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전반기는 안행위에서 활동하다가, 후반기에는 상임위를 정무위로 옮겼다. 정무위는 국무총리실과 총리실 산하 기관이 피감 대상인데 여기에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가 속해 있어 이름과는 달리 대기업과 은행 등을 관할하는 경제위원회였다.
보좌진도 새롭게 구성해서 경제 전문가 2명을 영입했는데 그중 한 명은 탐사추적에도 수완이 있었다.
나는 경제학 교수에게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브리핑도 받고, 일선 실무자들에게 현장의 실상을 듣는 한편 토론회 참여, 각종 자료 독파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세월호 진상규명을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
별 관계없어 보이던 정무위 업무와 세월호 사건은 2014년 10월 정기국감에서 한 줄기로 모아졌다.
먼저 총리실 자료를 검토하다가 정부업무평가위원회가 세월호 참사 2달 전에 '해경'을 우수기관으로 선정, 포상한 사실을 밝혀냈다.
문제는 평가 위에 당연직으로 되어있는 정부 인사, 즉 국무총리 안행부 장관 기재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4인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정족수 미달로 무산된 후에 서면회의를 열어서 졸속심사를 통해 해경을 우수기관으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현장실사는 했는지, 재난구조 훈련을 통한 실전 점검은 있었는지, 관련 부처와 협조는 잘 이루어지는지 등 구체적 평가 근거는 고사하고 회의조차 형식적이었다. 정부 재난관리 시스템이 오히려 해경의 부실과 무능을 방치 또는 조장했다는 느낌, 정부 기관들이 담합해서 그저 국민 세금 나눠먹기나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8년 된 일본의 고물 배를 수입하여 세월호로 불법 증축한 시발점은 선박연령 완화였다. 담당 부서는 총리실 산하 국민권익위의 '행정규칙개선 TF팀'이었다.
왜 선박연령을 늘렸는지, 어떤 민원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당시 팀장을 불러 전후 상황을 들어봤다. 명분은 국민이 요구하는 과도한 규제 해소였지만 놀랍게도 지휘를 총리실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팀장은 규제완화 사항들이 일정 정도 모아지면 권익위 결재를 올리기 이전에 청와대에게 먼저 보고하고, 승인이 떨어진 후에 권익위 내부 절차를 밟았다고 했다. 청와대 지휘 아래 선박연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가 관여했구나, 이거 구미가 당기는데.'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의 핵심은 침몰 원인, 국정원 관련 여부, 해양마피아 발본색원 등 여러 가지가 많은데도 언론은 이상하게 유병언에게만 매달려 도배하다시피 했다.
의원실에서는 사람을 보내 구원파 쪽 주요 인사를 만나 적지 않은 분량의 자료를 받고, 그들이 알고 있는 여러 내용들을 들어보았다. 청해진해운, 세월호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
'우리가 남이가!' 구호는 뭐냐고 하니 청와대와 거래가 가능한 관계라며 자신 있게 답을 했다. 그들은 억울함을 넘어 분통해했고, 청와대든 국정원이든 권력기관과 뭔가 밀착되어있기는 한데 결정적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우리는 자체로 유병언의 행적을 하나씩 들춰보았다. 유병언이 공적자금 채무 140억 원을 탕감받은 사실이 눈에 띄었다. 담당기관은 국책기관인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였다. 자료요청을 시작하자 예보는 당황한 듯했다. 그들은 일관되게 공적자금 수조 원을 다루는 자기들에게 100억 원대 채무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며, 그 추심업무도 액수가 적어 산하기관에 넘겼다는 주장을 펼쳤다.
언론은 유병언을 도배하고 있는데, 예보는 오대양 사건 때부터 그 유명한 유병언의 채무탕감 사실조차 몰랐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쯤 의원실로 제보가 왔다. 유병언의 채무탕감을 예보 사장이 직접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오호라! 이건 또 뭐지?'
공적자금 채무 100억 원 이상을 탕감받은 사람은 유병언이 유일했다. 이럴 경우 채무자 유병언의 은닉재산, 차명재산 실사가 기본인데 예보는 전혀 추적 작업을 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파고들자 여러 곳에서 무마 시도가 들어왔다. 우연히 나간 자리에서 느닷없이 예보 사장을 증인 목록에서 빼 달라는 요청이 왔다. 예보의 끈질기고 위압적이기까지 한 채권추심 전례에 비춰보면 유병언 채무탕감은 상당한 특혜일 수밖에 없는데, 결정한 사람, 지시한 계통은 없고 규정에 따라서 산하기관에 넘겼고, 그 기관의 일선 담당자가 역시 규정에 따라 탕감해줬다고 한다. 완벽한 일처리가 오히려 이상했다.
특혜의 당사자 유병언은 결국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국과수를 찾아가 조사관들을 직접 만나 발견 과정부터 유병언 DNA 확인과 사망원인 수사까지 들었으나, 그들의 결론은 사인 불상(알지 못함)이었다.
