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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민 Nov 17. 2024

[기획취재] 산업유산의 현재적 의미와 보존

Heritagization(헤리티지네이션) 혹은 유산 만들기(1)


*해당 글은 은평시민신문과 함께 진행한 기획취재 <오래된 도시조직의 공존방안>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한국의 일부 도시는 과거 특정 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거제의 조선소, 울산의 자동차 산업, 장항의 제련소, 태백의 탄광이 그 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로 산업이 쇠퇴하면서 관련 종사자들과 도시 구조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산업시설 또한 유산으로 남겨지거나 사라지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때, 해당 산업시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여 어떻게 활용하는지 여부와 새롭게 형성되는 도시 구조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과정으로서의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전파하며 건축역사·도시·근대·산업유산을 연구하는 이연경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 사례와 활용방식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터뷰 ④ 근대건축역사와 산업유산을 연구하는 이연경 교수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이연경입니다. 건축역사·도시·근대·산업유산 등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Q. ‘산업유산화과정’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나요?

완전무결한 것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미 부여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으로 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메이킹 헤리티지’고, 전문용어로는 ‘헤리티지네이션’입니다. ‘모든 유산은 유산화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의미 있는 것으로 선택된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Q. 현재적 의미는 사람마다 다른데, 합의된 기준이 있나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기 때문에 합의된 기준은 없어요. 예를 들어, 국가는 국가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발전상을 이야기하거나, 아픈 역사를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유산 만들기에 참여할 것이고, 지방정부 같은 경우 지역민들의 삶이 스며들어 있는 집합 기억을 남겨서 지역 정체성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죠. 최근에는 유산도 재화로 여겨져 관광자원과 지역 활성화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을 어떻게 사용하고 활용할 것인지, 어떤 교훈을 전달할지에 대한 의견과 해석이 전문가, 건축가, 예술가, 지역주민, 시민 등 각 주체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놀던 곳이다. 내 친구들이 놀던 곳이다. 부모님이 무엇을 했던 곳이다.’등 개인적인 차원일 수도 있어요. 


<한국의 산업유산 관련 제도와 현황>을 다룬 이연경 교수님 특집논문

하지만, 지역 주민의 개인적 기억이 모이면 집합적 기억이자 집합적인 정체성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유산이라도 국가, 지방정부, 전문가가 생각하는 것이 다를 수 있고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유산화 과정에 참여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을 협치 혹은 거버넌스라고 하는데요. 서로가 생각하고 있는 가치를 이야기하면서 어떤 것이 우위에 놓이게 되는지에 따라 ‘사회적으로 이 정도는 이런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는 합의점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기준이 없기 때문에 끝없는 대화과정에서 갈등이 나타나게 됩니다. 특히 보존과 철거 논의로 갈등이 많이 일어나는데, 이때 협치를 이루어 나가는 자체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적절한 사례가 있을까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장소 중 동두천 성병 관리소라든지, 지금 없어졌지만 인천 도시산업선교회 경우 건물 자체로는 특징적인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문화재 원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가·문화재 관련 사람들 입장에서는 건축학적으로 남겨야 할 가치가 별로 없는 것으로 판단했어요. 국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국가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광산업으로 활용하거나 보존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반면에 ‘남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기억’이라는 지점이 중요한 거죠. ‘장소성’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측면에서 계속 갈등이 일어나는 건데, 지역의 기억 측면에서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된다.’는 지점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면, 보존 방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거죠. 동두천 경우 아직 진행 중이지만 유산화과정이나 협치의 예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모습, 사진출처: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페이스북
동두천 성병관리소, 사진출처: 다큐멘터리 '이담' 제작 텀블벅
 ※ 참고 : 다큐멘터리 <이담>은  촬영 및 연출자 1인, 동두천 사람들, 서포터즈가 함께 기록한 영상입니다. 


Q. 산업유산 보존에 대한 해외동향은 어떤가요?

영국의 경우, 1950년대부터 산업고고학부터 시작해서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가장 오래되었고, 다음으로는 대만일 것 같습니다. 세 나라가 볼 만한 경우고, 세 나라와 다른 지점이 보이는 경우가 미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독일 같은 경우 산업유산 보존할 때 진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고요. 산업·문화유산 보존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롤 모델로 볼 수 있는 국가 경우, 가장 먼저 했었던 일이 전수조사예요. 전체적으로 얼마나 남아 있는지 파악 후 그중에서 ‘국가가 나서서 꼭 보전해야 되겠다.’고 판단하고, 등급 매긴 것을 보존할 수 있도록 선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선별하고 등급을 매기는 과정을 통해 산업유산을 보존·활용하는 방식으로 다양화될 수 있었다는 거예요. 일본 메이지 산업유산들은 큐슈 등 지역에 많이 있지만, 산발적으로 퍼져 있거든요. 진정성 있게 보존하려고 폐광 혹은 폐산업 시설에 있었던 기계·도구 등 하나 하나 다 남겨놨어요. 어떻게 보면 ‘활용하지 않는다.’고도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인데,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것으로 전용하진 않았어요. 


