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떠날 수 있는 여행에 대해 묻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고 팬데믹이 선언된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마스크를 끼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처음보다는 줄어들었다.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도 의식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하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져 '이렇게 익숙해지는구나' 하면서도 문득,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곤 한다. 햇빛이 쨍쨍해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날이면 공기를 흠뻑 들여 마셔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함에 슬퍼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여전히 코로나 19는 진행 중이지만 발생 초창기 때보다는 안정되어 보인다. 그때의 상황들을 곰곰이 떠올려 보면 여러모로 혼란의 상태였다. 바이러스로 인한 호흡기 증후군이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003년 사스, 2012년과 2015년엔 메르스가 있었으나 확산율이 낮았다. 하지만 코로나 19의 경우는 달랐다. 확산의 속도가 빨랐고, 당장 해결한 방안이 없었기에 사망자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각국이 처한 상황에서 각자의 방식과 대안으로 위기를 대처하는 수밖에 없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대·외적인 상황과는 달리 나의 일상생활은 변함없이 보통의 나날들이었다. 코로나와 연관하여 직접적인 관계에 맞물려 있는 분야의 종사자들은 재택근무로 전환하여 업무를 보곤 했지만 나는 변함없이 사무실로 출근했다. 지인과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개인 취미활동이나 여가활동에 받는 영향도 거의 없었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나의 경우 평소에도 잘 알지 못하는 서울의 동네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고 있었기에 아쉬울 것이 별로 없었다. 기본적인 여행에 대한 욕구를 이 과정을 통해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출 · 퇴근길에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감소했음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또 이동에 제한이 생기다 보니 동네에 머무는 사람들 또한 많아졌다. 한산했던 동네 공원과 놀이터에는 코로나 이전보다 많은 부모님과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여유가 느껴지던 동네 카페나 거리에도 사람들로 밀도가 높아졌음을 알 수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꼭 거리상으로 먼, 낯선 장소로 떠나야만 여행인 것일까? 우리가 일상을 보내는 장소가 여행지가 될 순 없는 것일까? 평소에 늘 이 부분에 대해서 짚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현재의 코로나 19 상황은 우리에게 지금, 당장 갈 수 없는 여행 대신 지금, 이 순간에 가능한 여행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떠날 수 있는 여행은 무엇일까?
어떤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어떤 마음 가짐으로 떠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당장에는 얻을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떠나온 여행을 하나씩 짚어 본다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와 동시에 현재의 여행에 대한 맥락을 이어 보고자 한다.
서울에 상경한지도 어느새 8년이 되었다.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느라 서울 살다 온 지인들을 붙잡고 경험담을 들었고 고민을 나눈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이렇게 빠르다. 상경을 하고 처음 자리를 잡은 동네는 신림동이었다. 적응하느라 정신없던 1년, 새로운 도전을 하느라 더 정신없었던 2년... 그렇게 세월이 무색하게도 개인적인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았고,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라 방황하던 중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TV를 보는 것 밖에 없었다. 때 마침 시작된 뉴스, 반갑지 않은 소식 하나가 나를 끌어당겼다.
소식을 전하는 앵커의 말 대신 부서지고 있는 건물과 울부짖는 사람들의 목소리, '역사 있는 골목'이라는 말이 내게 닿았다. 그동안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대상이 외부 상황에 의해서 철거되거나 사라진 경우를 들어본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었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해당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100% 확신은 못하지만 화면 속 등장하는 장면들과 분위기로 봤을 때 철거 과정에 있어서 다소 어려운 부분들이 존재함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당시 서울시장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갈등 상황을 잠시나마 중재시켜 보려 하는 장면이 포착되었을 땐 마치 누군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해관계를 진정성 있게 풀어 나갈 수 있었던 방법이었을지, 아니면 당장 벌어질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였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역사가 있다고 전해지는 동네도 사라지는 상황인데, 역사가 없는 보통의 동네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가능성이 높겠지? 그렇다면, 서울에 역사가 있는 동네는 어디지?' '서울의 유명 관광지와 직장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투성이었다.
