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민 Mar 07. 2023

[기고] 동네의 미래는 누가 결정할까


*해당 글은 빅이슈 코리아에 연재된 기고글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페이지에서 참고해주세요.

동네의 미래는 누가 결정할까(1)https://bigissue.kr/magazine/new/320/2212

동네의 미래는 누가 결정할까(2) https://bigissue.kr/magazine/new/320/2213


사람들이 말하는 서울 같은 건 뭐고, 서울 같지 않은 건 무엇일까? 몇 년 동안 동서남북을 오가며 만난 서울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한 도시였다. 서울 같고, 서울 같지 않은 것의 기준을 세우기가 애매했다. 걷고 있는 모든 곳이 서울이었다. 시대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풍경들이 펼쳐지는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말하는 '서울 같은' 모습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알수 없지만, 흔히 통용되는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고층빌딩,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과 자동차, 개성 있는 상점들, 활기와 에너지 가득한 분위기, 관광객과 내국인이 뒤섞여 있는 풍경과 함께 즐길 거리, 볼 거리, 먹을 거리 가득한, 24시간 멈추지 않는 도시. 지방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서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취업을 계기로 상경한 이후 새롭게 경험한 서울은 그동안 상상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앞서 언급한 묘사는 서울을 대표하면서도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이 어떤 곳인지 판단할 수 없게 하는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것들이 많았다. 그때 깨달았다. 정의 내릴 수 없는 혼란스러움 자체가 서울이 가진 정체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각자가 경험한 서울이 다르기에 이것또한 명쾌한 정의는 아닐 것이다.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 아닌 것 같다'는 말에는 고층 빌딩이 시야를 가리지 않고, 인구 밀도가 낮아 북적대지 않고, 그로 인해 전반적으로 여유로운 이미지가 담겨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 같지 않은 동네라고 칭할 수 있는 곳들이 있는데, 나는 이곳들을 그냥 '서울 동네'라 부르기로 마음 먹었다.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구분과 비교 이전에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나 맥락을 살피는 것이 먼저다. 


'서울 같지 않은 동네'. 당신이 이곳을 보면 가장 먼저 이 문장이 떠올 것이다. 그런 '서울동네'는 관악구 삼성동이다. 이곳은 예전에 신림10동과 신림6동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2008년에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삼성동'이라는 이름으로 합쳐졌다. 서울로 편입되기 이전에는 경기도 시흥군으로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1967~68년 전후로 청계천 일대의 도심 철거민들이 이주/정착하였다. 현재의 삼성동의 모습은 도심 철거민들의 정착 이후 변화된 채 형성되어 있다. 도시개발사와 생활사 측면에서 여러모로 중요한 동네라고 생각되는 곳이다. 약 5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재개발이 시작되었다. 삼성산 길슭 아래 있던 마을은 이미 철거되어 사라졌고, 지난 해 겨울 이주가 끝난 신림2구역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도심에서 이주 후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이들은 또 어디론가 떠났다. 



이주가 한창 진행 중이던 그때, 짐을 정리하던 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며 살았던 집 내부를 살펴 보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곳 식당에서 따뜻한 족탕 한 그릇을 먹었다. 스치듯 지나갈 수 있는 순간의 기억들이지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몇년 뒤 변화된 동네를 둘러보는 내내 그들이 생각날 것이다. 도시가 멈춰 있지 않은 이상, 재개발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온다. 분명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변화가 찾아 올 때 마다 느끼는 헛헛함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수십 년을 쌓아온 시간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것이 정말, 당연할까? 그동안의 시간은 다 무엇이었을까? 한 때의 추억이라고 웃어넘겨버리기에는 각자가 쌓아온 시간과 삶이 가볍지만은 않다. 당사가자가 아니기에 그 정도를 알 수 없지만, 잠시나마 상상은 해볼 수 있었다. 곧장 재개발 현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과연 나는 이곳에서 어떤 부분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까?


재개발 현장의 고양이가 의미하는 것

빼곡히 자리 잡고 있던 가게와 집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건물 철거를 위해 공사 가림막으로 공간을 가려놨기 때문이다. 길만 건너면 삼성산이 있는데 그 가까이에도 사람들이 살았다. 21세기 대도시 서울에서 다시 못 볼 풍경이었다. 이젠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는 고양이들만 남았다. 어찌 된 일인지 재개발구역에 남아 있는 길고양이들은 낯선 이의 방문에도 경계하지 않는다. 나에겐 간식도 사료도 없는데 '야옹~'거리며 잘도 따라온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돌봐준 주민들이 있었다는 증거다. 영역 동물인 데다가 물과 먹이를 챙겨주는 캣맘이 있다 보니 이곳을 쉽게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조만간 공사가 시작될 것 같은데 걱정이다. 길 건너 삼성산 기슭 쪽 현장을 찾아갔을 때는, 열 마리도 더 되는 고양이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다가왔다. 분명 먹을 것을 챙겨주던 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당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무기력해졌다. 근처 편의점에서 사료라도 사서 줬어야 했는데,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재개발이라는 것이 도대체 뭐길래 동물과 인간을 이따금 생존의 문제로 밀어 넣는 것일까? 사람들조차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동물의 생존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그저 혼란스러웠다. 무기력 속에서도 재개발 안에서 반복되는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논의를 하고 하고, 해결책을 실행해 볼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도시개발 과정은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주거권과 생존권 보장은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동네의 미래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재개발이 진행되면 기존과 다른 도시조직이 만들어지고, 생태계의 구조도 달라진다.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될 것이다. 변화된 도시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달라지는 지점을 짚어보는 것은 중요하다.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야 하는 각자의 도시이자, 지역이면서, 동네이고, 장소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주체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방향성을 결정하는 역할이 주어질 수도 있다. 의견을 내고 조율하는 경험에 대한 대비도 필요할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물리적 공간의 변화 속도만 언급될 뿐 인간이 적응해야 할 체계, 태도, 가치관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재개발 조합은 주민들에게 재개발에 대해서 미리 알려주지 않았고, 갑자기 보상금 얼마 쥐어주면서 나가라고 했어요. 이 동네 계신 분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라 항의도 못하고 그냥 나가게 되죠. 저 같은 경우는 그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 뭐라도 해보려고요."


재개발 대상지에 거주하고 있던 어느 작가님이 내게 들려준 말이다. 재개발 지역에서 대부분의 세입자는 기본적인 정보조차 전달받지 못한 채 떠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조합원이 아니면 재개발 진행 과정에 대해서 전혀 공유받지 못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재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 참여하기는 커녕, 급하게 이사할 집부터 찾아야 하는 것이다. 동네의 미래를 그려볼 수 없다. 아니 결정할 수가 없다. 참여 기회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동네의 미래는 특정 누군가 혹은 몇몇 사람들에 의해 결정될 수 밖에 없다. 


도시계획의 어떤 그림에 속할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재개발은 지속된다. 고령층이 거주하는 동네일 수록 의견을 낼 기회는 드물다. 이러한 현실이 어쩌면 우리를 거리로 내모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이주과정은 어땠을까? 몇 년 동안 재개발이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왔으니 상황을 몰랐던 이는 없었을 것 같다. 다만 그들이 여기로 다시 돌아올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모두가 떠난 동네 한복판에서 다시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네의 미래는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기고] 힐튼호텔 철거와 상실을 대하는 태도(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