Q. 사례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일본, 오무타시 미이케 탄광 만다갱과 도미오카시 도미오카 제사장 
오무타시 미이케 탄광 만다갱, 사진출처: 만다갱 탄광 안내 홈페이지
도미오카시 도미오카 제사장, 사진출처: https://url.kr/d15szl

오무타시 미이케 탄광 만다갱의 경우, 위험해서 사람들이 다닐 수 없어요. 가이드 투어만 가능합니다. 반면, 이른 시기에 세계유산이 된 도미오카시 도미오카 제사장 경우, 관광시설로 많이 바꿨어요. 그렇지만, 관광객 유치가 우선이라기보다 ‘그대로 보존해서 교육 장소로 쓰겠다.’는 지점이 확실히 눈에 보여요. 관광객이 많이 와도 내부에 자판기, 기념품 파는 작은 매점 외에는 어떤 상업시설도 없습니다. 세계유산으로 관리하면서 ‘상업화된 상품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가 있고, 세계유산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와서 주변이 활성화될 수 있는 부분도 있고요. 


독일, 에센 졸버레인 탄광
독일 에센 졸버레인 탄광, 출처: 졸버레인 탄광 홈페이지, https://www.zollverein.de

독일도 비슷해요. 에센졸버레인 탄광의 경우, 탄광이었다는 상징성을 가진 세계유산`으로 유명합니다. 탄광 일부는 원형 보존하되 가이드 투어만 하고, 일부는 공원화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와서 박물관에서 전시도 보고, 공원도 즐기면서 활동할 수 있고, 공연 이벤트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전략이 한 가지가 아니에요. 어떤 부분은 보존해야 하고, 어떤 부분은 고쳐도 된다고 하는 식의 기준을 정해주는 거죠. 규모가 크니 전략이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고유한 특질이나 국가 산업 혹은 세계 산업 측면에서 중요한 부분들이 보존 이유로 영향을 주는 거죠. 


영국, 맨체스터 방적공장, 쿼리 뱅크 밀
쿼리뱅크 밀, 사진출처: https://buttress.net/projects/quarry-bank

맨체스터는 영국 산업 혁명과 산업화에서 중요한 도시입니다. 방적공장과 인근에 노동자 주택이 꽤 많이 남아 있어요. 방적공장은 주거 기능으로 바뀌었는데, 외부 형태는 남아 있고, 일부 공간은 커뮤니티 시설 등으로 사용하면서 공장 전체를 레지던스로 바꾼 사례입니다. 저층 노동자 주택은 계속 리노베이션 하면서 사용되고, 내부에 있는 시장의 경우 벽면만 남아 있거나 고층 건물로 바뀌기도 하면서 섞여 있어요. 이곳이 '방적공장이나 노동자 주택이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은 있지만 일부러 주입하진 않아요. 맨체스터의 현재적 구성 요소로써 살아있는 삶의 공간이 되어있는 거죠. 훨씬 자유롭게 사용하는 걸 볼 수가 있어요. 교외에는 ‘쿼리 뱅크 밀’ 방직 공장이 있습니다. 여기는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동결 보존하고, 19세기 말~20세기 초 모습을 유지한 채 관광지화했어요. 방문하면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에 살았던 사람처럼 옷 입은 분들이 안내해 줘요.

독일 뒤스부르크 철강공장이 환경공원으로 변신, 사진출처: 뒤스부르크 인스타그램

위 사례들은 산업유산으로써의 중요성도 있지만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과 전략을 적용한다는 점입니다. 도심의 경우, 새로운 용도로 받아들이고, 교외 경우 기존 모습을 유지하되 사람들이 살면서 성격을 이어 나가는 방식으로요. 해외 경우, 사례에 맞게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 만들어가는 부분이 중요한 것 같고요. 한국 경우, 그동안 관 주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최근 민 주도로 진행되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만 대부분 카페·문화공간으로 활용되는 경향이 보이죠. 저는 그 부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돈이 되고 의미가 있네.’라고 하면 누군가 ‘나도 저런 거 하고 싶어.’라고 생각할 것이고,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상황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10년~20년 전 사람들이 해외사례를 보고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보고 왔으니까 ‘우리도 이런 거 해보자.’라고 생각했었던 거고, 한국도 비슷한 사례가 많아지면서 ‘어 우리도 이걸 해보자.’ 하는 것들이 많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2편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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