질문을 던지고 나니 역사 유무를 떠나서 정작 나는 서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옥바라지 골목 철거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소식을 접하고 과정을 지켜보고 철거된 건물의 잔해가 남아 있는 현장에도 다녀와보고. 주변을 맴돌다 보니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과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서울을 알아야 했다. 따지고 보면 서울이 아닌 나의 고향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 굳이 알려고도,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몇십 년 동안 알게 모르게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던 동네가 한순간에 사라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지를 짚어보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갑자기 어느 날 영화를 보러 가거나 시장 구경을 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할 때 머릿속에 그려진 것이 있다면 그곳이 유명한 장소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이다. 역사가 있는 곳, 일상이 존재하는 곳 모두 살펴보며 그 과정에서 사라지거나 사라질 곳이 있다면 들여다보고 기록을 하기로 했다. 나의 고향에 다시 돌아가는 그날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적어도 서울에 살고 있는 동안만큼은 이곳이 나의 고향일 테니 마음껏 알아가자 생각했다. 그렇게 나의 서울 여행은 시작되었다.
서울역은 내게 가슴 벅찬 곳이다. 새로운 경험과 시각을 안겨준 곳이 서울이었고, 그 관문이 되는 첫 번째 장소이기 때문이다. 서울역을 통과하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서울스퀘어 건물 또한 나처럼 상경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서울의 대표 이미지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는 것, 서울역을 통과하는 것, 서울역을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물. 이 모든 범위의 것들이 모두 의미가 있다. 그래서 굳이 목적이 없더라도 동네 산책하듯 이곳을 찾곤 한다. 서울역 앞 광장, 버스환승센터, 연결되는 크고 작은 길, 건너편 건물들. 이것들이 내가 봐 왔던 세상이었다.
혼자서 서울여행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정보가 부족했다. 문서나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고 겉으로 드러나는 역사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과 좀 더 밀접한 이야기와 장소가 궁금했다. 이와 관련하여 연결고리를 얻을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을지 찾아보다가 우연히 '걷다 보면 서울여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서울역 일대를 도보로 돌아보는 투어였다. 코스를 훑어보았는데 잘 알려진 장소도 있었지만, 낯선 지명들이 더 많이 보였다.
회현, 중림, 충정, 청파, 효창
관광이 목적이라기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동네를 둘러보는 여행이라는 것이 원래 목적했던 나의 서울여행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 코스별로 신청하여 다녀왔다.
이미 잘 알려진 남산공원을 돌아보는 코스도 좋았지만,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코스는 내게 오랫동안 인상 깊게 남았다. '서울역 서부'라 불리는 서울역 뒷동네에서 시작하여 예술극단이 들어와 사용 중인 구) 기무사 자리,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아담한 성당,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가 다녔던 학교 교정과 기념관 등 이야기를 따라 이어지는 도보길이 그저 단순하게 투어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을 넘나 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네 꼬마 아이가 자주 들리던 슈퍼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주인아저씨의 뒤를 이어 슈퍼를 지키고 있었다. 가이드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의 시간을 상상해보았다. 일상이 역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도시 서울은 무수히 많은 시층과 이야기들이 존재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굉장히 제한적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서울의 모습 혹은 서울에 대한 이야기는 수 없이 엮여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 중 극히 일부의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역사와 미처 알지 못했고 드러나지 않았던 역사가 나란한 선상에 놓여 드러나는 순간 서로가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면, 서울역 뒤는 원래 만초천이라는 천이 흘렀으나 현재는 복개되어 볼 수 없다. 영화계에서 유명한 전창근 감독이 일을 했던 동성 영화사 스튜디오가 바로 이 서울역 뒷동네인 만리동에 있었고, 그 당시 만리동 촬영소로 불렸다. 마라토너인 손기정 선수가 다녔던 학교 건물은 기념관으로 개관하게 되었다. 남대문 시장과 가까운 서계동에는 소규모 봉제공장이 많다.
성당이 자리하는 언덕은 과거 약초재배지였다. 소설 '동의보감'에 의하면 조선 명의 허준도 이 동네에서 환자들을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했다. 역사와 전혀 별개인 것처럼 보이던 동네가 알고 보니 그 흐름을 같이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서울의 변화상을 읽는 방식으로 가져가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서울의 동, 서, 남, 북 곳곳을 다니며 마음껏 질문, 관찰, 탐구, 탐색하며 지냈다. 그러던 중에 코로나 19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