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다시 보기 Re-Play Seoul 프로젝트 첫 번째 [노량진] 편
노량진 가구거리
노량진 수산시장을 지나 길의 끝이 보일 때 즈음 가구 상점이 모여 있는 거리가 보인다. 문득 궁금해졌다. "왜 여기에 가구거리가 형성되어 있는 거지?" 가구거리가 형성되어 있는 삼거리 주변을 살펴보면 사실상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어 보이는 단서는 없다. 혹시 고시촌이 생기면서 함께 형성된 건가 했다. 부피가 큰 가구는 아니더라도 고시텔이나 고시원에 기본적으로 책상과 침대는 기본 옵션으로 있으니깐 저렴한 가격으로 대량 공급이 가능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았다. 혹은 고시촌을 거쳐 더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꽤나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주택가가 나오는데 그 영향을 받아서 일까 싶기도 하고. 이런저런 추측을 해본다. 그렇게 며칠을 또 그렇게 한 달을 온라인으로 리서치하고 출, 퇴근길에 오며 가며 가구거리를 지속적으로 관찰했지만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서울의 다른 가구거리는 형성된 원인에 대해서 구체적이진 않더라도 짧게나마 설명이 되어 있었는데, 노량진의 가구거리에 대해서는 '있다'라는 존재 여부만 확인될 정도고 그 이유나 배경에 대해선 전혀 나와 있지 않았다.
1) 아현동 가구거리
: 1945년 가구공장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공장으로 찾아오는 소비자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가게들이 들어오게 되면서 형성
2) 사당동 가구거리
: 물물교환센터로 시작, 1990년대 가구업체 증가하면서 형성
"미국 이민이 활발했던 70~80년대에 이민 가는 가정에서 매각한 중고가구를 수리해 팔거나 다른 가구와 교환했던 물물교환시장으로 인기를 끌었었다."
[출처: 중앙일보] 1996년 9월 10일 자, <생활 포인트> 사당동 가구거리, https://url.kr/IMEwbo
3) 황학동 가구골목(왕십리 가구거리)
: 물물교환시장으로 시작, 60년대 초반 목재상들이 들어서면서 시작.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가구골목 대부분은 시장에 잇댄 양곡상들과 흑염소와 개고기 고깃간, 그리고 붉은 등의 야릇한 술집이 있던 곳이다. 가구점이라고는 헌 문짝이며 창틀 같은 중고 건축자재, 그리고 목재상들이 간간이 있었다. 언제부터 가구점들이 들어섰냐는 물음에 상인은 “이제는 저런 양곡상들이 잘 안 된다. 몇 집 남지 않고 다 나갔고, 술집들이 없어진 지도 오래됐다. 요새 누가 니나노 대폿집에서 술 마시나? 시대가 바뀐 탓이다”라고 했다. 아마도 1990년대 후반부터 건축자재 취급상들이 주방가구도 취급하면서 가구상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 지금처럼 됐다는 이야기다.
[출처: 2019년 10월 14일 자 주간경향, https://url.kr/kRsPWZ]
이렇게 뭔가 나오질 않는 거 보면 진짜 딱히 특별한 이유가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상권이라는 것이 이유 없이 형성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결국 가게 중 한 군데를 선택, 문을 열고 들어 갔다.
A 상점 사장님과 인터뷰
Q. 안녕하세요. 뭐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될까요? 여기 보니까 이렇게 쭉 가구 파는 가게들이 모여서 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긴 언제부터 생겼나요?
A. 한 40년 넘었지. 오래되었어.
Q. 저기 노량진 수산시장 쪽으로 나무 심겨 있는 곳 거기에는 예전에 작은 공업사들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혹시 맞나요?
A. 아니~ 거기도 다 가구 파는 곳이었어. 지금은 다들 빠져나가서 없어서 그렇지.
Q. 근데, 왜 여기에 이렇게 가구거리가 형성되었나요? 이유가 있을까요?
A. 음... 그냥 가구점들이 모이다 보니깐 그렇지.
나는 '왜, 어떤 연유로 여기에 가구거리가 형성되게 된 것인지?'가 궁금했었는데 그 답을 얻지 못했다. 다만 가구거리가 형성된지는 40년이 넘었다, 즉 1980년대쯤에 가구점들이 생겼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다.
"아현동 가구타운은 대중적인 중-저가 메이커 가구대리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 세일 기간이 아닌 평시에도 평균 20~25%의 할인율을 적용해 파는 곳이 대부분이다. 아현동과 비슷한 곳이 노량진 가구타운이다. 노량진역 주변에 40~50여 개의 가구판매점이 밀집해 있다."
