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라질 곳, 영도시장을 기록하다.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by 이경민


여기 곧 사라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장이 있다. 300개나 되는 가게가 있었을 만큼 번성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쇠락했다. 이곳을 가득 매우던 가게는 대부분 이전했고, 현재는 소수 가게들만 남아 있다. 텅 빈 시장 안은 고요함만이 감돌았다. 몇 년 전부터 구청 대체 부지로 논의가 되었고, 행정복합타운 부지로 확정이 났다.

"한창 잘 될 때는 여기 앉을 새가 없었어.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맞춤 정장을 해다 입었는데, 하루에도 몇 명씩은 왔으니까. 단골도 많았지. 시장이 제일 번성했을 때는 가게가 300개는 넘었을 거야. 지금은 30개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장사가 가능했고, 가끔 풍물꾼들이 찾아올 때면 부침개와 막걸리를 상인 손님 할 것 없이 나눠먹기도 했다”라고 회상했다. 돈도 많이 벌었다. 시장이 세워질 때부터 함께 했다는 이승만(80)씨는 “70년대 채소 장사할 때는 하루에 40만 원어치를 팔아본 적도 있다”라고 했다. 당시 짜장면 가격은 100원 남짓. 이 씨는 “그 돈으로 애 셋을 대학까지 보냈으니 얼마나 고마운 시장이냐”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2000년대 들어 시장은 개발 바람과 대형마트 범람에 맥없이 스러지기 시작했다. 상인들이 하나 둘 빠져나간다 싶더니, 5년 전부터 들려온 행정타운 건립 소식에 현재 시장 공실률은 72%에 달한다. 현재 남아 있는 상인은 대부분 70대 이상이다. “돈 없는 사람들만 여기 남아 있는 거지. 월세 12만 원 내고 장사하던 늙은이들이 다른 데서 어떻게 먹고살겠어요.”

동작구는 신청사 1층에 영도시장 상인들을 위한 상가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혹여 늘어날 월세 부담에 당장 하루 벌어먹고사는 처지라 꿈같은 얘기다.

[내용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07170494349934 ]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 '번성함'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아무리 시장이었다고 한들 '한 줄이라도 뉴스 기사에 실리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기록을 찾아 헤맸다. '영도시장'이라고 언급은 되어 있지만 영도시장 자체를 설명하거나 하는 글은 없었다. 당시로써는 나름 규모 있는 시장이었음에도 사진 자료 하나 없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과거 사진 자료를 찾다 보면 예상치 못하게 오래된 사진이 나올 때도 있는데, 그중에 영도시장과 연관된 것은 없었다.


# 영도시장은 왜 기록의 대상이 되지 못했을까?

편의점, 마트, 백화점이 없던 시절엔 시장이 우리 삶의 여러 측면에서 큰 역할을 했고 개개인 또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으며 살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것인지, 너무 일상적인 장소여서 기록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진 것일까? 아니면

후대에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언론도 개인도 기록에 소홀했음을 느낀다.


(동시에 드는 생각: 이런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그 시절엔 기록이 없는 건 당연한 건데 괜히 '기록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사실 맞는 건지 잘 모르겠고, 혼란스럽다.)


# 나에게 시장은.

개인적으로 마트보다 시장이라는 곳을 먼저 경험했고 시장 분위기를 좋아한다. 북적북적 활기찬 느낌 - 살 것도 없는데 괜히 한번 더 들여다보고 먹어 보고 그렇게 한 바퀴만 돌고 와도 재미난 소소한 즐거움을 느꼈던 곳이었다. 나에게 시장은 일상적이면서도 특별한 장소이고, 이곳에서 보고 경험했던 것들이 과거의 추억으로써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 선택의 기준과 같은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이 드러나는 순간에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가끔 그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시장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과 경험한 사람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을지, 시장을 경험했더라도 마트, 편의점, 백화점 같은 장소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차이점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이렇게 하나씩 놓고 살피다 보니 '시장'을 기록하는 것이 의미가 없진 않은 것 같다.


# 그렇다면, 시장에서의 경험은 우리의 삶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칠까?

몇 명의 사람들에게 "당신에게 시장은 어떤 장소였나요?"라고 물었다.


