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하는 집값, 사라지는 원주민
*해당 글은 은평시민신문과 함께 진행한 기획취재 <오래된 도시조직의 공존방안>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이경민 / 서울수집 운영자(instagrm@seoul_soozip)
동네에 갑자기 낯선 사람들이 찾아오고, 잦은 소음과 불편한 상황의 발생으로 나의 일상에 지장을 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애정을 가지고 살던 동네의 갑작스러운 변화로 원치 않는 이동을 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는 정용택 감독님은 자신이 살고 있던 동네의 변화로 인해 이사를 해야만 했고, 가까이에서 동네생태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목격해 왔다. 이 과정에서 집값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어떤 사람들이 영향을 받게 되는지, 어떤 방식으로 지역의 성격이 바뀌게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특히 정용택 감독님은 주거지에서 상업지로 용도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골목상권이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피고, 더 나아가 서울을 비롯하여 각 지역에 조성된 골목상권이 과연, 지역 소멸을 해결할 방법인지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과연, 감독님이 생각하는 골목상권과 젠트리피케이션의 상관관계와 이에 대한 부작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를 최소화기 하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Q. 소개 부탁드립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글 쓰는 정용택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상냥한 폭력의 도시>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Q. 젠트리피케이션을 주제로 한 영화<파티51>도 있는데, 같은 주제로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하게 된 이유는요?
2000년대 초, 저는 홍대 중심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쯤 주거지가 상업지로 변하면서 임대료가 많이 올랐고, 연남동으로 이사 했습니다. 2008년쯤 됐을 때, 오세훈 시장이 연남동을 차이나타운으로 재개발하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화교들이 많이 살던 연남동에서 연희동까지 중식당이 40개 정도 있었고, 당시 연남동 동장도 화교였습니다. 연남동 거주인구의 20%가 화교인 만큼 많이 살고 있었던 것이죠. 재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했는데, 반대표가 많이 나오면서 무산되었습니다. 저는 만약 재개발이 추진되면, 철거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는 두리반 식당이 재개발로 쫓겨나게 되면서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인디 음악가들이 1년 6개월 동안 식당에서 공연을 하면서 연대하게 됩니다. 인디음악가들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에서 쫓겨나는 상황이었거든요. 사장님과 자신들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저는 취재하러 갔다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영화 <파티 51>은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남동에는 동진시장이 있었는데, 홍대에서 활동하던 갤러리, 카페 등 홍대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들어오면서 갑자기 핫플레이스가 되었습니다. 바로 옆에 살고 있던 저는 부동산 업자들이 와서 골목 끝에서 이야기하는 걸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저 골목 끝에서 저 골목 끝까지 작업하자.”고 하면 집주인들을 설득해서 강남에서 온 부자들 혹은 외지인들에게 집을 팔게 하거나 세입자를 내보내고 카페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게끔 했습니다. 제가 살던 집은 다세대 주택이었는데, 어느 날 위층에 게스트 하우스가 생기더라고요. 공항 철도역이 생기면서 인천공항에서 오는 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쇼핑은 명동, 종로, 홍대에서 하고, 숙박은 연남동에서 했거든요.
이후 게스트 하우스만 100곳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밤마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고, 가끔 호수를 잘못 찾아 문을 두드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월세가 많이 오른 것도 있었지만,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은 오버투어리즘이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으로 인해 예전에는 단순하게 ‘가난하니깐 계속 쫓겨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젠트리피케이션의 구조적인 문제, 주거지에서 상업지로써 용도변경, 임대료 상승, 오버투어리즘으로 발생하는 부분들을 파악하게 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Q.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주거나 성격이 바뀐 사례가 있을까요?
추적이 잘 안 되는 부분이지만, 연남동의 경우 원주민이 많이 떠났습니다. 저의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라 화교나 베트남 이주민 친구들을 포함해서 다국적 아이들이 15명~20명 정도가 모여서 놀았었어요. 그런데 모두가 떠나면서 학부모와 친구들 간의 관계도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때 대만음식점 열풍이 일어나 음식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는데, 그때는 태권도장이 없어졌습니다. 주거지가 상업지로 바뀌고, 태권도장이 사라지면서 기존에 존재하던 동네 커뮤니티 성격을 가진 것들이 다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인 거죠. 부산 영도 흰여울마을 같은 경우, 주거지가 카페, 게스트 하우스로 바뀌고 있는데, 거기서 이사 가거나 밀려나신 분들은 더 열악한 지역인 청학동으로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Q. 관할구청은 왜 용도 변경(주거->상업) 허가를 내준 걸까요?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고요. 월세 20~30만 원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월세 300만 원인 카페가 되잖아요. 이익은 집을 소유한 다주택자, 투기꾼, 은행이 가져가겠죠. 대출을 받아서 샀을 테니까요. 사회학자 루스글래스가 전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의미는 산업이 쇠퇴한 지역에 노동자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젠트리 계급이 들어와서 고급 주택지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라는 다큐 영화를 봐도 비슷한 의미로 나와요. 근데, 한국은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고급 주택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동네가 뜨면 원주민, 주거 세입자, 예술가가 밀려나고, 공방이나 카페가 생기는데, 이후에는 더 큰 자본이 들어와서 예술가, 공방이 밀려나고 결국, 프랜차이즈화됩니다. 일본의 경우, 주거지를 상업지로 바뀌는 부분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어 한국의 주거 젠트리피케이션과는 또 다릅니다.
