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고 낯선 동네를 탐색하다 빠져든 도시, 서울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생이 되던 17살 때까지. 한 동네에서 10년을 살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한 동네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침잠이 없던 탓에 새벽녘부터 운동하러 가는 할머니를 따라 동네 천(川)을 접했고, 일주일에 한 번 주말 오전마다 엄마, 동생과 함께 동네 목욕탕에 다녀왔다. 추석이나 설날에는 명절 음식을 만들고 나면 집 안을 비롯해서 온 몸에서 음식 냄새가 밴다. 냄새를 비롯하여 한 해의 묵은 때를 벗겨 내듯 가족들이 모두 동네 목욕탕으로 향했다.
인근에는 아파트가 많았는데, 대규모 단지형 아파트가 아니어서 단지 내 상가가 따로 만들어지진 않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신 아파트 1층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거나 소규모 상점들이 주변에 잘 분포되어 있어서 아파트 주민들도 자연스럽게 동네 시장과 동네 가게를 이용했다.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인근에 있는 주택에서 사는 아이들도 함께 어울려 같이 놀았다.
동네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공간들이 특정 누군가의 점유 공간이 아니라 함께 사용하고 즐기는 공간이었다. 하물며 아파트를 짓기 전에 제공하는 모델하우스 조차도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며칠 채 내린 눈이 쌓여 꽁꽁 얼은 추운 겨울, 하굣길에 들린 모델하우스는 따뜻하고 포근한 공간이었다. 아이들이 그렇게 뛰어놀고 했었어도 혼을 내거나 제지하는 어른이 없었다.
그 덕분에 편하게 자주 들릴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모델하우스가 철거되면서 더 이상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공간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더라.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이야기를 풀자면 끝도 없을 것 같은 동네에 얽힌 추억을 한 동안 잊고 살았다. 그렇게 15년이 지났고, 나는 30대가 되었다.
2016년 뜨거웠던 여름, 긴 방황을 하고 있던 나는 무작정 서울에 있는 동네를 다니며 골목탐방을 시작했다. 골목탐방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뉴스를 통해 접한 옥바라지 골목 철거 소식 때문이었다. 언론을 통해 접한 옥바라지 골목은 강제철거와 주민들의 반발 문제로 인해 갈등을 빚고 있었고, 검증되지 않은 역사와 관할 구청의 애매모호한 대처로 인해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상황이었다. 이에 서울시장이 직접 현장에 방문하여 문제를 해결한 듯싶었으나 결국 철거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이런 소식들을 지켜보면서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현장에 직접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던 것 같기도) 이후 3차례 정도 옥바라지 골목에 다녀왔다. 첫 번째 방문에는 공사 막이 쳐져 있었고, 두 번째 방문에는 포클레인이 건물을 철거하는 장면을 마주했고, 세 번째는 옥바라지 골목이 위치한 동네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문득 그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옥바라지 골목은 역사성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서울에 존재하는 또 다른 골목은 역사성을 가진 곳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물며 역사성이 없더라도
골목을 탐방해봐야겠다.
역사와 골목길. 그것이 골목탐방의 시작이었다. 그 어떤 목적도 계획도 없었다. 나의 탐방은 무모할 정도로 단순했다.
1. 방문할 동네를 선택한다.
2. 탐방을 시작한다.
골목을 탐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네를 돌아보게 되고, 동네를 돌아보다 보니 재개발이나 재건축 현장을 목격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도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더불어 서울이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생각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한 나라의 수도이면서 대한민국=서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가진 도시 서울은 상상 그 이상으로 가지각색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가지각색'의 의미는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유기적이면서도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내포하기 때문에 해석하기 나름이다. 금빛을 두른 63 빌딩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마치 뭐라도 된 듯 의기양양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건 서울이라는 도시에 포함된 아주 작은, 일부였음을 깨달았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서울의 모습들은 '개발' 혹은 '재개발'이라는 과정을 수도 없이 겪어내면서 완성된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보금자리였던 집이, 매일 거닐던 길이, 함께 정을 나누었던 이웃들이 사라지면서 처음부터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금세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가 생겨났다. 이러한 현상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지만, 도로나 길을 경계로 삼아 불규칙적으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그 덕에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과거에 머물러 있는 동네도 많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앞쪽에서 언급했던 어린 시절의 동네가 궁금해졌다. 서울과 대구라는 상이한 지역과 속도면에서 차이는 있겠지만,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멈춰있지는 않았을 테다. 이후 다시 찾은 어린 시절의 동네는 재개발로 인해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사라지고 없었다. 인근에 있던 아파트와 상가, 시장, 목욕탕은 그대로 있었지만 우리 집이 있던 그 구역만 사라졌고, 감정적으로 느껴지는 상실감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게 다가왔다.
익숙한 동네에 얽힌 추억들을 기억하는 것에서 벗어나 익숙지 않은 낯선 도시에서 골목을 탐방하며 동네의 변화를 읽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며 지나 쳤던 재개발과 연관된 다양한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자연스럽게 익숙한 동네를 다시 떠올리게 되는 과정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연히 변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넘기기보다는 도시 전체의 커다란 맥락을 읽고 변화하는 과정을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분이 금호동의 주인이에요
갑자기 생긴 출장으로 광주에 있는 주민센터에 방문하게 되었다. 담당자를 만나러 가는 동안 센터 안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에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여러분이 금호동의 주인이라고. 학교가 아닌 센터에서 동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주인 의식을 심어 주고 유도한다는 점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이제야 동네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는데, 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지금부터니 성인이 되면 엄청난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주인의식과 책임감으로 뭉쳐 있겠구나 했다.
동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관계나 생활환경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고 그와 연관된 활동을 한다는 것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인지를 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국 동네를 넘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도시가 어떤 방향을 가지고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인지, 문제점이 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주민들과 혹은 시민들과는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하고, 의견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인지 등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결국 도시에 대한 관심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게 힘들다면, 지금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서 조금씩 관심을 가진다거나 혹은 익숙했던 동네에서의 추억을 꺼내어 하나씩 펼쳐 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