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신길동
내게 영등포는 예상치 못한 채 훅 하고 들어온 지역이다.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자취생에게는 애초에 자신이 살고 싶은 동네에 대한 선택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다.) 선택범위도 넓지 않으니 어찌 보면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럼에도 살고 싶은 동네가 있기 마련이다. 이 고민을 하기도 전에 우연하게 영등포에 거주하게 되었다. 정확히 다시 말하면 영등포구 신길동에 살게 되었다. 처음 들어 보는 동네다.
이전에도 서울에 있는 동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긴 정말 이름도 위치도 모두 생소한 곳이었다. 나만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신길동이라는 동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위치적으로 보자면 여의도, 노량진, 관악구와 인접해 있고, 영등포역도 가까이에 있어서 다른 지역과의 연결성이 좋은 편이다여의도에서 출, 퇴근하는 직장인이라면 정말 좋은 위치다. 그와 동시에 중국인 및 동포들이 밀집 거주하고 있는 대림동과도 가까웠다. 그 영향으로 생각보다 많은 중국동포들이 신길동에 거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골목골목 다니다 보면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도 많이 보이고,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도 한국말 보다 중국말이 더 많이 들렸다. 아주 낯설었다.
그 영역이 너무 넓어서 어쩔 땐 나조차도 그 안에 속해 있는 기분마저 들 때도 있었다. 여기, 저기, 동, 서, 남, 북 어디에서도 그들은 존재했다. 출, 퇴근길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주말에 동네 산책을 하는 동안에도 혼란은 거듭되었다. 이곳을 지나는 버스 중 한 노선은 이들이 거주하는 동네만 거쳐 오기에 어쩔 땐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가 진정 대한민국 서울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러모로 혼란 속에서 신길동을 이해하려 애써보았다.
동네를 파악하고 길도 익숙해질 겸 자주 걸어 다녔다. 문래동, 영등포동, 신도림동, 대방동이 익숙해질 때까지 말이다. 신길역, 영등포역, 대방역처럼 주요 전철역부터 시작해서 버스노선과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보고, 걷기 가능한 길인지도 파악하고, 동네 분위기도 느껴보고, 어디까지 걷기가 가능한지도 파악해보면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신길동 - 대림동 - 신도림동 - 문래동의 연결지점과 대방동 - 보라매동 - 신대방 사거리 - 신풍역까지 연결되는 축을 이해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지도가 그려졌다.
이쯤 되니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위치적으로 중요한 지역은 분명한 곳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낯선 동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동네에 무엇이 있는지, 동네 간 연결은 어떻게 되는지, 낮과 밤의 분위기는 어떤지,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 등 전반적인 정보를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익힌 감각의 지도는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정확하게 모르더라도 '어? 왠지 이 길을 한번 걸어 본 것 같은데?', '이 가게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로 연결되고 훗날 명확하게 인지되면 퍼즐을 맞추듯 알아가는 재미가 생긴다. 주변 동네와 같이 보면서 연결 지어보면 신길동을 이해하기 더 쉬울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금씩 신길동에 대해 알아갔고 어느새 그 안에 원래 속해 있었던 사람처럼 젖어들었다. 이제, 영등포구와 영등포구 신길동을 비롯한 그 주변 동네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어 정리해보려 한다.
버스정류장이 학교 앞에 있었기에 출, 퇴근 때마다, 버스안내방송에서 나오던 이름 '우신초등학교'. 그냥 평범한 학교인 줄 알았는데 1915년에 개교한, 올해로 107년이나 된 꽤나 오래된 역사를 가진 학교였다. 이 정도면 영등포의 역사와 함께 한 거나 다름없다. 만약에 그 당시부터 현재까지 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계신 토박이 분이 계신다면 혹은 만난다면, 그 시절의 영등포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괜한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6.25 전쟁 당시 이탈리아 의무부대가 주둔하여 부상병 치료를 한 장소이기도 하다.
