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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May 07. 2023

생과 사가 공존하는 곳에서, 미래의 서울을 상상하다

* 해당 글은 빅이슈 코리아에 기고된 글입니다.

* 기고글 보기

https://bigissue.kr/magazine/new/327/2313

https://bigissue.kr/magazine/new/327/2314


누가 나에게 '흑석동'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빗물펌프장'이라고 답할 것이다.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이면서 흑석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슈퍼나 미용실처럼 익숙한, 일상에 훅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물론 빗물펌프장을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에는 총 120개의 빗물펌프장이 있다. 오며 가며 그 중 몇 개를 본 것이고, 생각 외로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그런데 특별한 거부감 없이 들여다보게 된 것은 흑석빗물펌프장이 처음이었다. 왜 그런가 싶어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나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궁금했던 것이 전부다. 아래 사진을 본 이후부터는 더 시선이 갔다. 


1990년대 동작구민 알뜰장(출처:동작구청)

1990년에 촬영된 사진으로 빗물펌프장 빈터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알뜰장이 열렸다. 건물 안에서 진행된 것은 아니지만, 친숙한 느낌으로 진행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을지 짐작해본다. 건물외관재료로 쓰인 벽돌도 동네 어딘가에서 누구나 한번쯤 봤을 법한 익숙한 분위기와 느낌을 준다. 그런데 동네 진입로에 왜 빗물 펌프장이 있는 것일까? 


1985년 동작구 흑석동 16-16일대의 한강제2근리공원의 도면 (출처: 서울기록원)

한강 옆이어서, 빗물펌프장

빗물펌프장은 특정지역의 침수를 막기 위해 빗물을 강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시설이다. 그렇다면 흑석동은 한강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는 과거 사진 한장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배타고 있는 사람들 너머로 보이는 산 인근 지역이 흑석동이다. 


1917년에는 나룻배가 정박하는 흑석진이 있었다. 흑석진은 현재 한강대교 건설로 인해 기능을 상실했지만, 사진에는 그 흔적이 보인다. 1920년대에는 일본인이 연못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광복 후 연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시장이 생겼다. 연못을 채우던 물이 한강 물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룻배가 오가던 길목이니 홍수가 나면 침수되는 건 당연지사. 1960년대 후반에는 홍수 대비를 위해 한강변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공유수면 매립이 진행되었다. 흑석동을 포함한 여의도, 반포, 동부이촌동, 압구정동, 구의동 일대에 택지가 생겼고,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섰다. 


1955년 흑석동 (출처: 한겨레 신문 / 원출처: 서울시 역사편찬위원회) 

한강 근처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장마철에 한강을 포함한 주변 상황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칠 새 없이 일주일 내내 쏟아지던 비로 한강 물은 계속 불어났다. 나무와 꽃은 흔적도 없이 물에 잠겼고, 한강대교는 겨우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대로 비가 계속 온다면 모든 것이 잠길 기세였다. 물이 흐르는 속도도 빨라졌다. 평소엔 잔잔하게 흐르던 물이 폭포수처럼 돌변했다. 올핌픽대로는 이내 침수되어 통제되었다.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해갔다. 한강개발사업으로 백사장을 메우고, 제방을 만들어도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흑석동은 제방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도로 건설로 홍수의 위험으로부터 조금 벗어 났지만, 저지대의 침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빗물펌프장의 설치는 필수였을 것이다.

어느 종친의 묘지 

사람의 생과 사가 공존하는 동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로망이 있다. 바로 '한강뷰'가 가능한 동네에 사는 것이다. 흑석동은 그런 동네 중 하나다. 고층 건물이 아니더라도 고지대에서 한강을 조망할 수 있다. 2005년 흑석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이후 조금씩 재개발이 진행되었고, 이때 '한강뷰'를 강조하듯 신축아파트 이름에는 '한강'이 붙었다. '한강 푸르지오', '한강 센트레빌 1차, 2차.' 한강 매립사업 당시 생겨난 반포와 비슷한 잠재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서반포'라는 말도 등장했다. 흑석동의 가치는 흑석동으로 설명이 되어야 할텐데, 서반포라는 말은 오히려 흑석동의 가치를 더 축소하는 느낌이 들었다. 반포면 반포고 흑석동이면 흑석동이지, 흑석동이 반포가 될 수 있을까? 반대로 반포가 흑석동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잘 살펴보면, 한강 가까이에 있는 일부 아파트를 제외하고선 의외로 한강과는 좀 거리가 있다. 동네 중앙에 떡 하니 솟아 있는 병원과 어느 종친의 묘가 더 잘 보인다. 묘가 있던 곳은 과거 야산이었으나 개발 광풍으로 묘 주변에 아파트와 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순서상으로 보면 묘가 먼저다. 어찌보면 사람이 살지 않던 곳에 집을 짓고 살게 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동작역과 가까운 흑석동은 심지어 국립묘지인 현충원이 자리 잡고 잇으니 결과적으로 흑석동의 절반은 묘지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병원과 묘. 사람의 생과 사가 공존하는 동네에 '한강뷰'라는 로망이 입혀졌다. 산을 등지고 강을 바라보는 지세를 의미하는 배산임수로 흑석동을 해석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이라면 한강변의 모든 동네가 배산임수가 아닐까? 정말 사람 살기 좋은 곳이면 사람이 살아야지, 왜 죽은자리의 자리가 되어 있는 것일까? 

