얼이라 부르는 세월호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를 입수하여 국정원에 보고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아! 국정원이 관련되어 있구나. 국정원 눈치를 보느라, 또는 국정원 지시를 받느라 세월호도 해경도 초동대처를 못했나?
우리 의원실은 좀 더 확실하게 연관성을 찾기 위해 서해를 운항하는 여객선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해경을 관할하는 농해수위 소속 김선동 의원의 도움을 받아 모든 여객선의 사고 매뉴얼을 확인해갔다. 어떠한 배도 국정원에 보고하게 되어있지 않았다. 해경에만 보고하면 사고 대처가 되니까 자연스러운 일이고, 세월호보다 훨씬 큰 배도 국정원 보고의무는 없었다. 해경에서는 서해 NLL 때문에 보안점검 차원이라고 구두 답변을 했는데 정작 백령도를 운항하는 배조차도 국정원 보고의무는 없었다.
세월호는 해경과 국정원에 보고하게 되어있는 유일한 배였고, 쌍둥이 배인 오하마나호는 해경과 해군2함대에 보고하게 되어있었다.
이 두 배는 단순한 여객선이 아니구나!
국정원과의 연계를 확인하니, 대선정국 국정원 불법개입이 떠올랐다. 김하영이 발각되자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증거인멸'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게시글, 댓글 삭제사실을 확인하고도 '댓글 없다'로 발표하여 유권자 표심을 거꾸로 돌려버렸다.
국정원과 관련 있는 배라면, 제일 먼저 무엇을 했을까? 인명구조보다는 '국정원과 연계된 배라는 증거 인멸'에 골든타임을 다 써버린 것은 아닐까? 그리고 해양경찰은 이를 거드느라 우왕좌왕한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7월에 가장 확실한 물증이 확보된다. 세월호에서 건져 올린 CCTV 녹화기와 그에 딸린 노트북을 복원했는데 노트북에 홍보 파일, 음악파일 이외에 한글파일이 있었고 제목이 '국정원 지적사항'이었다.
드디어 국정원이 자기 이름을 음지에서 양지로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100가지의 지적은 우습게도 천정 도색작업, 재떨이 위치 선정, 유리창 선팅, 안내방송 멘트 준비, 침대 불량 교체, 화장실 거울 교체, 샤워실 중간밸브 불량, 2월 작업수당 보고서 작성 같은 배수리 및 직원 관리 내용이었다.
어! 이건 뭐지?
보통 배 주인이 하는 지시를 국정원이 했다면, 세월호는 국정원 배?
그냥 연관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국정원 수익사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증거가 나온 셈이다.
나중에 민주당 의원들에게 국정원 퇴직자들의 모임인 '양우공제회'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식구들 먹여 살리기 위해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댄다는 이야기도 붙였다.
세월호는 특별한 배였다.
그 전모를 파헤치기 위해 매주, 매달 팽목항을 찾고 관련기관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부기관이 총동원된 일사천리 특혜 과정이 고구마 줄기처럼 엮어 나왔다.
하드디스크 데이터 확인 결과 이 노트북은 세월호의 업무용 컴퓨터로 밝혀졌습니다. 몇 개의 세월호 홍보 자료 파일 이외에 음악 파일이 주로 들어있는 것으로 보아 이 노트북은 선상에서 방송으로 음악을 틀어주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사 중 뜻밖에도 이 노트북 하드디스크에서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문건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이후 세월호가 국정원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로 쓰이게 됩니다.
- 김인성의 "IT가 구한 세상" 2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