1) 부정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사지 못하게 하거나 상품의 상태가 좋지 않다거나 주차문제로 일방적으로 욕을 먹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서 시장에 가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본인은 아직까지 이런 경우는 경험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래 기사글을 보면 이런 경우가 분명 존재한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 상인들이 여전히 많아요. 이 분들이 손님들한테 덤으로 주는 것도 많거든요. 근데 문제는 정작 손님이 원하는 물건의 내용물이 불량인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면 싱싱한 조개인 줄 알고 샀는데 안 보이는 중간 것들은 오래돼서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거든요. 손님들은 집에 가서 열어보고 후회하죠. 인심 쓰고 욕먹는 경우입니다. 이럴 땐 손님 입장에서 답이 없어요. 다시 가져와서 바꿔달라고 사정해도 절대 안 바꿔줘요. 노인들 고집이 좀 셉니까? 게다가 일부러 오래된 것들 섞어서 넣는 상인들도 있거든요. 그런 이유로 마트로 발길을 돌리기도 하는 거예요. 협의 끝에 시장의 젊은 상인들이 힘을 모아 마트처럼 물건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팔기로 했어요."

출처 : 위클리 서울(http://www.weeklyseoul.net)

바로 이점이 시장의 존폐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 같다. 소비자에게 100% 맞출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소비자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하는 것을 원하는지를 분석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곳과 기존 방식을 고수하며 더 나아지기보다는 원래의 관습대로 불통하며 유지하려는 곳과는 분명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그 차이는 그 장소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더욱더 잘 알 테고, 당연히 부정적 경험을 안겨주는 곳보다는 긍정적 경험을 전달해주는 곳을 선택할 것이다.


2) 긍정적 경험

반면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좋은 추억과 함께 했던 사람과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근거 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도 엄마와 함께 장 보러 가는 길이 즐거웠기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여나 어색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 함께 갔더라면 '시장'이라는 장소가 다르게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시장에 가면 뭐가 있을까? 무엇을 사게 될지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게 될지 모르지만, 그냥 시장 가는 것만으로도 벌써 두근두근한 느낌. 할머니랑 구루마를 졸졸 끌고 시장에 나선다. 야채는 요집, 계란은 저 집, 과일은 저 아자씨네.

수십 년 이 길을 다녀온 할매에게 장보는 일은 마치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 같다. 이 사람은 신선한 물건을 갖다 놔, 저짝 집은 네시쯤 되면 많이 깎아줘, 아이고 야채 집 아지매는 어제 엄마가 아프다고 한동안 못 나온다캤다. 가게에 들르면 또 오늘의 소식을 한 바구니 듣고 온다. 속속들이 사정을 알고 있는 가게들을 지나면 어느새 구루마가 한가득이다.

“할매, 남은 돈 좀 있나?”

할매의 장은 끝났지만, 이제 내 장은 시작이다. 장보고 남은 돈으로 그 날의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1) 떡볶이 2)방방 3)목마 4) 둘리 비디오 중 택 2를 들른다. 할매가 기분 좋은 날에는 가끔 떡볶이를 먹고, 목마를 타고, 집 오는 길에 백조 공주 비디오를 빌려오기도 한다. 대-박.

흡족한 마음으로 할매 구루마를 돌돌돌 끌고 집에 간다.

<충정로 사는 K씨의 시장이야기>

위의 사례들이 시장에서의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경험이 '우리의 삶과 별개가 아니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 식. 주. 에서 의. 식. 이 해결 가능함에 따라 시장의 장소 경험이 중요하고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충분히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문득 개인적으로 시장에서의 경험이 긍정적이어야만 한다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지 되묻게 된다. 언론에서도 시장에 대해서 설명할 때 '활기 있는', '사람 냄새나는', '정 많은' 이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써만 등장한다. 마치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면 안 될 것처럼 말이다. 사람마다 소비 방식이나 효율성을 따지는 정도가 다르고, 시장이라는 장소(공간)를 받아들이는 정도, 경험도 다른데 왜 꼭 하나의 관점으로만 시장을 해석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것도 한번 되물어 봐야 할 것 같다.



