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많은 오래된 장소와 공간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가득 메운 아파트를 보면서 머릿속에서 자꾸만 이 질문이 떠올랐다. 도시의 가치와 의미는 누가 만드는 걸까?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그것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일까? 왜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도대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는 누굴 위해 존재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현재 재개발로 인해 건물 철거가 진행 중인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현. 한남 3 구역)의 상황을 통해 힌트를 얻어보고자 한다.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만큼 다양한 기억과 쌓아간 경험이 많을 테고 그만큼 차곡차곡 쌓여간 의미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 늘 그렇듯 좋은 기억과 경험만 있는 건 아닐 테고 슬프고 짜증 나고 화나고 어이없는 부정적 감정과 기억을 안겨준 경험도 있을 테다. 우리의 삶이 한쪽면만 있는 것이 아니듯 도시의 공간과 장소 또한 양면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에서 살아가거나, 스쳐 지나가거나, 조금이라도 경험이 있던 사람들에게, 이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가 가진 가치와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를 비롯해 사라져 가는 도시의 장소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지점은 무엇일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광화문 교보문고를 가 본 적 있을 것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은 물론이고 다른 도시에서 서울로 여행 온 사람들도 방문하게 되는 장소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찾는 공통의 장소자 공간이다. 교보문고는 사기업이지만 '책을 읽는 행위'에서 만큼은 공공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내가 처음 교보문고를 갔을 때만 해도 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책을 구매하지 않아도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있었다. 그런 분위기 덕분에 교보문고에서 만큼은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또 책을 읽는 행위뿐 아니라 후각이라는 감각을 활용한 교보문고만의 '향'을 출시함으로써 장소에 대한 기억, 감각, 경험을 극대화 한 지점에서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에게 '공통의 무언가'를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공통의 무언가'는 상징성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광화문?' '종로?' 하면 '교보문고'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렇게 되면 '교보문고'에 대한 공통기억의 총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나는 이 힘이 도시의 급격한 변화 속에 한 장소나 공간의 운명을 결정 지을 만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운명에 놓이겠지만 미리 대처하거나 방법을 계속 찾아내면서 나아간다면 그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는 공통기억의 총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재개발 사업이 확정되어 사라지고 있다. 재개발이 되기까지 꼬박 20여 년이 걸렸다. 2003년 뉴타운지구 지정과 2009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엔 건물을 개보수하고 신축하는 개발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상황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한 곳에 정착하며 살기 힘든 외지인들이 최소한의 조건으로 발 붙이고 살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여름엔 곰팡이가 피고 겨울엔 수도관이 얼어 동파되어도, 성인 1명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골목길이 전부였고, 언덕길이 끝인 줄 알았지만 가파른 계단을 또 올라가야 하는, 차로는 도저히 이동이 불가능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에 살 수밖에 없었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건물들 사이를 보다 보면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건물도 여러 채 있었다. 집을 소유한 건물주들은 대부분 이곳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의 상태가 어떤지 중요하지 않았다. 소액이라도 임대료로 수익을 얻었지만 건물의 관리 외 부가비용을 지출하지 않았다. 모든 불편함을 감내하는 것은 오직 세입자들의 몫이었다. 물론 직접 보고 겪은 일은 아니기에 모든 건물주가 다 그랬을 것이라는 말은 할 수 없다. 다만 건물이 방치되거나 고쳐서 수리해서 잘 관리하면 괜찮을 집임에도 그렇지 않은 집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보광동 언덕으로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겹겹이 쌓인 집만큼 겹겹이 이야기가 쌓여갔다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 꼭대기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분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보증금 없이 굉장히 저렴한 월세를 부담하며 지냈다고 했다.(시일이 지나서 금액이 정확하게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시세에 비해 엄청 저렴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서울에서 그것도 땅값이 비싼 용산구에서 보증금도 없이? 월세만?! 그 가게는 보광동 언덕을 지나면서 수 없이 봤던 곳이었다. 아마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한 달 임대료를 줄이고 그 비용을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으니 불편함을 감수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적은 돈이라도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상황에서는 거래가 성사될 수밖에 없다. 아마 이곳에 모인 대부분 사람은 비슷한 처지가 아니었을까. 서울의 부동산은 다른 지역/도시와는 달리 넘쳐나는 수요와 부족한 공급으로 작동한다. 그 이면에는 투자자산으로 건물을 소유하고 임대료로 수익을 얻는 자들이 있다. 이 어쩔 수 없는 구조와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수요자에 의해 부당한 상황을 작동하게끔 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한강과 가깝고 사람이 살지 않던 공동묘지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다 어느새 땅값이 비싼 서울의 지역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용산구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이 되었다.