- 1995년 6월 15일 자, 조선일보-
봉천동을 내려와 장승백이를 지나고 노량진으로 향하는 내리막의 직선 길에 들어서면 익숙한 엑스자 구도의 풍경이 나타난다. 좌우로 낮은 건물들이 노량진역(정확하게는 가구를 파는 상점들이 있는 곳-나의 기억 사진에는 초콜릿을 매일 나누어 주던, 미국 선교재단이 운영하는 탁아소 자리)을 향하여 내리 뻗쳐 있는데 놀랍게도 이 익숙한 구도의 거리 풍경에는 소실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 도서 <기억을 잃어버린 도시>, 김진송
건설 상가아파트
노량진 수산시장 맞은편엔 '건설 상가아파트'가 있다. 상가아파트로만 인식하면 그저 보통의 아파트와는 별반 다를 바 없는데 '건설'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왠지 모르게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다. 건물 사용승인일자는 1980년대인데, 그 당시에 노량진 주변에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은 흔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아파트'라는 주거형태도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한창 지어지고 있을 시기였을텐데 분명 그냥 아파트는 아니었을 것 같은 예감이다.
가까운 횡단보도 앞에는 동작구의 동작 충효길을 안내하는 지도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주민센터, 학교, 구청, 아파트, 전화국(KT) 등의 생활기반 시설과 유한양행, 현대자동차서비스센터, 노량진 수신시장, 한국물산과 같은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잘 알려진 장소들이 표기되어 있다. 그 와중에 '건설 상가아파트'가 표기되어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파트라서? 학원과 시장 건물을 제하고 봤을 때 주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이기도 하다.
아파트 바로 옆에는 새 중앙약국이, 귀퉁이엔 '동작구의사회' 간판이 걸려있다. 최근에 인터넷에 게시된 글들을 보니 초기 아파트를 원룸으로 변형시켜 세를 받는 형태로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노량진 중앙시장
노량진에는 수산시장 말고도 시장이 또 있다. 신노량진시장과 노량진 중앙시장. 다만 안타깝게도 두 시장은 세월의 변화를 맞아 존재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시장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노량진 중앙시장은 유동인구가 많은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시촌'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묻혀 사람들의 시선에 닿을 듯 말 듯 보였다.
'노량진 중앙시장'이 아닌 '작은 시장'이라는 간판이 설치되어 있는 데다가 외부에서 바라보면 옆 가게들과 비슷한 형태의 점포로 보여서 사실상 시장보다는 가게로 인식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매번 지나가면서 간판만 보다가 그 실체를 알고 싶어 더 늦기 전에 방문했다. (어느 순간 사라질 것만 같아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시장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곳을 찾았지만 때는 한참이나 늦어 버렸다. 분명 시장이었음직한 분위기는 풍기고 있지만 시장이 보이지 않았다. 혼자 방황하고 있는 사이, 앞쪽에 위치한 가게 사장님이
"어디 찾아왔어요?"라고 말을 건네셨다. 사실 답사를 하다 보면 곱게 보지 않는 시선들도 있어서 모른 척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왠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한번 더 돌아보고 가려는데 또 한 번 질문이 던져졌다.
A: "어디 찾아왔어요?"
B: (머뭇거리다) "여기 시장이었다고 들었는데..."
A: "아 ~ 예전에 여기 다 가게가 있고 시장이었지. 지금은 여기 두 집만 남고 없어요~"
B: "그렇군요."
남은 두 가게와 한편에 부착된 화재 발생구역을 알리는 벽보만이 노량진 중앙시장의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왜 노량진 중앙시장은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형태를 잃어가게 되었을까?
그 이유가 궁금하기만 한데, 1998년 5월 19일 자 매일경제에 재개발에 관련된 기사로 한 차례 언급된 것 말고는 노량진 중앙시장에 대한 정보도 사진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인근에 마트가 있긴 하지만 시장 생태계를 위협할 만큼의 대형마트가 아닌 소규모 동네 마트였다. 1964년도에 개설된 시장인데, 노량진 수산시장의 이목에 가려 시장의 활성화 시기나 여건을 가지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장의 규모나 범위가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도 모르겠고, 네이버 & 카카오 지도에는 같은 시장임에도 각각 다르게 등록 &표기되어 있어서 더 혼란스러웠다.
노량진의 시장을 검색해보면 수산시장에 관련된 정보가 대부분이다. 노량진 하면 고시촌!이라는 자동 수식어가 붙고 노량진의 시장하면 수산시장!이라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존재한다. 그 과정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미쳐 알아채기도 전에 사라지거나 사라질 시간 위에 놓여 있는 수많은 공간들이 있다. 앞서 이야기했던 가구거리 건너편에 한눈에 봐도 오래돼 보이던 주택이 있었다. 노량진의 과거를 혹은 현재를 읽을 수 있는 단서로 작용할 수 있는 증거가 될 수도 있었을 이 주택은 2020년 5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장소의 상실과 생성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성격이 부여되는 도시.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제 노량진을 좀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노량진은 재개발로 형성될 뉴타운 진행과 노량진 수산시장과 수협의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같은 시간 선상에서 다른 성격의 행보가 일어남에도 시선은 여전히 한 지점에만 머물러 있으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알아차릴 수가 없다. 고시촌과 수산시장 외에도 어떤 역사가 존재했고, 현재는 어떤 역사가 쌓이고 있으며, 미래엔 어떤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성찰, 고민, 탐구가 이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