가장 최근에 입주한 흑석 3구역

그래서 도대체, 흑석동은 어떤 동네일까? 

빗물펌프장, 생과 사가 공존하는 동네, 한강뷰의 로망을 가진 동네인 것 까지 이해했다. '그래서 흑석동은 도대체 어떤 동네일까?' 되물어 보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흑석동만의 이야기가 있을 법도 한데 왜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을까? 지명에서 알 수 있듯 '검은 돌'이 나왔던 동네레 이를 반영한 '까망돌 도서관', '까망돌 어린이공원'으로 그 의미가 전해지는 것이 전부다. 6.25 피난민들이 정착한 동네로 알려져 있었지만, 그 시절을 간직한 곳은 재개발로 일부 사라졌고, 곧 사라질 예정이다.  


"흑석동을 명품 단지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명품 단지가 재산 가치 상승의 차원도 있지만 여기 사시는 분들의 자부심이나 지역의 이미지가 좋아지는 부분도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흑석동 내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입을 모아 '재개발이 완성되어 새롭고 좋은 아파트가 지어진다면 흑석의 위상도 올라갈 것'이라 말했다.

-'그늘 도시, 그들도시; 흑석동 이야기', <중앙문화> 83호 


명품 단지를 추구하는 일부 사람들은 아파트가 있어야만 지역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자부심이 생기는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동네 이미지와 자부심은 물리적 공간 같은 외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는 내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한 일이다. 동네 바런을 위해서 애정을 가지고 행동하게 되고, '어떤 동네를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까지 닿게 된다. 외적인 요소만 언급하는 것은 부동산 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사람을 판단할 때도 가장 먼저 외모를 보듯, 동네를 판단할 때도 건물 외관을 보고 판단하지 않을까? 

흑석빗물펌프장 앞에 부착된 동상이몽의 현수막 

오리무중 상태로 재개발이 다시 시작되었다. 

물음표만 가득한 채, 2023년 들어서 뉴타운 사업의 일부가 진행되고 있다. 총 11개의 재개발 구역으로 2011~2018년까지 7년간 총 5개 구역(4,5,6,7,8구역) 재개발이 완료 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흑석 3구역이 입주를 완료했다. 이어서 흑석 9,11구역이 재개발 예정이며, 현재 이주가 진행되고 있다. 완료되고 진행 준비 중까지 포함하면 이제 남은 곳은 1,2구역과 재개발구역이 해제된 10구역이 전부다. 여기서 눈 여겨볼 곳은 앞서 언급했던 빗물펌프장 부지와 흑석 9구역이다. 


동상이몽의 빗물펌프장

흑석1,2구역 사이에 위치한 빗물펌프장 부지는 2008년 당시 빗물펌프장 이전 후 문화공원이 조성될 예정이었으나 부지 활용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존치 관리구역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다 2020년에는 청년 임대주택 조성 계획으로 변경되면서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이 등장했다.

부지활용에 대한 다른 생각, 즉 '동상이몽'이 시작되었다. 다른 가치가 충돌하고 갈등이 발생하는 과정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문제를 어떠한 단계와 절차를 거쳐 어떠한 과정과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는지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가끔 동상이몽의 현장을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지켜보는 것도 다양한 이해관계를 체감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 


흑석빗물펌프장 
서원석 교수는 "입주민에게는 그곳에 공원이 유치되는 것이 청년 임대주택보다 좋겠지만, 학생들의 입장에선 주거 효용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며 학생들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 임대주택이 들어설 경우 학생이 살 수 있는 집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자연히 학생들의 편의를 고려한 시설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청년 임대 주택을 반대하는 일부 고소득 분위의 의견에 대해서는 "내가 들어갈 수 없다 해서 다른 사람도 못 들어가게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내가 들어갈 순 없지만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는 접근 방식을 가져 한다고 말했다. 

-'그늘 도시, 그들 도시; 흑석동 이야기', <중앙문화> 83호 


흑석9구역에 남은 단서들

흑석9구역의 경우 시대 변화를 직접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단서들이 꽤 남아 있다. 도시형 한옥, 나무 전봇대, 서울1기휘장(1947~1996)이 새겨진 맨홀, 서울 수도 맨홀, 행정구역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주소판 등이 있다. 과연 구 차원에서는 이 단서가 지역을 해석할 수 있는 자원으로써 활용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까? 아니면 기록이라도 남겨 두었을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동네 곳곳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이 재개발로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해도 절대 불가능한, 희소성이 있는 것들인데 자료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몇 천, 몇 백년전의 유물도 상황에 따라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고 다시 땅에 묻히기도 하는데 여기에 있는 것들은 오죽할까. 그저 답답할 뿐이다. 


여러모로 다양한 이슈가 존재하고, 미래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흑석동의 현재를 쭉 훑어보았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으나 결론이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일단 패스하고, 남은 이들보다 떠난이들이 많은 이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상상해보련다. 흑석동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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