어린 시절을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에 거주한 글 쓰는 여행자님의 브런치글을 통해 이 일대가 '재개발'이슈로 수십 년간 변화가 있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브런치 내용에 기반하여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았다. 정확성을 위해 좀 더 자세한 것은 확인해 봐야겠지만 큰 흐름에서는 참고할만한 내용이라 판단된다. 특히 1990년대 중후반에 원주민들이 이동하는 현상과 2000년대 중반에 큰 손 사모들이 이 일대의 주택을 여러 채 구매하면서 외지인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지점은 주목할 만하다.
1) 1990년대
- 1990년대 중•후반: 한남1동 친구들부터 이사, 목동, 잠실, 분당, 의정부, 일산으로 이사감.
- 당시 다니고 있던 학교에 전학생이 한 달에 최소 2명이 있었음.
<추가설명> "IMF로 위축되었던 시장이 재개발 기대감으로 다시 꿈틀대며 거대한 자본의 이동이 시작되던 시기"
1997년 IMF 위기 직후에는 부동산 가격이 일시적으로 급락했으나 1999년부터 경기가 회복되면서 강남과 인접한 지리적 이점 때문에 투자자들의 물밑 접촉이 시작되던 시기다. 강남의 자산가들이 '강남 건너편 낙후된 땅'의 가치에 주목하며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실거주 목적보다는 투자 목적의 거래가 시장을 주도했다.
2) 2000년대
2000년: 한남역 앞 한남아파트 철거 / 단독주택•맨션 •빌라철거 / 브랜드 아파트 건설
리버탑(2000년), 동원베네스트(2008년), 하이페리온(2002년), 힐스테이트(2003년)
2003년 한남뉴타운 지정
2006년: 부동산 바람, 한광교회와 이슬람사원 주변 한남2동까지 확장
글 쓰는 여행자님도 이때 주택 판매했는데 큰 손 사모들이 여러 채를 한꺼번에 구매
2000년대 중반부터 원주민보다 외지인의 비율 높아졌다.
2007년: 단국대학교 한남캠퍼스 죽전 이전 -> 해당 부지에 2010년 한남더힐
2009년 한남 재정비촉진지구 지정
2010년: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진행
<추가설명>
2000년대 초 서울시는 강남·북 균형 발전을 위해 '뉴타운 사업' 추진
- 2003년, 한남동·보광동·이태원동 일대(약 111만㎡)가 한남뉴타운으로 공식 지정
- 뉴타운 지정 이후 신축이나 대규모 수선이 제한, 70~80년대의 풍경을 간직한 채 노후화 심화
- 단국대학교 부지 이전, 외인아파트 부지에 대한 개발 논의 본격화
-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로 사업지연,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온 예술가나 청년들의 작업실이 생김.
- 10년 간 사업이 지연됨.
- 2019년: 사업시행인가 / 2020년 시행사 선정 / 2023년~2025년: 이주 / 2026년: 철거
원주민이 떠난 뒤 여러 해 동안 집주인이 바뀌고 지금의 재개발이 진행되기까지 약 20여 년 동안 집주인들은 본인이 살진 않고 빈집이 되는 건 더 싫어서 저렴한 가격으로 세를 주기 시작했다. 이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인종, 국적, 종교 등등등. 그래서인지 이곳에서의 '다름'은 이상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기피가 누군가의 기회가 되었고 애써 불편함을 견디거나 감수하면서 살았지만 결국 그 자리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그렇게 쌓여간 보광-한남동 언덕 동네의 삶과 사람들은 단 몇 개월 만에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았고 많은 사람이 거쳐간 만큼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어떤 지역과 연관된 기억이 많을수록, 층이 다양할수록, 쉽게 잊히기보다 사람들의 글로, 말로, 사진으로 연결되어 이야기가 다소 변형될지언정 어떻게든 전해진다.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에 살면서 각자가 느끼는 삶의 정도와 무게감은 사람마다 다르고 의미 부여하는 정도도 다르다. 하지만 잠깐 스쳐 지나가거나 들린 사람은 많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조차도 재개발 이전에 자주 온 건 아니지만 두 세 차례 정도 동네구경은 한 적 있다. 그러니 공통기억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 가치와 의미는 추억을 넘어 도시의 자산이자 공공자원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결론이 나니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또 공통된 지역과 장소에 얹어진 기억들을 여러 차례 듣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전하는 생각들이 있었는데 이를 통해 사라지는 동네에 대해 다 같이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동네/지역/도시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할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물리적 공간이나 장소의 구현하는 전문가로서 실무를 할 수도 있고 도시계획과 개발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도시의 변화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인데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특정 누군가에게만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다. 이때 사람들이 갖는 공통의 기억을 잘 담아내어 퍼뜨리면 변하는 도시의 공간과 더불어 사람들이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어떻게 하면 좀 더 괜찮은 방향으로 도시가 변할 수 있을지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보광동-한남동 언덕동네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사라져 가지만 앞으로 다른 동네에서는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꼭 뭘 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의 가치와 의미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을까.