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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롬 May 09. 2020

우리 한 때 정말 친했는데

씁쓸함을 밀어내고 만족감을 채웁니다

카톡 생일 알람에 이전 회사에서 친하게 지냈던 대리님이 뜬다.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생일 축하 메시지 보내는 게 뭐라고 고민까지 하냐는 생각에 자판을 두드린다. 그러나 짧은 대화를 마치고 이내 씁쓸한 감정이 몰려온다.


축하해줘서 고맙다는 살가운 인사, 건강 조심하라는 따뜻한 당부, 그리고 웃는 이모티콘에 주목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날씨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주고받을 법한 의미가 담기지 않은 문장들과 우리의 대화에 큰 흥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길고 긴 답장의 간격에 시선이 더 머물러버렸다.

        

대리님을 야속하게 느낀 것은 아니다. 정말로. 한 때 친했던 사람들도 자주 보지 않으면 소원해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서 사람이 아닌 상황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어린 시절 사람에 한 번 크게 데인 이후로 나는 사람을 사귀는 게 줄곧 어려웠다. 나만 손해라는 것을 알아도 마음이 닫혀버렸다. 그 어려운 걸 구태여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인간관계가 넓지 않은 어른으로 자랐다.

   

어학연수를 할 때였다. 한국인은 어학연수라 하면 으레 반년이나 일 년을 기본 단위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 듯 하지만, 내가 만난 유럽과 남미 학생들은 그렇지 않았다. 2~4주 단위로 오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줄리아도 그런 학생이었다. 친한 친구들 중에 아시아인들이 있던 그녀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나를 참 좋아했다. 계속 말을 걸었고, 같이 놀러 가자고 했다. 마치 앞으로도  볼 사이처럼 내게 다가오고 친해지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그 마음과 태도가 기쁘고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회의감이 들었다.

   

'4주밖에 머물지 않는 애랑 얼마나 친해져서 얼마나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까? 나한테 4주는 누군가와 친해지기엔 한참 부족한 시간인데. 친해지기 위해 어색해하다가만 헤어지는 건 아닐까? 그리고 또 친해지면 뭐. 살면서 앞으로 다신 못 만날 수도 있는데. 내가 브라질에 가는 것도, 줄리아가 한국에 오는 것도 상상이 안되는데.'


못난 생각인 거 알면서도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말했다.


그렇지. 앞으로 살면서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지.
근데 그래서 뭐?
지금 교감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친구가 되고 친하게 지낼 충분한 이유라고 생각해.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씁쓸한 감정을 밀어내 본다. 친한 동료에서 그냥 지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속상해 하기보다 함께여서 즐거웠던 시간들-시원한 커피 한 잔 들고 산책하던 점심시간, 공공의 적을 함께 욕하며 울분을 삭이던 일, 회사 앞 맛집으로 달려가던 야근하는 날-을 복기해본다. 그렇다. 그때 함께 웃었고 즐거웠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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