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은 은평시민신문과 함께 진행한 기획취재 <오래된 도시조직의 공존방안>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한국의 일부 도시는 과거 특정 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거제의 조선소, 울산의 자동차 산업, 장항의 제련소, 태백의 탄광이 그 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로 산업이 쇠퇴하면서 관련 종사자들과 도시 구조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산업시설 또한 유산으로 남겨지거나 사라지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때, 해당 산업시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여 어떻게 활용하는지 여부와 새롭게 형성되는 도시 구조와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과정으로서의 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전파하며 건축역사·도시·근대·산업유산을 연구하는 이연경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구체적 사례와 활용방식에 대해 알아보았다.
Q. 산업유산 관광화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사례가 있을까요?
군산 경우, 옛 동네를 남기고 활용·재생함으로써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지역 상권을 포함해 다양한 부분에서 영향을 받고 있어요. 기존에는 군산을 방문하던 관광객들이 ‘나 거기 한번 가봤어.’하고 재방문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나 여기서 살고 싶어. 무언가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이러한 변화가 결국, 지역 활성화인 거고 지역 주민과 관계 맺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지역 주민’은 오래 살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로 유입된 사람들도 포함돼요. 출판사 프로파간다도 군산으로 옮겼고요. 협동조합은 아니지만 여러 명의 친구가 오래된 집을 매입 후 리노베이션해서 식당·바·호텔을 만들었어요. 예술가들이 와서 살기도 하고요. 군산에 연고가 있었던 사람들도 고향으로 돌아오고, 연고가 없는데 오신 분들도 있어요. 군산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생기는 거죠.
군산을 ‘재생하자. 활용하자.’라고 하는 흐름이 생긴 건 2000년대 중반 이후고 지금처럼 변하는데 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린 거예요. 어떻게 보면 멈추지 않고, 쭉 이어갔기 때문에 새롭게 유입된 사람들과 정착하는 삶이 생겨난 것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론, 구도심 일부 지역만 변하고, 나머지는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예요. 관 주도에서 민 주도로 변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죠. 하지만, 잠깐 머물렀다가 떠나는 관광객보다 정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방향으로 변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어요. 이 때, 정부와 지자체 정책 변화가 영향을 많이 줍니다.
현 정권의 경우 도시재생사업이 국정과제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도시재생과’가 없어지고, ‘지역활성과’ 혹은 ‘도시재개발과’로 바뀌었어요. 예산 책정과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정책이 연속되지 못하니 계속할 수 있는 자생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 됩니다. 자생력이라는 건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닌 거죠. 예술가·청년들에게 1~2년 머물 수 있는 레지던시를 제공하는 사업을 많이 했었지만, 사업 종료 후에는 군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떠납니다. 이때 공간이 비면서 지역이 슬럼화되는데, 앞으로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머물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느냐의 여부가 성공의 기로에 서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상업화는 지가상승이나 젠트리피케이션을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정책으로 규제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완전히 다 막을 수 없고, 사유재산 침해 문제가 생길 수 있겠지만, 지역 단위로 조례를 만들잖아요. 조례나 지구단위계획에서 지가 상승을 막을 수 있는 규제와 계획이 적절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해요. 관이 좀 더 주도할 수 있어야 하는 부분인데, 다양하고 법적인 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Q. 한국에서 산업유산의 보존과 활용에 있어 한계점은 무엇인가요?
지자체장이 바뀌는 상황에서 ‘지속 가능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자 문제점입니다. 또, 관주도 일 때 공공용도로 밖에 쓰지 못한다는 점이에요. 민간 위탁 방식도 있지만, 상업적 이익이 많이 나면 특혜 시비부터 시작해서 온갖 이야기들이 나와 민·관 협력으로 잘 가다가도 중단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실제로 특혜나 비리가 많았기 때문인 것도 있겠죠. 다양한 전략을 적용하려면 민간이 협력한 다음 공공용도로만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바뀌어야 할 거예요. 한국은 아직도 기존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재개발 방식에 의해서 경제가 움직이고 있어요. 방직공장을 리노베이션 해서 오피스와 집으로 만드는 방식은 미국·영국에서 인기 있는 레지던스예요.
미국 맨해튼 내부에도 캔 공장이나 직물공장은 규모가 크지 않으니까 리노베이션 해서 오피스 주거로 사용하고 있거든요. 한국에서는 ‘왜 그게 안 되느냐.’라고 묻는다면, 철거하고 아파트 분양하는 게 돈이 훨씬 되기 때문이죠. 사고방식이 변치 않는 이상 쉽지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런 시도가 하나둘씩 계속 나오면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선제분도 멈추긴 했지만, 소유주가 적극적으로 하려고 한 경우예요. 문화유산 전공자와 활동가들이 상업화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건 재고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살아남으려면 새로운 경제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해요. ‘이 부분은 꼭 보존해야 돼.’라고 하는 것들을 정하고, 어떤 협의를 만들어 가는지가 중요하지 ‘무조건 보존해야 해. 상업적인 건 반대야.’라는 식으로는 논의가 진전될 수 없어요.
Q. 군산 사례처럼 산업유산화 과정이 진행됨으로써, ‘여긴 이런 도시야.’ 혹은 ‘여기서 살아보고 싶어.’라는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도시 매력도가 올라갈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요. 1980년대 군산 한전사택 경우, 한국에서는 문화재로 여겨지는 개념은 아니었거든요. 근데 ‘첼로네시아’라고 카페 겸 문화공간이 되었더라고요. 이런 사례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희망적인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럼에도 시간은 정말 많이 걸립니다. 일본의 많은 산업시설이 산업유산화 된 것도 겉보기엔 처음부터 그런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거든요. 도미오카 제사장의 경우도 10년~20년 동안 문이 닫혀 있다가 기업에서 시로 넘기면서 본격적인 국가유산화를 시작하고,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거거든요. 여기까지 가는 과정은 지난하고 힘듭니다. 하지만 결국, 반대했던 사람들조차 설득하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