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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드는 도시 :골목길 일상적 적응과 공동체 형성

by 이경민
946_2547_218.jpg 골목길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이 식물과 화분으로 가꾼 을지로의 골목 ⓒ서울수집


익선동, 북촌한옥마을, 용두동 장미마을은 모두 한옥밀집지역이다. 도시화된 서울에서 한옥은 ‘전통’이라는 상징성을 가지며,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성과 무관하게 보존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곤 한다. 하지만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대부분 한옥은 1930년대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다. 도시형 한옥은 전통 한옥에 기초하면서 주택의 성능, 평면, 구조, 재료 등이 개선된 한옥으로 형태와 구조가 변화된 것이다. 용두동, 제기동, 청량리, 정릉동에 있는 한옥이 대표적 사례다. 1960년대에도 도시형 한옥이 대거 지어졌고, 현재 집단 혹은 개별 단위로 서울 곳곳에 남아 있다. 물론, 재개발로 한옥밀집지역이 사라지고, 아파트가 생긴 곳도 있다. 한편으로 은평구 한옥마을처럼 2000년 이후에 조성된 곳도 있다. 그만큼 한옥은 한국 주거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시대를 달리하며 철거되거나 새롭게 조성된다.


946_2543_2359.jpg 성북동 한옥밀집지역 ⓒ서울수집

한옥밀집지역은 여느 주택가와 마찬가지로 선형의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이곳에서 이웃과 함께 무언가를 하거나 대화를 나눈다. 의자에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살피기도 한다. 때로는 낯선 방문자에게도 개방된 장소로써 친밀감을 형성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이 쌓이면서 골목은 공공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효율성과 수익성을 우선 가치로 삼는 대형 아파트 단지 건설로 골목도, 한옥밀집지역도 지속적으로 사라지는 추세다. 한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장미 골목’이라는 공공공간을 만들었던 용두동 한옥밀집지역도 재개발로 인해 사라졌다.

"도시와 건축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에 있다. 사적인 역할과 공적인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뜻이다. 용두동 장미골목의 경우, 주민들 스스로가 골목길을 가꾸며,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골목길 즉 공공 공간을 담론의 장으로 만듦과 동시에, 자기 마당과 마루를 골목길로 개방함으로써 장소와 커뮤니티를 확장했다." p164, <한옥적응기>, 정기황

주민들은 왜, 자신들의 마당과 마루를 골목길로 개방하고 장미 골목을 만들고자 했을까? 그 의지는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것이 가능했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장미 골목이 있던 용두동 한옥밀집지역은 재개발로 인해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인근에 남아 있는 한옥밀집지역에서 어떻게든 요인을 추정해 보기로 했다. 한옥밀집지역의 한옥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문이 마주 보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자칫 잘못하면, 사생활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이웃과 마주하게 되는 기회가 자주 생기는 것이기도 했다. 출입부 바닥은 감춰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을 향해 노출되어 있다.

946_2544_2527.jpg 용두동 장미골목 인근에 있는 한옥밀집지역 ⓒ서울수집

실제로는 다를 수 있지만, 상상을 곁들여 보면 집 안쪽에서 문을 열면 바로 골목인 것이다. 치안을 생각한다면, 또 다른 단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화분과 살림살이 일부를 골목에 내놓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아니면 비슷한 사정이 있겠거니 공감하는 것일 수 도 있다. 하나씩 따지고 보면 단점일 수 있는 부분을 굳이 예민하게 드러내지 않고, 어느 정도 받아들이되 적응하는 과정에서 골목이 공공공간으로써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닐까?

"적응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내부 변형적 현상인 순응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능동적 개념이다. 적응은 적절하고 유익하게 환경에 대처 할 수 있는 역량으로서, 외부 세계의 현실에 적당히 맞추는 활동과 환경을 바꾸거나 더 적절하게 통제하기 위한 활동을 포함한다. 또한 개인과 환경 사이에 존재하는 함께 어울림의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러한 상태로 이끄는 심리적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아가 적응은 외부환경을 수정할 수 있는 역량과 능력을 증진하는 기반이다."
p20, <한옥적응기>, 정기황

다만, 적응은 사람의 행위가 중심이 되어야 하기에 상업지보다 주거지에 적합하다. 상업지는 아무래도 물리적 형태 보존에 좀 더 집중하게 되고, 사적인 역할과 공적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형태 보존에 의한 관광지로 소비될 가능성이 높다. 주민들의 삶터로 물리적 형태도 보존하고, 공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은 ‘사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중심이 되는 ‘행위’란 무엇일까? 아마도, 용두동 장미 골목을 만들었던 사람들처럼 사적공간을 공공공간으로 확장해 보려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아닐까? 급속도로 변하는 도시 흐름에 맞춰 ‘적응’하려는 자세가 아닐까?

946_2546_271.jpg 청량리 부흥주택지 골목 ⓒ서울수집

한옥밀집지역은 아니지만 기존 도시 조직을 유지하며 적응하려는 태도가 엿보이는 곳으로 청량리 부흥 주택지가 있다. 부흥 주택지의 집과 골목이 모두 동일한 형태와 모습으로 유지되는 건 아니다. 어떤 골목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고, 어떤 골목은 관리되지 않은 채로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또 어떤 골목은 대문 앞에 평상을 만들고, 파라솔을 설치해 두고, 의자와 화분을 내놓았다. 어떻게든 활용해 보려고 한 흔적이 보인다. 이처럼, 어떤 마음가짐으로 골목을 활용하려고 하는가에 따라 골목의 모습과 성격이 확연하게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오랫동안 유지되는 도시 조직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적응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능동적 태도·생각·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급속한 변화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도시 조직은 존재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 행위가 일어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상호작용을 할 때 지속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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