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민 Sep 07. 2021

서울여행..계속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 지속가능한 여행을 위한 고민


모두가 한 목소리로 코로나는 금방 끝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확산은 점점 거세지고 팬데믹 선언을 하고야 만다. 상황이 이러니 서울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동을 자제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2주 정도 지켜보았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다만, 횟수를 줄이고 범위를 좁히기로 했다. 밀폐된 장소를 방문하지 않고, 실내가 아닌 야외 공간 혹은 장소를 이용하되 끼니는 집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다.

     

서울여행 범위를 좁히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여행이라 함은 목적이나 이유를 불문하고, '낯선 장소로 떠나는 것'이 우선순위에 놓여 있게 되는데, 과연 물리적 장소에 변화를 주는 것이 전부일까? 하고 말이다. 물론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시야를 넓힌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 등 개인의 취향이나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최소한 '익숙한' 어떤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인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자신을 둘러싼 '물리적 장소'로 시작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고, 나는 이 지점에서 물음이 시작된 것이다. 평소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주 물었다.

     

여행을 하면서 경험해보지 못한 좀 더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것들을 보고, 느끼고, 해보면서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혼자서 혹은 함께, 익숙하면서도 아주 낯선, 걸어서 혹은 교통수단(기차, 배, 버스, 비행기)을 이용하면서 말이다. 여러 가지 방법과 시도를 통해 나라는 사람은 '물리적 장소' 보다는 '마음의 상태'에 따라 여행의 만족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외에 얻어지는 부가적인 것(경험, 시야, 정보. 외국인 친구 사귀기 등) 들이 나의 상태에 따라 영향을 줄 수 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동경하는 낯선 장소 대신 아주 평범하고 별거 아닐, 일상을 보내는 장소가 여행지가 될 순 없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과연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놓인 장소와 공간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까? 어느 날 문득 노트를 펼쳐 오늘 하루 내가 걸으며 보았던 풍경들을 그릴려고 했을 때, 정작 그 길 위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당황한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매일 지나치는 길이었는데 그동안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지점을 채울 수 있는 여행이라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이번 기회로 여행의 장소성에 대해 다시 한번 되물을 좋을 계기가 될 것 같았다. 한 때 일상을 여행하는 것이 유행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다. 그때와는 다르게 이동이 제한된 상황이라는 점에서 비교해서 볼 필요가 있을 것이고, 여전히 존재하는 지속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지속 가능한 여행을 위해

'우리가 매일 오가는 출 퇴근길도 이젠 여행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스스로가 충분히 설득이 되었고, 그렇게 여행을 하기로 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 속에서 궁금한 지점들이 생기면 핸드폰 메모장이나 노트에 키워드만 간단히 적어 두고, 힌트를 얻을 만한 자료를 조사하며 정보를 모았다.


[연관관계가 있거나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적혀 두었던 메모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목적지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몇 정거장 앞에서 내려 걸어갔다. 직접 걸으며 보는 것과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는 것에 있어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장소를 발견하기도 하고, 존재했지만 사라진 공간과 그 자리에 새로 생긴 공간도 살펴보게 되었다.


[대방역 앞쪽에 있던 미군기지 모습 / 미군기지가 사라지고 들어선 여성가족 복합공간 ‘스페이스 살림’ ]


대방역 앞에 새로 생긴 여성가족 복합 공간 ‘스페이스 살림’의 경우 출근길에 항상 지나는 위치에 있는 2020년 완공된 건물이다. 이 건물이 들어선 자리는 과거에는 청년활동 공간과 텃밭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내가 아는 정보는 딱 여기까지였고 그 이전엔 어떤 곳이었는지 찾아보다 미군기지로 사용되던 곳임을 알게 되었다. 평소엔 스치듯 지나가던 장소였는데 여행지로서 인식한 이후부터 눈여겨보게 되었고 이미 사라져 용도가 변화한 과정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또 매번 똑같은 길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로도 다녀 보고, 시간대를 달리하여 걸어보기도 했다. 시간이 더 걸리긴 해도 결국엔 모든 길은 연결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동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모르는 길을 걷다 오래된 아파트를 본 적이 있다. 1층엔 시장이 있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 특별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워낙 오래된 아파트다 보니 재건축 이슈가 있었기에 관련된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해당 아파트는 지어질 당시에도, 현재에도 흔치 않은 설계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더군다나 위성사진을 통해 위에서 바라본 아파트는 Y자 모양이었다. 이처럼 걸어보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었던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이 나에겐 여행이었다.


[‘Y’ 자 모양의 대신 아파트 건물 ]
♣ 출근길 코스 :  신길동 출발 -  대방역    -       노량진         -     노들역    -   한강대교  - 노들섬
♧ 출근길 여행코스: 홍어거리 -  스페이스  -  노량진 가구거리  -   노들 회관  -  한강대교   - 노들섬


그 덕에 나만의 출근길 여행코스도 생겨났다. 누군가에겐 지루한 출 · 퇴근길이 누군가에겐 여행코스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우리의 일상에서 별거 아닌 것처럼 존재하고 있지만, 알고 보면 이야기가 있고, 의미를 가진 것들이기에 이러한 것을 찾아내고 관계를 만들고 이어가는 과정 자체가 여행이다. 그러니 범위를 좁혀도 이동을 제한해도 지속 가능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2년 그리고 나의 여행

코로나19 발생 직후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 외에는 일상적으로 큰 변화가 없어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마스크 착용' 그 자체가 가장 큰 변화였다.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도 한정적이고, 그만큼 가까운 사람들과 저녁에 밥 한 끼 먹는 것도 힘들어졌다.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마치 시간에 쫓기듯 시계를 자주 확인해야 하고, 커피를 마시다가도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10시에 영업이 종료됩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면 자리를 급히 정리하고 서둘러 밖에 나와야 했다. 불이 꺼지고 고요한 거리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발을 동동 구르다 결국 도착한 곳은 집이었다.  


결국, 과거에 '일상적으로 하던 행위가 불가능해졌다' 사실이 코로나19 인해 찾아온 가장  변화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러기엔 아직 우리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나의 여행이 계속될  있는 이유는 일상에 스며들여 있어서가 아닐까? 길을 걷고 풍경을 감상하며 온몸의 감각을 깨워 나는 현재 가능한 여행을 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지만 보통의 나날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