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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롬 May 03. 2020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립니다.

코로나19라는 태풍 속에서

나흘째 집에만 있다 보니 지루함과 답답함이 또 한 차례 몰려옵니다. 책을 좀 읽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사이 새로 올라온 영상이 없을까 수차례 유튜브에 접속하고, 카톡을 보낼 친구들을 찾아 스크롤을 움직여 봅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격리 생활은 내 목소조차 낯설게 만듭니다. 그래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외로움과 지루함, 그리고 답답함 뿐이라는 사실에 감사하게 됩니다. 동시에 코로나19로 인해 끝없는 불안과 싸우는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저는 특히 구직자에 마음이 쓰입니다. 대 대학생일 때는 대학생만 보이고, 임신을 하면 임산부만 보이고, 아이가 생기면 아이만 보인다고 하는데 직장 생활을 한 지 2년 반이 된 저는 여전히 취업준비생이 보입니다.


여느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취업이 참 어려웠습니다. 수능은 정답이 있었고, 대학의 중간기말은 범위가 있었는데, 취업은 정답도 범위도 없는 광활한 세계임과 동시에 바늘구멍을 먼저 뚫어야 하는 열한 시합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찾겠다며 이런저런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 방향 정하지 못한 저 같은 사람에게 취업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명문대를 4점대 학점으로 졸업하고 만점에 가까운 토익 성적, 그리고 몇몇 대내외 활동 경험과 자격증이 있다고 기업에서 얼씨구나 데려가는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구직 과정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모르는 것 투성이었습니다. 12년의 긴 정답 찾기를 마치고 대학에 와서 드디어 생각하는 연습에 좀 익숙해졌더니 기업들은 필기시험이라는 것을 통해 다시 정답을 찾아내라 했습니다. 어쩌다 한 번 합격해도 왜 합격했는지 몰랐고, 수차례 불합격해도 왜 불합격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긴 구직 기간을 거치면서 점점 더 길을 잃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제게 한 교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태풍이 왔으면 지나갈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요?


교수님은 IMF 환위기 무렵 대학을 졸업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때, 교수님은 대학원 진학을 결심합니다. 교수님은 소위 말하는 금수저도 아니었고, 당시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하면 흔하거나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부 공부를 하며 조금 더 알아가고 싶은 분야도 있었고, 태풍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학문에 정진 교수님은 말 그대로 교수님이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취업난이라는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아니 조금이라도 잠잠해질 때까지 내공을 쌓은 저는 금세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라는 해피엔딩이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고배를 마셨고, 결국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년여의 회사 생활 끝에 10개월여의 구직 기간을 다시 거쳐 지금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돌이켜보 그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던 터널을 빠져나오는 데 도움을 준 여러 빛줄기 중 하나는 교수님의 심심한 위로이자 조언이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어려움이 쉬이 해결되지 않을 때 교수님을 떠올리며 아직 때가 아닌가 보다 생각합니다. 때로는 잠시 쉬어 가기도 하지만 그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뭐라도 해보려 노력합니다. 당장에는 전혀 도움도, 쓸모도 없어 보이는 무언가라도요.


그러잖아도 꽁꽁 얼어 있던 취업 시장에 코로나19라는 태풍까지 맞은 구직자 분들의 막막함과 불안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지만, 수년 동안 제게 힘이 되어 주었던 교수님의 말씀이 당신에게도 한 줌의 온기가 되어 기를 진심으로 기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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