# 존재의 부각은 상실에서부터 시작된다.

애초에 영도시장을 알고 기록한 건 아니었다. 어느 날과 다름없이 답사를 하고 있었고,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장소였다. 시장 내부에 걸린 분노 가득한 현수막도 한몫을 했다. 시장은 2층 높이의 건물로 지어져 있었고, 크게 'ㄷ'자 형태를 하고 있었다. 시장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입/출구가 5개가 있을 만큼 사방으로 뚫려 있었다. 그에 비해 이곳을 지나는 이들의 수는 적었다. 내부의 가게는 몇 개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덕에 황량한 느낌마저 들었고, 천장에 매달려 있는 현수막이 더 돋보였다. 붉은색 바탕에 큰 글씨, 마치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들어달라 소리치듯 매달려 있었다. 그래서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발길이 닿았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현수막에 적힌 말들이 무슨 상황을 의미하는 것인지, 시장을 다녀와서 찾아보았다.


노량진동에 자리 잡은 구 청사는 1980년 준공돼 40년이 되었고, 몇몇 부서들은 다른 건물에 흩어져서 업무가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에 행정복합타운이 들어설 부지로 영도시장부지가 선정되었다. 행정기능뿐만 아니라 상업기능도 함께 가져가는 사업이라 시장상인들도 해당 건물에서 계속 장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여지를 두었다. 이러저러한 상황들을 놓고 보니 번성했을 때의 영도시장보다 사라질 상황에 놓인 지금에서야 존재가 드러나고 주목받기 시작한 것처럼 느껴진다. 평소에는 별생각 없다가 사라진다고 하니 더 들여다보는 아이러니함은 우리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다시금 물음을 던지게 만들어준다.



# 누군가의 삶과 기억 속에 남은 영도시장, 안녕을 고하다.

부정적 경험과 긍정적 경험이 공존하는 시장이기에 어쩌면 더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 마냥 좋기만 하거나 마냥 슬프기만 한 건 아니니깐 말이다. 어쩌면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는 많은 상인분들이 삶의 굴곡을 정면으로 부딪히며 쌓아온 시간들이 한편으로는 격하게 한편으로는 소중하게 표현되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소비자들에게 했던 잘못된 행동들은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함은 마땅하다.


이 처럼 사연이 많은 시장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이상 우리의 삶에서 존재하기 어려워졌다. 소비의 유통구조와 소비행태가 달라졌고, 온라인 시장이 존재하면서부터 오프라인 시장이 예전보다 힘을 잃게 된 것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상인들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랐고, 시장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도 생각이 달랐으니 어찌 보면 현재의 상황이 급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찾아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부 사정을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니 확언은 피하는 것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영도시장 내에 있던 가게들이 전부 다 빠져나가고, 이제 딱 두 곳만 남았다. 마지막 한 곳의 가게가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 지켜보기로 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과 기억 속에 스며든 영도시장의 이야기를 전하며, 안녕을 고해 본다.



참기름집 사장님과 짧은 대화에서 알 수 있었던 영도 시간의 풍경들


우리가 경험하는 삶의 공간은 지속적이지도, 무한하지도, 동질적이지도, 추상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어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의 시, 공간의 경과를 측정하지도, 생각하지도 않고 지나간다. 우리는 막연하게 장소의 균열, 틈, 마찰의 지점을 알 뿐이다. 페렉은 장소를 (재)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에 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더 간단히 말하자면 장소를 읽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명백함이 아니라 불명료함의 형식, 즉 실명 혹은 마비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과 장소에 대한 페렉의 관점은 ‘일상성의 사회학’의 근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도는 우리가 살면서 너무 익숙해서 보지 못하는 것, 바로 곁에 있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 너무나 일상적인 것, 보통보다 못한 것에 대한 관심과 묘사라고 정리했다.

즉 일상 속에서 일상에 의해 눈멀어가는 우리의 맹목성을 고발하는 것이다. 모든 판단과 주장이 배제된 단순한 장소와 사물들의 묘사에도 어쩌면 우리의 일상과 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놀라운 증언이 담겨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페렉은 자신이 일상의 평범한 사물들을 묘사하려고 애쓰는 것은, 망각으로부터 과거를 구해내고 그것이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p46
<장소 경험과 로컬 정체성,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