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에 무엇이 있는데요? 신길동 편(2)

by 이경민

서울의 변화는 워낙 속도가 빠르다 보니 현 시점에서 마주하는 모습이 전부라고 착각에 빠지기 쉽다. 변화를 쉽게 인지할 수 있는 물리적 요소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양한 요소들이 존재함을 알고 도시를 작동하게 하는 원리와 구조, 생태계도 함께 살펴야 한다. 도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그들만의 커뮤니티, 생태계가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이해해야 현재의 모습이 읽힌다. 이러한 요소들은 단기간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차곡차곡 쌓인다.


하지만 변화가 찾아 오면 한 순간에 바뀌기도 하고,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주춤 거릴때도 있다.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시간차가 존재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찾아 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며 쫓아가기에 바쁜 사람과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변화 속에서도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생태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더디게 받아 들이는 사람도 있다. 변화를 받아 들이고 적응하는데에는 개별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 서울은 개별성을 존중하거나 기다려 주기 보다는 빨리 받아 들이고 새롭게 변화해서 그 새로움에 적응하는 것에 더 익숙하다. 그렇지 못한 대상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시대에 뒤처지지는 존재로써 전락되고야 만다. 그런 탓에 도시서울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동네들이 빠른 속도로 과거로써의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모습을 받아 들이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동네를 구성하고 있던 물리적 공간 구성의 변화는 거주계층과 상권의 변화를 유도하고, 기존에 형성되어 있던 상권 생태계는 영향을 받으며 크게 요동친다.


신길동은 이러한 변화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고 여전히 서 있다. '신길동 텍사스촌'이라 불리던 성매매 집결지가 있었으며, 1967년에 개관하여 1980년에 폐관한 우신극장도 있었고, 연희동 사러가 시장의 시작점이 된 신풍시장이 꽤나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이 장소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사러가시장의 경우도 문을 닫고 철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러한 과거를 몰랐던 나는 보여지는 면만 보고 아무것도 없는 동네라고 착각했다. 돌아서면 보이는 그 흔한 카페도 안 보이고 그나마 지하철역에 가까워져서야 있고, 편의점이 있긴 하지만 판매하는 물품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지하철 1호선, 7호선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도보로 10분~15분 정도 걸어가야 했고, 자주 방문하는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있긴 했지만 이 또한 기다리는 시간이 10분~15분이었다. 먹거리나 생활편의시설에도 마찬가지였다. 마트가 있긴 했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늘 2% 부족했다. 아마도 시장과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시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떡, 붕어빵 같은 간식이나 떡볶이, 김밥 같은 분식을 파는 식당이나 노점도 없었다. 대단지 신축 아파트가 있는 것도, 대규모의 상가나 마트가 있는 것도 아니였는데도 보통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가게나 점포가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약간의 불편함과 부족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동네였다.


이쯤 되니, '과연 이 신길동이라는 동네의 정체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저절로 들었다. 늘 그랬듯이 과거 자료를 좀 뒤적여 보니 이곳에 이사 와서 내가 본 것들은 변화의 과정 중에 많은 것들이 없어진 이후였다. 새롭게 생겨 났거나 생겨 나는 중이었다. 그와 동시에 현재의 모습이 100% 전부라고 이해하면 그 지역을 제대로 볼 수 없음을 깨달은 순간이기도 했다. 이럴 땐 과거로 잠시 돌아가 무엇이 있었는지, 과거에 존재했던 것들에 의해 형성된 정체성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사라지고 생겨나기를 반복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하게 된 것인지에 대한 맥락과 과정을 살펴보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이 아니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시간을 되돌려 살펴보고 존재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되짚어 보는 것, 그것이 결국 신길동을 이해하고, 내가 사는 동네를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러가시장

'사러가 시장'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희동을 떠올린다. 하지만 사러가시장의 시작점은 다름 아닌 신길동의 신풍시장이다. 1965년 신풍시장으로 시작하여 1973년에는 신풍 슈퍼마켓으로 개점하였다. 시장에서 마켓의 형태로 변화하였고 1974년에는 연희시장을 인수하여 연희 슈퍼마켓을 개점하였다. 1980년에는 주식회사 사러가로 상호를 변경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가 되었다. 신길동 사러가시장의 경우 경영악화와 신길뉴타운의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사라졌고, 연희동 사러가시장의 경우 여전히 굳건하게 영업 중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29]
[1998년 3월 3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신길동 사러가 쇼핑센터]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신풍시장'과 서대문구 연희동 '연희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사러가의 역사는 어쩌면 우리나라 유통 발전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65년 신풍시장을 설립한 사러가는 67년 서울시에서 최초로 재래시장으로는 처음 슈퍼마켓을 도입한데 이어 80년에는 상호를 현재의 사러가로 바꾸면서 대단위 슈퍼체인을 갖추게 되면서 기업의 면모를 일신한다. 이에 앞서 79년 서대문구 '연희시장'을 인수한 것은 시세를 확장하는데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80년대 불어닥친 유통시장의 대격변기에 사러가는 능동적인 대처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 . (중략)
<1997년 11월 14일자 매일경제, https://url.kr/ca1d5v>

신길동의 사러가 시장의 영향력은 꽤나 큰 것으로 보여진다. 건물이 철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철거 후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버스정류장명에도, 도로 위 안내판에도, <사러가 시장>이 기재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신길동은 몰라도 '사러가 시장'은 다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정도면, 동네의 랜드마크로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재개발대상지로써는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연희동과 달리 신길동에서는 왜 경영이 악화되었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


우신극장

영등포에는 생각보다 극장이 많았다. (공장이 많던 시절 인구 유입이 급증하였으니 상권이 발달했을 테고 유흥을 즐길 수 있는 장소도 형성되어 있었을터 어찌보면 많았던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이 아니였을까 싶기도) 영등포의 대표 상권인 영등포역 인근에는 경원극장, 연흥극장, 영보극장, 명화극장이 있었고,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노량진에도, 당산동에는 남도극장이, 그리고 신길동에는 우신극장이 있었다. 실제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과거 신문에 실린 약도와 자료를 통해 우신극장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사러가시장의 전신인 신풍시장도 함께 언급되어 있어 그 당시 신길동을 잠시나마 상상해 볼 수 있다. 우신극장은 1967년 개관하여 1980년에 폐관하였다고 한다.

<좌측: 1996년 5월 17일 동아일보, 경향신문에 실린 지도>
1970년대 구지도에 표기된 사러가 쇼핑센터와 우신극장

사거리를 중심으로 빽빽한 주거지와 극장과 쇼핑센터가 보이고, 지도에 표기 되어 있지는 않지만 골목 골목에도 가게와 상점이 있었다. 골목 안 가게들은 지금도 있다. 이런 기반 시설들이 모여 나름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고층건물이 없다는 것도 신길동의 특징 중 하나다. 최근에 조성된 신길 뉴타운 신축아파트가 그나마 높은 건물측에 속하는 편인데 그래서 인지 기존에 있던 건물과 새로 생긴 건물이 공존하며 보여지는 풍경은 다소 이색적이다. 앞서 언급했던 신길동의 정체성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다가도 지워지고 채워지기도 하면서 변화하는 과정으로 이해 하는 지점으로 해석 할 수 있다. 상징적인 장소가 아니어도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흔적들이 곳곳에 있고,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지점들이 많은 곳, 바로 신길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