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2-9
중국에서 사업을 할 때였다. 나는 그때 투자가 필요해서 한창 투자처를 알아보며 발로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만난 한 투자자는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은 왜 돈을 벌고 싶은가.”
그리고 나의 대답은 모두 1차원적인 것들뿐이었다. 사업을 확장해서 더 큰 사업장에서 제품을 널리 널리 알리고 싶다거나 나를 믿고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결과를 내보이겠다거나. 그러나 이 답은 정확하게 틀렸다는 답으로 돌아왔다.
“당신은 돈에 대한 자세가 틀렸습니다. 돈도 인격입니다. 상품보다도, 그 상품을 만드는 사람이 어떤 가치로 가고 있는지가 먼저입니다.”
나는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것만 같이 얼얼한 기분이 되어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돈을 인격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돈은 그저 돈일뿐, 그 어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역시 없다. 돈에 그 어떤 것의 의미들을 부여한 적, 없다.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들 끝에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돈을 왜 벌까.’
‘나는 왜 돈이 벌고 싶을까. 그것도 많이.’
‘나는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일까.’
물론 좋은 집에 좋은 차에... 여유롭고 한가롭게 여행도 좀 다니고. 이런 것들도 좋지만 나에게는 정작 돈에 대한 본질 같은 게 없다는 게 깨달아졌다. 서울까지 와서 돈을 버는 목적. 고향에서도 벌 수 있는 그 돈, 어쩌면 고향에 있었더라면 여기에서만큼 외롭고 힘들게 돈을 벌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굳이 왜 나는 여기, 서울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었을까? 단순히 남들보다 잘 살고 다른 이들보다 잘 먹고 누구보다 떵떵거리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런 무수한 물음에도 나는 정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만, 돈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달라졌다고나 할까?
사업을 하다 보면 영업을 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긴다. 그런데 나의 영업 철칙에는 ‘술 영업은 하지 않는다.’는 항목이 있다. 술 대신 나는 ‘밥으로’ 영업을 한다. 밥은 참 좋은 영업 재료다. 나는 세상에서 밥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돈독하게 하고 정을 깊게 하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사업 상 어떤 인물을 만날 일이 있다면 경치가 좋고 조용한 음식점을 예약한다. 예를 들어 자주 가는 소고기집이 있는데 그곳에서 맛있는 밥을 먹으며 사업 이야기도 나누고 덕담도 나눈다. 그리고 따라 그 식당의 좋은 고기를 따로 주문해 상대가 헤어질 때 선물을 한다.
집에 가서 가족들과도 맛있는 한 끼를 먹으며 화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하면 사업 상대뿐 아니라 그 상대의 식구들에게까지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것도 술 영업의 1/10의 돈으로 말이다.
또 해외에서 바이어가 오면 나는 한국에 있는 유명한 술집으로 안내를 하는 대신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의 관광 코스를 짜 투어를 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일찌감치 그들이 쉴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내가 직접 그들의 관광 가이드가 되는 셈이다.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고 물질을 들이고. 해외 바이어들은 이런 나에게 정말 후한 점수를 주며 말한다.
“당신에게 정말 감동했습니다. 사실 일에 치여 번아웃이 오기 직전이었는데... 어떻게 알고 이런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겁니까?”
돈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나서부터 나에게는 이런 많은 변화들이 생겼다. 더 좋은 투자자들과 일하게 되었고 또 나를 무한 신뢰하는 사업 파트너들도 늘었다.
아주 오래전. 내게 “당신은 왜 돈을 벌려고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던 어떤 투자자의 말이, “돈도 인격입니다.”라며 일침을 놓던 그 사람의 단호한 목소리가 문득 떠오른다.
그리고 나도 지금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당신은 돈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