"6.25 전쟁 당시 UN 비회원국이었던 이탈리아가 우신초등학교에 의무부대를 주둔시켜 부상병 치료뿐 아니라 민간인 기생충 박멸 등 열악한 환경 개선에 기여했으며 전쟁 기간 중 23만 명을 치료했다고 한다....(중략) 이 학교는 늘어나는 영등포구의 인구와 발전에 따라 수차례에 걸쳐 서울 대방초등학교(1955년), 도림초등학교(1960년), 신길초등학교(1964년), 그리고 영신초등학교(1967년) 등을 신설 분리시키면서 그 모체가 되는 학교의 역할을 해왔다."
[내용 출처: 영등포 문화원, http://www.ydpcc.co.kr/board/view.asp?cates=history&idx=2945]
영등포 문화원에 의하면 의무부대가 주둔한 것을 기념하여 서울 우신초등학교 교사 벽면에 기념표석을 설치하였으나 해당 건물이 1999년 7월 말 철거되자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1999년 8월 10일 비를 다시 세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학생수가 늘어나면서 대방, 도림, 신길, 영신 초등학교로 분리시키는데 그 역할을 했다고 하니 직접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다녀왔다.
1915.04.26 경기도 시흥군 북면 영등포 신길리에서 개교
1945.09.24 서울 우신 국민학교로 개교(44 학급)
1955.04.07 서울대방초 신설 분리
1960.02.01 서울 도림초 신설 분리
1964.03.01 신길초 신설 분리
1967. 11.21 서울 영신초 신설 분리
[내용 출처: 서울우신초등학교 웹사이트, 학교 연혁, https://usin.sen.es.kr/12704/subMenu.do]
학교 안에 전쟁과 관련된 내용으로 비석이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전쟁 부상병과 학교. 그 당시 모습도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는 사진 속 건물들이 철거되고 신축된 건물로써 외관은 변화하였지만 역사 속에 등장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2014년에는 개교 100주년 기념 '우신 역사관'도 개관한 것으로 보인다.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는데, 학교 사이트에는 기재되어 있다.)
학교와 역사가 맞물려 있다는 지점은 생각보다 중요한 것 같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도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관계성이 있는 학교였다. 건물도 꽤 오래돼서 1년 정도는 옛 건물 교실에서 수업을 듣다가 공사가 진행된 후 졸업 하기 반 학기 전에 신축건물로 옮겨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옛 건물은 역사관으로 조성되었고 체육수업을 받던 강당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학교 다닐 땐 몰랐는데 두 건물 모두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들이었다. 거기서 수업도 하고 밥도 먹고 했다는 것이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신기할 따름이다.
신풍역 5번 출구로 나가면 5층 높이의 아파트가 도로를 따라 길게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차량 이동량에 비해 좁은 도로에, 2017년, 2020년에 각각 준공된 신축 아파트와 대비되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서 꽤나 흥미롭다. 1974년에 사용승인이 난 48년 된 아파트를 소유한 이들은 앞서 재개발된 신축 아파트를 보며 미래를 상상하고 그들과 나란히 할 새로운 아파트의 모습을 기대하며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재건축이 확정되고 사람들이 이주를 하고 건물이 철거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만 재건축을 하지 않을 건 아니기 때문에 건물의 개, 보수는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아담한 규모의 담장이 기울어지고 있었지만 지지대를 받쳐 두었을 뿐이다. 세월을 넘어 힘에 부치는 느낌마저 든다. 급한 대로 한쪽 면에는 페인트칠을 새로 했지만 오히려 더 돋보이게 만들 뿐이었다.
저 뒤에 아파트 칠하고 남은 걸로 칠했나 봐.
