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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Sep 04. 2020

발렛파킹(아우디)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3-3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3. 발레파킹 (아우디)


서울에 와서 제일 쇼킹했던 알바 일중에 하나가 발레파킹((valet parking) 알바였다. 남의 차를 받아서 내가 대리로 주차를 해주는 알바였는데 운전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쉽게 할 수 없는 알바였다. 하지만 대형면허까지 갖추고 있는 나에게는 너무 꿀 알바였다.


친구의 소개로 경호업체 회사를 소개받은 적이 있는데 서울 어느 곳에 행사가 있으면 행사장에 가서경호를 해주는 일이었다. 대부분 압구정이나 청담동에서 행사가 많아서 그 동네에서 일을 제일 많이 한 기억이 난다. 근데 이 회사에서 동시에 하는 일이 있었는데, 경호 일과 더불어 발레파킹 일을 함께 해주는 일이었다. 


나는 유단자도 아니고 키도 180이 넘지 않아서 항상 경호 일은 할 수가 없었고 발레파킹 일을 도맡아서 하였다. 처음에 일을 할 때는 너무나도 신기했다. 발레파킹 일도 너무 신기했지만 많은 유명인들을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어릴 적부터 꿈꾸던 아주 비싼 외제차량도 끌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였다. 


한 번은 종합운동장에서 벤츠 행사가 있었는데 정말 수백 대의 수입차량이 줄지어 왔었고, 정말 연예인들부터 유명인들 많이 보았던 기억이 난다.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티브이에서만 보았던 분들의 차를 내가 직접 파킹을 해주는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어린 나이에 너무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항상 신기하고 좋은 일만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하루는 청담동에서 어떤 주얼리 브랜드 론칭 행사가 있었다. 발레파킹의 알바 중에 제일 힘든 건 항상 어느 장소에서도 정장을 입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날은 약간은 더운 여름이었는데 땀을 많이 흘리는 나에게 정장을 입고 일을 할려니 정말 더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건 행사 중간서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추적추적 오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가 너무 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행사장과 주차장은 왜 이렇게 거리가 먼지 차량을 한 대씩 가지고 올 때마다 비 때문에 너무 힘들었었다. 


행사가 마친 후 발렛을 맡긴 많은 분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차량을 빨리빨리 갖다 줘야 했다 비까지 오니 손님들께서 차량을 계속 가져 다 달라고 이야기하시는데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얼마나 바빴으면 경호를 맡았던 팀장님들까지도 투입을 해서 발렛일을 도와주셨다.


비는 오고 저녁이 되니 상황은 더운 나빠졌다. 두껍게 선팅된 차량을 갖다 줄 때마다 앞이 잘 보이지가 않았다. 운전을 하기 너무 어려웠고 좁은 골목에서 차량들이 다 엉켜있으니 누가 누구인지 분별을 할 수가 없었다. 연신 운전을 하다 앞에 차주 손님이 보여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어 운전을 하는 순간 뒷바퀴 쪽에서 그~~~ 윽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모든 시간이 정지가 되고 나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버리고, 그 검은 선팅 너머에 있는 차주의 눈은 보지 말아야 할 상황을 목격한 눈이 나의 목을 조메이고 있었다. 나는 직감으로 부딪혔다는 생각으로 후진기어를 넣고 다시 한번 차량을 움직였는데 또 똑같은 소리인 그~~~ 윽 오 마이 갓!! 이건 현실이 아닐 거야, 차량 너머에 차주는 나에게 연신 손을 흔들며 멈추라는 사인을 계속 보냈었고, 뒤 백미러를 보니 팀장님께서 우산도 쓰지 않은 채로 나에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파킹을 하고 차에서 내려 뒷바퀴로 달려갔는데, 오른쪽 뒷바퀴 옆 사이드가 너무 선명하게 흠집이 난 것이 아닌가, 인도에 박혀있는 돌하르방 같이 무릎 높이의 진입 차단 돌부리에 차가 부딪힌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래서 연식 차주에게 죄송하다고 계속 인사를 하였고, 빗속에서 팀장님께도 계속 죄송하다고만 인사드렸다. 


그 차는 아우디 a6였는데, 어두운 빗속에서도 너무 선명하게 보여서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지러운 시간들이 지나고 팀장님께서 따로 불러서 차주가 비가 와서 집으로 갔지만 보험이 안될 수도 있다는 말에 여린 마음에 나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 왔었다. 하루에 5만 원 남짓 벌려고 나간 알바에서 순식간에 몇백만 원 몇천만 원을 물어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정말 너무 무서웠다. 


집으로 가는 길에 계속 하나님 아버지 도와달라고 기도했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나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맨날 맨날 팀장님께 아침마다 전화를 해서 어떻게 됐냐고 물어봤고 팀장님도 내가 너무 불쌍했는지 기다려봐라 내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이야기를 잘해볼게라고 말씀해주셨다. 


그 후 2주 후에 다행히도 200만 원 정도 견적이 나왔다고 했는데, 책임비? 같은 걸로 나는 8만 원만 내고 끝날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어넘길 수 있지만 그때는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너무나도 나에게 힘들고, 슬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알바가 너무 좋았던 건 행사 하나에 5만 원 정도 벌 수 있는데 하루에 행사가 3번이 있으면 다 따로 책정을 해주어서 15만 원을 벌 수 있는 아주 좋은 알바였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나는 그 이후로 아우디 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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