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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길을 올랐다. 꽤 넓은 구역에 무방비로 버려진 쓰레기와 특별관리구역 스티커가 부착된 공가가 보였다. 동시에 바깥에 놓인 살림살이와 빨래도 보였다. 사람이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했다. '어쩌다 이런 상태가 된 것일까?'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황급히 이동했다. 한걸음 두걸음 계단을 오르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다시 돌아갈지를 고민하던 그때 평탄한 길이 나타났다. 숨을 고르고 고개를 돌려보니 한강너머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얽히고 설킨 전깃줄이 시야를 가리기도 했지만, 나름 괜찮았다. 높은 건물도 없었다. 동네 전체가 재개발 지구로 지정되어 있어 신축이나 증축 같은 건축 행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높이로 서로 벽을 맞대고 위치한 건물이 마치 하나의 거대한 작품 같기도 했다. 그 사이로 풍경이 내려다 보였다. 움직이던 발이 저절로 멈춰졌다.
언덕 위 평탄한 길, 행정구역상 보광동으로 갈라지는 주축이자 한남3구역에 속해 있는 우사단로10길이다. '청석슈퍼'에서 '보광초등학교'까지 약 1km 구간에 해당하는 이 길을 중심으로 작은 길이 줄기처럼 뻗어 나간다. 길 양옆으로 건물이 이어지고, 1층은 대부분 가게로 이용되고 있다. 규모가 크지 않고, 개성 있는 가게가 모여 있는 동네 생활상권이라고 볼 수 있다. 길의 양 끝 지점은 사방으로 뻗어 있던 길과 사람들이 모이는 지점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마을 버스를 타거나 이슬람사원을 방문하기 위해 모였다가 흩어진다.
우사단로10길이 위치한 한남3구역은 2003년 뉴타운 사업지구 지정에 이어 '한남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었으나 사업이 장기적으로 지연되었다. 그 사이 다양한 사람들이 이 길 위에서 시간을 보냈고, 현재도 보내는 중이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청년 예술가들은 우사단로10길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주민들과 함꼐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 행사를 진행했다. 청년창업가들은 음식점, 카페, 소품가게, 와인바 등 다양한 업종으로 창업했다. 그 과정에서 우사단로10길을 포함한 동네가 유명세를 치렀다. 기세를 몰아 이익을 보려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 결과 동네에 있던 주민들이 쫓겨나는 경우가 발생했다. 기존 주민들이 피해를 보게 되자 이벤트는 점점 줄어들더니 더는 진행되지 않았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주민들과 함께 하는 지역축제가 열리긴 했으나 행사 규모가 간소화되어 진행되었다. 이후에는 우사단로10길에서 일어나는 행사에 대한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고, 한동안 잠잠했다.
어느 시점부터였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우사단로10길이 위치한 한남3구역 재개발 소식이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었다. 그 때마다 허겁지겁 서둘러 상황을 확인하곤 했다.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파악하고 기록해두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특별한 변화가 포착되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은 반복되었다. 헛걸음에 지쳐 한동안 잊고 있다가 최근에 한남3구역 재개발 소식이 화두에 올랐고, 그 장소에 다시 들르게 되었다.