세월호 주변은 비정상과 의혹이 난무했다.
세월호 특혜의 결정판은 세월호 수입과정이었다. 청해진해운이 국책기관인 산업은행 대출을 받았다는 언론 기사를 보고, 대출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자료를 요청했다. 자료를 검토해보니 대출서류에 당연히 들어있어야 할 선박평가서가 없었다. 평가를 했다고 하면서도 평가서 제출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처음에는 실물평가(대출 담보물을 직접 보고 하는 감정평가)를 했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탁상평가(대출 담보물 실사가 어려운 경우 담보물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각종 서류로 하는 감정평가)를 했다고 말을 바꾸는 순간,
'어, 이거 큰 건이구나!'
느낌이 그냥 왔다.
감정평가를 산업은행이 직접 하는 것은 아니고 감정평가회사에 위탁을 하는데, 산업은행은 감정평가회사에 떠넘기고, 감정평가 회사는 산업은행 지시를 받는 처지라 산업은행에 알아보라는 식으로 떠넘겼다.
그러나 평가서가 없으면 더 큰 문제일 수밖에 없기에 결국 평가서가 왔다.
그런데 여기서 대박!
세월호 대출이 결정난 날짜(대출기표일) 2012년 10월 4일, 평가서 날짜는 2013년 1월 30일. 무려 4달 뒤에 평가 서류를 꾸민 것이다.
게다가 평가서에 나와있는 선박번호는 ICC-121831, 이 고유번호는 '인피니티호'라는 배였다. 세월호 선박번호 ICR-121832와 비슷하나 끝번호와 선박중량 표시인 C와 R이 바뀌었다.
한마디로, 평가도 하지 않고 80억 원을 대출해주면서 사후 서류작성마저도 엉터리로 했다.
선박수입 과정과 대출관례를 알아보기 위해 다른 은행들에 문의해보니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답변이 왔다. 얼마짜리 배인지 확인도 않고 어떻게 대출금 책정이 가능하며, 대출 결정이 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자기들 같으면 관련자 전원이 옷 벗을 사안이라는 것이다.
대출내역에서는 더욱 의혹이 많았다.
대출 당시 산업은행이 청해진해운에 빌려 준 돈은 168억 4800만 원으로 선박담보물 평가액 154억 5600만원을 이미 초과한 상태였다. 쌍둥이배인 오하나마호 평가액이 97억 5100만 원이었으니 세월호에 대한 총대출금 100억 원도 상당히 과도한 금액이었다.
201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내가 홍기택 산업은행장을 추궁하자, 다음 순번인 새누리당 유일호 의원이 어이없어하며 홍기택 은행장을 질타하기까지 했다.
처음 정무위 국정감사를 시작할 때는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만 '세월호 참사'를 거론했는데 국정감사를 마치는 종합질의 때는 많은 야당 의원들이 '세월호 참사'의 문제점과 의혹을 추궁하여 세월호 국정감사가 되었다.
연도별로 정리하면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하나의 흐름으로 명확해진다.
2008년
- 청와대는 국민권익위로 하여금 선박연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리게 한다.
2010년
- 예금보험공사는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유병언의 공적자금 채무 140억원을 탕감해준다.
2012년
- 산업은행은 실물평가도, 탁상평가도 하지 않고 청해진해운에 세월호 수입대금 80억원을 빌려준다. 평가서는 사후에 꾸민다.
2013년
- 산업은행은 세월호 불법증축에 쓰일 20억원을 추가로 빌려준다. 불법증축 이후 첫 시험운항에 국정원 직원이 동승한다.
2014년
- 세월호 사건이 나자 국정원에 보고했는데, 국정원은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다.
- 해난사고 때 국정원에 보고하는 배는 세월호가 유일하다.
- 침몰한 세월호에서 건져낸 노트북에서 국정원 지적사항 파일이 나왔다.
수입이 불가능했던 일본의 낡은 배가 한국의 전폭적인 제도 개선과 금전 지원으로 한국으로 들어와 세월호로 둔갑했고, 불법증축 불법운행에 어떠한 제재도 없었으며, 국정원의 보안통제하에 있다가 침몰사고가 났는데 초동대처를 못해 304명의 억울한 희생자가 났다...?
세월호를 들여올 때는 정부 각 기관이 나섰는데, 정작 사고가 나자 모든 부처가 나몰라라 하는 형국 아닌가!
상식이 통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제대로 된 대한민국을 만들려면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최소한의, 정말 최소한의 필요사항이다.
◯이상규 위원
그냥 한눈에 봐도 상당히 녹이 슬어 있지요?
◯국민권익위원장 이성보
예, 그렇게 보입니다.
◯이상규 위원
이게 바로 3월 달에 세월호를 들여오기 직전 1월 30일에 찍은 세월호 제너레이터입니다. 얼마나 노후돼 있습니까? 18년 된 고물을 들여왔습니다. 권익위에서 그 TF팀의 활동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입니다.