우스갯소리의 비아냥만 그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래도 이 아파트가 생겨났을 1970년대쯔음 주변 풍경이나 분위기를 상상해본다면 이 지역에서는 상징적인 랜드마트 격인 건물 중 하나였을 텐데 지나가는 이가 무심코 던진 말에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인가? 아주 잠깐이었지만, 내 방을 가진 적이 있었고, 그때 살았던 집이 딱 5층 높이의 저층 아파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혼자 침대에서 잤고, 몇 번 굴러 떨어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난다. 그때를 떠올리며 남서울 아파트 단지를 둘러보았다. 요즘 보기 힘든 모래가 깔린 놀이터와 옛 감성 그대로 묻어나는 나무로 된 벤치가 있었다. 놀이기구는 옛것이 아니었지만 그 주변을 둘러 애워 싸고 있는 환경과 분위기는 옛것이었다.
아파트 건물과 놀이터 사이의 거리는 너무 가까워서 베란다에서 굳이 큰 소리로 소리치지 않아도 들릴 것 같았다. 이어서 아파트 뒤쪽으로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담장을 둘러서는 참 다양한 풍경들이 존재했다. 신축 아파트, 공영주차장, 오래된 주택, 그리고 골목의 시간들이 뒤섞여 있었다. 담장만 없으면 곧장 이어질 정도로 거리는 가까웠다. 세월이 지나면서 차곡차곡 맞물리며 생겨난 것들일 테다. 아파트 정문 쪽에서는 신축 아파트와의 대비되는 풍경이, 뒤쪽에서는 2층 단독주택과 대비되는 풍경이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느껴져서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이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지 않고 하나둘씩 재건축, 재개발이 된다면 다시는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때 그 시절, 남서울 아파트는?
도심 어느 곳과도 직통 12개 버스노선, 남서울 아파 - 트
남서울의 관문에 위치한 남서울 아파트
76년 가격 남서울 아파트
1970년대의 남서울 아파트 분양광고를 보면 한강을 기준으로 남쪽에 위치해 있어 <남서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서울에는 <남서울>이라는 이름을 단 아파트가 이곳 말고도 더 있었다. 그 당시 영등포구 반포동에 있었던 반포주공 1단지 아파트가 <남서울 아파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참고기사: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190823/97093921/1) 비슷하게 아파트 이름 앞에 <남서울>을 달고 있는 금천구의 남서울 러키 아파트, 남서울 무지개 아파트, 앞에 회사 이름이 붙어 있는 건영 남서울 2차 아파트 등이 있는데, 주로 금천구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남서울>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 있는데, 여기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고층 신축 아파트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이 아파트가 가장 높았을 것이고 눈에 띄는 건물이었을 테다. 지금도 잘 보면 단층의 오래된 집들이 인근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변화하면서 지금의 상태가 되었을 뿐이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노란색 물탱크 또한 한몫을 했을 것이다. 옥상 위의 물탱크는 1990년대까지 지어진 아파트에서만 볼 수 있는 수돗물 공급 장치이다. 2000년대부터는 부스터 펌프를 이용해 물을 공급하므로 시기를 추정해 볼 수 있는 흔적이다. (참고할만한 글: https://url.kr/yunz2j, 아파트가 깨끗한 물 보급에 영향 미쳤다?) 어찌보면 아파트 자체도 그 시대의 흔적지만, 물탱크 자체도 시대를 추적해볼 수 있는 흔적인셈이다.
처음 영등포구에 이사를 온 뒤 이 아파트를 보자마자 만약, 여기가 철거된다면 어떻게든 지금의 상태에서 사람들이 이주를 하고 떠나간 뒤 철거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쭉 기록을 해봐야겠다고 다짐 했던 순간이 있있다.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나의 기록에 불편한 마음을 가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만약에 그렇게 흘러가게 된다면 무리해서 기록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현재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는 분들 중에 처음 입주해서부터 쭉 살고 있는 분이 계실까? 문득 궁금해지는데, <남서울아파트>라는 아파트 자체만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보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주변의 변화를 지켜보고 함께 세월을 보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한 것 같다. 이 부분은 지금 당장은 파악하기 어렵고 재건축이 확정되고 이주하는 과정에서 확인해볼 수 있을 것 같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