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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것은 선택의 문제인가? 가치 기준의 문제인가?

by 이경민

새로 생기는 장소는 열성적으로 찾아가고 사진을 찍지만 소멸하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잘 남기고, 의미를 두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물론 최근 들어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고 그것을 프로젝트화 시켜서 전시도 하고, 영상도 만들고, 아카이브도 하는 팀도 있고, 개별적으로 움직이면서 기록하시는 분들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정도의 깊이나 메시지를 담는 의미가 다 다르기도 하고, 소멸하는 현상 자체가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다 보니 단발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소멸 이후에 대한 고민과 기록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고, 그다음 단계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흐름은 적다. 대부분 대상지에 속한 특정 장소와 추억/기억 위주로 기록되는 경우다. 특정 장소와 관계성, 당사 자성이 없을 경우 지속성을 가지기가 쉽지는 않다.


시대의 변화는 자연스럽지만, 그 시대를 맞이하는 각기 다른 개인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시간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렇기에 변화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시점부터 진행과정을 목격하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린다. 다만 그것을 인지하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좀 더 깊이 고민하고, 질문하고 궁리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은 기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기록은 지속 가능할 필요가 있는 것인데, '무엇부터, 어떻게, 어떤 기준을 가지고, 바라볼 것인가?'도 늘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 같다. 특히나 '의미'라는 것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기록을 하는 당사자조차도 헷갈릴 때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을지로/청계천 지역에서는 연대를 이루어 지속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라짐'에 대해 표현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기록도 진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사례라 보인다. 사라지는 순간만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황들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던지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실제로 행동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기록하는 주체가 다양하다 보니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도 다양하다.

Q. 사라지고, 사라질 것들에 대한 기록이 지속성을 가질 수 있으려면, 어떻게 남겨야 할까?
Q.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그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 그렇다면, 왜 남겨야 하는 것일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을 머물던 동네가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다양한 장소를 경험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단독주택이었지만, 주변엔 아파트가 많았고, 마트와 편의점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시장에 자주 갔다. 번화가인 시내와도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서 학교 수업시간이 파하면 시내로 나가 시간을 자주 보내곤 했다. 만화방과 시장이 가까이에 있어 종종 들렸었고, 주말 아침마다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동네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하천이 있었고, 이곳에서는 자주 행사를 열었다. 인근에는 롤러스케이트장도 있어 멀리 가지 않고도 즐길 수 있었다. 최고의 정점이었던 곳은 '플라자'라는 개념을 도입한 쇼핑센터였다. 집과는 거리가 멀지 않아서 자주 들렸었다. 동네 놀이터, 책방, 스케이트장이 지겨워질 때면 들리던 곳이다. 백화점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기에 최신 트렌드가 가장 먼저 읽히는 곳이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동네를 포함한 다양한 성격을 가진 장소를 경험했고 장소에서의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스를 보던 중, 역사가 꽤 오래된 동네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서 중재할 만큼 큰 이슈였지만, 결과적으로 그 동네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역사가 있는 동네도 이렇게 사라지는데,
내가 살던 그 동네는 사라지지 않고 잘 있나?"

곧장 고향으로 내려가 동네를 찾아갔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역사가 있는 동네가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그때의 허무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사라질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딱히 남겨둔 기록도 없었다. 결국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어릴 적 동네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한 순간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없고, 언제, 어떠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를 수많은 장소들을 위해서 기록을 해야겠다고 말이다. 남겨진 기록물이 없어 직접 손으로 끄적거려가며 그림이라도 그려보려 했지만, 기억이라는 것이 잊히기 마련이기도 하고, 그 당시에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풍경이나 모습, 장면들이기에 자세히 보지 않고 지나간지라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사라질 예정이니 가능한, 기록할 수 있다면,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특히, 동네나 지역의 변화상에 대해서 이해할 때, 그 대상이 의미가 있든, 없든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성격을 이해하고, 흐름을 파악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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