저것을 도색하면 이렇게 보입니다.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요? 이렇게 포장하는 것을 도와준 것입니다.
이것은 문제가 된 램프인데요. 이 램프로부터 어마어마한 물이 들어와서 결국은 세월호가 침수되고 기울었지요. 이 녹슨 것하며, 이 끝 부분의 어떤 부분은 쇠가 다 떨어질 정도로 이런 상태였습니다.
제가 이후 국감에서 하나하나 밝히겠지만 TF팀에서, 권익위에서 선령을 30년으로 연장하는 안을 제출하고 그것이 통과된 이후에 정부기관에서 유병언 빚을 140억을 탕감해 줍니다. 그러고 나서 세월호가 아직 일본에 있는 상태에서 역시 국가기관이 80억을 대출해 줘서―감정평가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불법 증축이 이루어집니다.
이 모든 과정이 권익위, 예금보험공사, 산업은행, 전부 다 국가기관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입니다. 그 첫 시발이 바로 권익위였다는 것이지요.
책임감 느끼십니까?
◯국민권익위원장 이성보
세월호를 특별히 저희가 의식해서 한 것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연결해서 말씀하시니까……
◯이상규 위원
향후 제도개선 해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국민권익위원장 이성보
아까 오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서 저희들이 제도개선 권고를 할 때 그 부분을 고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상규 위원
당시 TF팀장 배문규 팀장님이 지금 증인으로 나와 있습니다.
배문규 증인에게 질의하겠습니다.
당시 제도개선 전체 TF팀을 총괄하신 것이지요?
◯증인 배문규
총괄이라면 좀 약간 어폐가 있고요. 사실 그 당시, 4월 달에 시작을 해 가지고, TF 하나로 시작해서 5월 초쯤에 TF를 또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상규 위원
그래서 2개가 움직였지요?
◯증인 배문규
우리나라에 행정규칙이 1만 개 정도 있는데 그것을 개선 작업을 하기 위해서 TF를 하나를 하다 보니까 모자라서 또 하나를 만들어 가지고 처음에 시작이 국토해양부 관련 행정규칙을 개선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워낙 많다 보니까 국토․건설과 해양․해경 쪽으로 좀 나누어서 했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분야는 바로 국토하고 건설 쪽입니다.
◯이상규 위원
그래서 그렇게 많은 규제완화를 하기 위해서 TF팀이 구성이 됐는데 이게 청와대 민원제도개선관실의 지시에 의해서 진행된 거였지요?
◯증인 배문규
글쎄요, 그 당시 저는 법령제도개선단이라고 하는 부서의, 국 단위 부서의 무보직 서기관으로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단장님께서 새 정부 출범 이후에, 2008년도에 행정규칙 개선 작업을 위한 TF를 한번 구성해서 운영해 봐라 그래서 그때 그 명을 받고 구성에 착수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고 그 이면적 배경에 대한 상황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는 좀 부적절한 것 같습니다.
◯이상규 위원
그러면 청와대 민원제도개선관실에 보고는 몇 번이나 했습니까?
◯증인 배문규
보고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국토해양부 관련 사건 모두 총 94건을 국무회의에 보고를 했는데 94건이 모두 한꺼번에 개선작업이 이루어진 후에 가서 협의하고 설명드린 게 아니라 한 20건씩 모이면 그때 가서, 중간중간마다 가서 협의하고 설명드리고 그렇게 해서 94건이 완결된 다음 8월 초쯤에 국무회의에 보고를 하게 된 겁니다.
◯이상규 위원
그러니까 청와대에 여러 차례 가서 보고하고 같이 검토했다는 얘기지요, 그렇지요?
◯증인 배문규
예, 같이 협의를 하고 설명을 드린 사항입니다.
◯이상규 위원
증인께서 저희가 이것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희는 그냥 청와대 민정수석실인지 어디인지 그렇게 알고 질문을 했더니 정확하게는 민원제도개선관실이고, 민원제도개선관실에서 오퍼가 있었고 거기서 여러 번 중간보고가 있었다고 하는 것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도 지금 같은 취지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저희가 볼 때는 굉장히 유감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권익위가 스스로 나서서 그런 일을 할 리가 저희들은 없다고 봤는데 역시 청와대의 연관성 속에서, 그 보고 및 검토지시 속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그 상황을 계속 진상규명 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보고를 받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이상목 제도개선관 맞습니까, 청와대?
◯증인 배문규
당시 아마 이상목 민원제도개선 비서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규 위원
그리고 그때 조금 전에 얘기하신 개선단장이 청와대하고 계속 또 접촉을 했었지요?
◯증인 배문규
예, 구체적으로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서 협의를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공식적으로 중간중간 가서 보고드리고 협의드릴 때는 같이 가서 보고도 드리고 설명도 드리고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