Q. 주거지가 상업지로 바뀌는 과정에서 ‘로컬 상권’이라는 말도 등장합니다. 관련하여 <로컬부동산 전성시대>, <로컬 젠트리파이어 전성시대> 책도 발간 하셨더라고요. 어김없이 ‘로컬’이 등장하는데,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로컬은 어떤 건가요?
사실, 로컬에 크게 의미를 두진 않았습니다. 평소 생각하고 있던 건 ‘로컬 푸드’ 정도였는데, 어느 날부터 ‘로컬’이 화두로 떠오르더라고요. 한국말로 번역하면 ‘지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지역을 활성화하거나 균형 발전을 한다면서 ‘지역’이라는 말 대신 굳이 ‘로컬’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관련 정책이 모두 실패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지역’이라 칭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불어 어떤 관점에서, 누가 사용하는지,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따라 좋은 의도인지, 다른 의도가 있을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컬’이라고 하면서 원주민들을 고려하지 않은 관광지를 만들고, 수익이 발생하고, 다음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의 사업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로컬이라는 이름은 지역에서 좋은 일을 하기 위한 활동이라기 보단 지역을 상품화시키고, 이익을 얻기 위한, 힙한 이미지로 인식시키는 도구로써 ‘로컬’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게 아닐까. 굳이 ‘로컬’이라고 언급할 필요가 있을지도 의문이고, 로컬 정책을 추진한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Q. 책에 ‘로컬 브랜드 상권이 지역을 활성화시킬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다. 오히려 지역을 소멸시키는 것을 더 촉진시킬 것이다.’라고 언급해 주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요?
로컬 주류라고 불리는 분들이 로컬 브랜드 상권의 성과를 만들려면, 해당 지역을 관광지로 만들고, 체험을 활성화하면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역의 실태를 제대로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주 황리단길의 경우, 동네가 뜨고 난 뒤 대로변 옆 상권뿐만 아니라 원래 주거지였던 곳이 상업지로 용도가 변경되었습니다. 임대료와 지가는 몇 배로 오르고, 건물주들은 거의 외부인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지역 소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금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것이 아닌 관광객들만 유입되는 것이 지역 소멸을 막는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쇠퇴한 상황 그대로 두자고 하는 건 아닙니다. 어떻게든 활성화해야겠죠. 황리단길 같은 상권이 아니더라도 점진적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을 텐데, 다른 개선 방향의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고, 관광지를 만드는 것만이 지역 소멸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던 것입니다. 또, 책에선 언급하지 못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의 로컬 브랜드 상권을 보면, 대부분 골목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보존이 되었지만, 정작 골목에 살던 원주민들은 다 나갔고, 건물주들은 외지의 다주택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골목상권으로써의 ‘핫플레이스’가 오히려 해당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상승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전국적으로 퍼진다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겠죠.
Q. 상권이 활성화 되면, 지가상승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가상승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쫓겨나는 상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주거지를 상업지로 용도 변경하는 것을 규제해야겠죠. 다들 아파트에서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서 계약 후 갱신하는 기간이 10년으로 바뀌긴 했지만, 기간을 더 늘리거나 규제하는 항목을 더 추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에서는 차지차가법(借地借家法)이 있는데, 한번 계약 맺으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계속 임차해서 가게를 운영할 수 있어요. 100년 가게로만 약 4만 개 정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중 상당수는 건물주겠지만, 몇십 년, 몇 백 년을 건물주가 아니더라도 장사를 할 수 있게 만드는 임대차 보호법과 같은 제도와 법이 마련되어 있는 거죠. 독일, 프랑스에는 투기를 막기 위한 선매권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도시재생사업이나 지역 활성화 사업이 진행될 때 틈새를 알아차리고 부동산 세력이 들어와 투기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때 감시하는 차원에서 지자체가 먼저 건물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선매권이라고 합니다. 근데, 한국도 이걸 모르는 것이 아닐 겁니다. 조사도 하고, 탐방하러 가서 듣고 온 부분일 텐데, 한국은 적용을 시키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Q. 다른 나라의 상황이 부럽기도 하고, 현재 제작되고 있는 영화 <상냥한 폭력의 도시>가 상영되었을 때 자극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