동네가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마을버스, 자가용, 택시, 택배 차량을 피하려고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현재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고 싶어서 온 것인데 제대로 걸을 수 없으니 파악은 커녕 빙빙 돌기만 하는 느낌이었다. 애써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걷다보니 '임대'라고 써 붙인 빈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꽤 오랫동안 비어 있었던 것인지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곳도, 이제 막 정리한 후 깨끗해진 곳도 있었다. 그냥 '비어있다'고 보기엔 그 수가 많았다. 얼추 세어봐도 다섯 곳은 넘었다. 반면에 운영을 지속하고 있는 가게도 보였다. 이런 애매한 상태에서는 현재 상황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사단로10길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재개발 사업이 진행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길을 걷다 마주한 풍경 속에 무질서와 무관심의 순간들이 포착되었다.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경고문을 무시한 채 곳곳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와 딱히 관리되지 않고 방치된 빈 곳들, 그 앞에 주차된 차들. 가게마다 '주차금지'스티커가 부착된 것으로 봐서는 무단으로 주차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건물의 신축과 증축이 어렵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더 나아가 개/보수를 하지 않은 곳도 많이 보여서 건물의 보존, 관리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늘을 수 놓은 전깃줄, 갈라진 길바닥, 정리되지 않은 짐들. 한남3구역의 경우 건물주가 외부인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접 거주하지 않는데, 재개발이 진행되면 철거될 곳이니 동네가 어떻게 변해가든 관심과 애정이 적을 수 밖에 없다. 세입자는 언제든지 떠나야 할 처지에 있으니 동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다. 결국, 누군가의 욕망이 투영된 부동산 투자 대상으로서의 재개발 대상지 동네는 무관심으로 방치되며 무질서한 상태로 이어진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함 그 자체다. 어떻게 봐라봐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걷는 내내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시겠지만, 재개발 구역에는 이해관계가 많잖아요. 주민들 이주 관련해서도 그렇고. 다양한 분들을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상 문제 때문에 너무 아쉬워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어르신들한테는 시장도 가깝고 추억이 깃든 너무 좋은 동네라 더 머물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러다 어떤 분과 대화를 하는데, 동네에 안녕을 전하는 것도 우리를 위한 일 같다고 하셨어요. 그분은 재개발 조합원이셨거든요. 그말을 들으면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네. 누군가는 이걸 기다려 왔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좀 마음이 편해졌어요."
- 재개발 구역을 기록하는 A씨 -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그 전까지 이곳을 잘 기억할 수 있어야 겠다. 그러려면 공간을 더 많이 사용하고 누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재개발 구역에서 공간을 운영하는 B씨 -
"저는 '재개발을 하면 안 된다'는 주의는 아니거든요. 이 동네만 봐도 개발은 필요해요. 왜냐면 할머니들이 연탄을 나르시거든요. 불편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서 개발은 필요한데, 다만 그 결과물이 아파트여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드는 거죠. 그 이전에 사람들이 재개발이나 아파트에 대해서 생각해볼 거리를 조금 만들어보자. 인식에 변화를 주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미 변화한 곳들은 반대하는 것보다는, 그것도 어찌보면 누군가의 욕구를 막는 일인 거잖아요. 강한 이미지의 사회운동보다는 문화적인 활동으로 만들어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지속적으로 하고 다니는 거 같아요."
- 재개발 구역 인근에서 카페운영 및 문화기획을 하고 있는 C씨 -
"여름에 처음 갔을 땐 너무 안타까웠어요. 집집마다 나무, 꽃, 풀이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거든요. 아름다웠어요. 한창 자외선이 강할 때라 집들도 반짝반짝 빛났고요. 가을엔 그보단 빛이 바랜 모습이었고, 힘이 빠진 모습이었어요.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이 빠져나간 곳이라는 게 확실히 느껴지더라고요. 재개발로 득과 실을 보는 사람이 나뉘고, 당연한 말이지만 득을 볼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 어떻게든 진행되는 거겠죠. 거칠게 말해, 결과적으론 새 아파트를 위한 파괴 같아요."
- 재개발 현장 기록을 처음 해보는 D씨-
재개발에 대한 의견에는 정답이 없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다.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생각에 맞춰서 행동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다만 재개발을 이유로 공간을 방치하는 건 지양해야 할 것 같다. 사라질 것을 알지만 머무는 동안에는 애정을 가지고 돌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규칙만 잘 지켜도 방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동네를 돌보고 살피는 일은 내 삶을 돌보는 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을까? 진심으로 질문하고 마음을 다독이며 태도를 달리한다면 남은 시간동안 소중한 추억 하나라도 더 만들고 아름다운 헤어짐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